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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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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 9편

<토요일>

하루 여덟 시간 삼교대 근무를 하는 생산직 노동자인 그가 열여섯 시간동안 근무를 하게 된 토요일, 같은 조 근무자 P는 황산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고 다음 교대 근무자 S는 경품 추첨을 통해 투싼이 당첨되어 서울에 갔다

자정이 넘어,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손엔 소주 두 병과 로또 복권을 들려져 있다 숫자 세 개가 맞아 본전치기는 했다고 한다

덤으로 주어지는 행운은 오지 않았지만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본전은 했으니 다행이지 소주를 털어 넣는다

<아이리쉬 커피>

가을 오후
커피를 마신다

블랙커피와 위스키를 섞고
컵 둘레에 설탕을 묻힌
아이리쉬 커피를 마신다

블랙커피 같은 사랑도
위스키 같은 사랑도
처음엔 설탕처럼 달콤했었지

밥솥에 밥은 말라가고
김치는 시어 가는데
마음은 집 밖에서 돌아 올 줄 모른다

아이리쉬 커피에서 권태가 피어 오른다

<김>

잘게 부서져야 한다
가루가 되어야만
떡국 위에 오를 수 있고
비빔밥 위에 얹힐 수 있다

밥을 온전히 감싼 채
색색의 야채를 품고
김밥이 된 그때가
김에겐 최고의 순간이다

김밥을 말면서
한순간도 주목받지 못한 나를 떠올린다


<헤드크리너>

VTR의 화면이 나오지 않아
헤드크리너로 청소를 한다
다섯 번 넣고 빼기를 반복하자
드디어 영화 ‘나비효과’*가 시작된다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린 에반은
우연히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고
지워진 기억에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내 머리 속 끔찍한 기억들
헤드크리너 넣고 빼기를 얼마나 반복해야
깨끗이 정리 될 수 있을까
열세 살 아버지 죽음, 뚜렷한
열다섯 살 어머니 쓰러짐, 갑자기
열일곱 살 큰오빠 자살, 선명한
스물여섯 살 결혼, 두렵던
그리고 싸움 또 싸움 .......
헤드크리너는
남편과의 싸움 부분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에반은 처음 일이 잘못된 그 지점으로 기억을 되돌려놓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슬프다

*J. 맥키 그루버, 에릭 브라스 감독의 미국영화


<봄, 산>

겨우내 소복 입고
긴 머리 풀어헤치고 있던
저 여인
기어이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있구나
온 산이 질척하다

<별달거리 장단>

장구를 친다
궁편은 채편을 만나러
연신 오동나무 다리를 넘나드는데
채편은 덤덤히 그 자리만 지키고 있다

잊어라 잊어라 하며 떠난 너를
불쑥불쑥 떠올리는
나는 궁편을 닮았나 보다

안된다 안된다 하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너에게로 달려가며
빠른 심장 박동 소리를 낸다

덩덩 쿵딱쿵
쿵따쿵따 쿵딱쿵
쿵딱쿵 쿵딱쿵
쿵따쿵따 쿵딱쿵

<고시래>

아버지 산소 앞에서 어머니는 '고시래'* 하며 김밥 한 조각을 던진다 버려진 김밥에 개미들이 달라붙는다

힘들었던 기억은 내가 다 가져 갈 테니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하며 그는 내 곁을 떠났다 그의 말대로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뜨겁던 시간이 지나자 이젠 내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하며 그 사람을 떠났다

푸닥거리 하듯 한바탕 요란한 사랑 나누다 식을 때면 고시래가 되었다가 들개미가 되었다가

청명한 한식날, 내 품으로 달려드는 바람을 안는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봄바람을


<자가면역*>

어머니가 쓰러졌다 항생제 염화나트륨 알부민 포도당 혈소판 투입에 수혈까지, 뼈만 남은 앙상한 팔에 주사바늘 가득 꽂혀있고 소변줄까지 달고 있는 어머니가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처음 한 말은 오빠 밥 해줘야 되는데 였다 기가 막힌 나는 엄마! 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가면역을 갖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몸을 보호해야 할 T-임파구가 오히려 자기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이 다 자기 탓이라고 가슴을 쥐어뜯는 어머니, 차라리 우리에게 화살을 쏘세요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원망을 하세요

*면역은 외부에서 세균과 같은 적이 침입했을 때 우리 몸을 방어한다. 이 방어군이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를 자가면역이라고 한다.

<노인 병동에서>

영신병원 502호
강인숙 환자는
아흔 다섯 살
언니! 언니하며 나를 부르는
할머니의 기억은
유년시절에 머물러 있다

이젠 무채색으로 남은
할머니의 시간이
한 송이 장미꽃으로 피어있다

<인디안 썸머*1>
이혼

조울증이 찾아 왔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녀,
가슴은 뜨거운데
사람들의 눈길은 싸늘했다

그녀는 지금
인디안 썸머 속으로 걸어간다
잠깐의 자유가 끝나면
긴 겨울만 남아 있는,


*늦가을 끝 무렵에 찾아오는 짧고 무더운 여름 같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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