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신상조
사막을 견디는 것은 가시다
오래 목말라 본 사람은 안다
파리한 이파리 하나
여린 꽃잎 한 장도 사치라는 걸
눈을 뜨면
다문 입 같던 하늘이 별을 쏟는데
네가 떠나는 꿈은
늘 처음처럼 슬퍼
오늘밤에도
그대,
기어코 딱딱한 가시로 피어났나
내 심장을
벌건 내장을 콕콕 찌르면서
천년만년 피어나나
실은, 나,* 시들기를 바라는데
* 이선영의 詩 <선인장> 중에서 “실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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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은 사막이라는 지극히 힘든 삶의 환경을 이겨내는 식물이기 때문에 설명 이전에 만만치 않은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작자는 그 사막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그 마르고 날카로운 가시라는 하면서, <파리한 이파리 하나>와 <여린 꽃잎 한 장도 사치>라고 경구처럼 말하고 있으므로, <오래 목말라>보지 못한 평범한 독자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까지(제2련까지)는 이 시가 지닌 힘과 울림을 충분히 발휘하여 대단히 훌륭한 작품임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제 3련부터는 갑자기 설득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망가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으로 아쉽습니다. 우선 <하늘>의 비유로서의 <다문 입>은 그 모양새나 성격으로 보아 비유가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네가 떠나는 꿈은> <늘 처음처럼 슬퍼>라는 말도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처럼 슬퍼>라니.... 뭔지는 몰라도 <처음>이란 원래 슬픈 것이라는 모양인데 어떻게 <처음=슬픔>이 될 수 있는지요? 또한 <슬퍼>라는 감상적인 표현은 앞의 1, 2련에서 구축한 엄숙하고 단호한 태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연약하고 억지스러운 소녀취향(?) 같습니다.
4련의 <내 심장을/ 벌건 내장을>에서는 두 가지 심상 중에 하나만 쓰는 것이 오리려 선명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4련 끝의 <천년만년>이라는 말도 지성적이지 못한(사색된 혹은 자기화하지 못한) 느낌을 줍니다. 나는 이디엄은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너(네가:3련3행)>와 <그대(4련2행)>는 같은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왜 <나>와 <그대>라고 다르게 표현하는지요? 그리고 마지막 련의 <나>가 이 작품의 화자라면 그 표현도 뭔가 애매하게 읽힙니다. 다음 주 작품 토론회 때 좀 더 얘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