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40주년 원고 / 전 영 숙 > 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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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세상에

 

 

전 영 숙

 

 

목련이 피었습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딸이 딸을 순산했습니다

 

어둠속에서 나온 것이

 

이토록 깨끗할까요 눈부실까요

 

녹을 듯 연한 새것에 눈이 멀겠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가장 크고 넓은 말을 연신 쏟아냅니다

 

생명을 높게 들어 올리는 봄에는

 

감탄이 전부입니다

 

 

 

  

 

낮달의 계절

 

 

전 영 숙

 

 

겨울 정원을 걸었다

빛이 들어도 빛나지 않는

낮달이 따라왔다

허리를 졸라맨 나무 사이

껑껑 언 돌탑을 지나

살아 있는 생명들 있나

발을 굴려 보았다

 

차게 붉어지는 귀

손으로 비벼 끄는 냉기

삶이 얼어붙었을 땐

죽은 듯 살아 보라 했던가

낮달을 돌아보았다

없는 듯 있는

저 달의 계절은

늘 겨울 정원

 

빈 만큼 넓어지고

낮아진 만큼 깊어지는 계절

빛이 들어도 빛나지 않는

정원을 걸었다

함께 엎드려 견디는 나무처럼

흰 입김을 불며

꽁꽁 언 나를 걸었다

  

 

 

 

 배꼽의 그늘

 

 

전 영 숙

 

그때 살았던 집은 오래 전

헐리고 없다

아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이 세상 사람에게 세 들어 살았던 집

 

기억이 아니라

몸 한가운데 움푹 남아 있는 흔적

생명 한 줄 올곧이 잇대어

먹이고 살린 통로가 깊다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

사랑이라서

깨끗하게 헤어졌어도

상처

오래 습하고 눅눅한

이별의 그늘이 고여 있다

 

이제 어디에도 없는 집은

모든 집이 되어

별을 낳고 달을 낳고

밤하늘 가득

수많은 배꼽들 반짝거린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연하고 아삭한

 

 

전 영 숙

 

미나리 

한 단 씻어요

연하고 아삭한

삼월의 바람 같은

 

꽃 아니어도

아름다운 나리

수돗물이 푸른빛으로

흘러내려요

 

그 옛날

엄마의 미나리꽝에

넘실거리던 빛

 

슥 슥 베어와

김밥 싸던 소풍날 아침

설레던 향이 풍경요

 

생을 김밥처럼 

검게 둘둘 말아

오래 전 엄마는

먼 길 떠났어요

 

목이 꽉 메는

그리움 한 단

속속들이 씻어

김밥을 싸요

돌아오지 않는 

봄을 싸요

 

 

 

 

 

위로

 

 

전 영 숙

 

소나기 지나간 공중

무지개 떴다

와락 울고 난 뒤끝이

참 여러 빛깔이다

 

먹구름처럼

슬픔도 쏟아내면

검은빛만 있는 게 아니다

 

젖은 산을 통째로 걸어

쏘아 올릴 듯

활처럼 휜 반원

 

마룻바닥을 닦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가슴속에

걸어 놓고 간다

 

눈부신 여름의 테두리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는

매미 둘레에도

곧 무지개 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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