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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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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하는 이>

*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반대로 칩거자, 움직이지 않는 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마냥 ‘유보된(en souffrance)' 자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따라서 그 사람의 부재를 말하는 모든 남자에게는 모두 여성적인 것이 있음을 표명하는 결과가 된다. 기다리고 있고, 또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자는 놀랍게도 여성화되어 있다.

* 이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기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 그리스어에는 욕망에 대한 두 단어가 있다. 부재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포토스(Pothos)'가, 현존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보다 격렬한 ’히메로스(Himeros)'가.

* 역주: 그런데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다. (라캉은 욕망을 욕구 ․ 요구와 구별하는데, 욕구란 생리적인 것이나 특정 대상과 관계되는 것으로 충족 가능하며, 요구란 말로 표현되어 타자에게 건네지는 것이다. 그런데 욕망은 존재의 원초적 결여로 인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욕구는 실제적인 대상과 관계되지만, 요구에서의 대상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그것은 사실상 사랑의 요구이다. 욕망은 이런 욕구와 요구의 틈 사이에서 생겨나는데, 실제적인 대상과 무관하다는 점에서는 욕구로 환원되지 않으며, 언어나 타자의 무의식을 고려함이 없이 자신을 강요하고, 또 타자에 의해 절대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요구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근사해!”>

* “어젯밤 X…는 근사했었어.” 그것은 무엇에의 추억일까? 그리스인들이 카리스(charis)라고 불렀던 것? 그런데 카리스란 ‘눈의 광채, 육체의 빛나는 아름다움, 욕망하는 대상의 광휘’를 뜻한다.

* 일생을 통해 나는 수백만의 육체와 만나며, 그 중에서 수백 개의 육체를 욕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백 개의 육체 중에서 나는 단지 하나만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보여준다.
그 선택은 그렇게도 엄격하기에 유일한 것(unique)만을 취하며, 바로 이 점이 분석적 전이(轉移)와 사랑의 전이의 다른 점이라고 말해진다.

<다루기 힘든 것>

* 달리 사랑해라, 좀더 잘 사랑해 보라, 사랑에 빠지지 말고 사랑해라 등등, 그 ‘지각 있는 말씀들’의 합창곡 아래서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고집스런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즉 다루기 힘든(intraitable) 연인의 목소리가.

* 사랑에는 두 종류의 긍정이 있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즉각적인 긍정(심리적으로는 현혹 ․ 열광 ․ 흥분, 충일된 미래에 대한 미친 계획들.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과 충동으로 휩싸인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한다. 그 뒤를 잇는 긴 터널. 나의 첫 번째 긍정은 의혹으로 찢겨지고, 사랑의 가치는 끊임없이 평가 절하될 위험에 처한다. 그것은 서글픈 열정의 순간이요, 원한과 봉헌이 대두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제거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 (중략) 첫 번째 만남을 그 다름 속에서 긍정하고, 그것의 반복이 아닌 회귀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과거의, 또는 지금의)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코에 난 작은 점>

* 나의 욕망이 아닌 다른 욕망은 모두 미친 것이 아닐까?

<고 뇌>

* 고뇌는 이미 저기 준비된 독약(질투 ․ 버려짐 ․ 불안)마냥 놓여 있다.

<사랑을 사랑하는 것>

*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그 도구에 불과하다.

<기다림>

* 기다림의 고뇌가 계속 격렬한 것만은 아니다. 침울한 순간도 있다. 나는 기다리고 있고, 내 기다림을 둘러싼 모든 것은 비현실적인 것에 휩싸인 듯하다. 이 찻집에서 나는 들어오고, 수다를 떨고, 농담하고, 혹은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 그들은 기다리고 있지 않다.

*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呪文)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 그리하여 사랑의 관계가 진정된 오랜 후에도,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환각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때로 전화가 늦어지면 여전히 괴로워하고, 또 누가 전화를 하든지 간에 그 훼방꾼에게서 나는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나는 절단된 다리에서 계속 아픔을 느끼는 불구자이다.

*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

* 중국의 선비가 기녀를 사랑하였다. 기녀는 선비에게 “선비님께서 만약 제 집 정원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백일 밤을 기다리며 지새운다면, 그때 저는 선비님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흔아홉 번째 되던 날 밤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팔에 끼고 그곳을 떠났다.
(25쪽에서 69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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