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바다
고개 숙여
꾸역꾸역 마른 밥 먹다가
처음으로 눈부신 국그릇 보았다
목 메여
한참동안 떠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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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어쩌다가 그 시간에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생각해냈는지 모른다
껍질째 베어 물고 씹으니 입 안은 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
통증이 꼭꼭 씹힌다
어쩌다가 그 시간에 그 해 가을을 생각해냈는지 모른다
플라타너스 커다란 잎 삶아 마시니
너울너울 석양이 지듯 우울이 내려앉는다
무언가 각인하기 위해 발끝 힘 들어갔던가
불안정한 몸 튕겨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스스로 지상으로 내려앉은 낙엽들
콩이파리 같이 몸이 삭는 날
사과 한 입 물고 낙엽 밟듯 자근자근 씹으며
깎여나간 일상의 언저리 따라 걷는 것은
뻑뻑한 감정의 소용돌이 가라앉히고
언저리 끝 고인 물에 한바탕 얼굴 적시고 돌아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