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여름밤, 최정산 자락에 있는
심락재
작은 토방에서 잠을 청하면
사방은 캄캄하고
개울물소리 홀로 산을 오른다
마음에 즐거움이 드는 집
내 마음이 너무 어두웠던가
반딧불이 한 마리, 가슴으로 날아든다
불씨라니!
암석같이 무거운 밤이 잠시 비켜 앉고
마주하는 벗이 있어 밤은 짧다
위로
공원 산책길 비탈진 꽃밭
봉숭아 맨드라미가 한창이다
거친 땡볕에도 지치지 않고
제대로 꽃피운 것들
다정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누굴까 궁금했는데
어젯밤 보았다
어둠을 헤치고 물을 길어오는
물통 든 남편의 등을 부채질하며
또 꽃나무 몇 포기가 없어졌다며 중얼거리는
부인의 목소리가 정겹다
가을,자화상
거울 앞에 앉으니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사진 찍을 때면 늘
작게 보이려 애썼던 눈
이제 눈꺼풀이 내려와 반쯤은 감긴 듯
주름진 얼굴이 낯설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함몰된 시간의 저 편
지나간 일들
흘러간 강물처럼 흔적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