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흥]
꿈속의 잠깐 (7)
-비밀
아내와 시장바닥에 늘어놓은 그림들을 구경한다. 주인이 다가오더니 그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 내가 보기엔 그냥 울퉁불퉁한 나무둥치 같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머리와 가슴, 배와 엉덩이까지 여인의 몸이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만 오천 원을 주고 그것을 산다. 집으로 오면서 아내에게, “이 그림을 걸어놓으면 남들은 그냥 나무둥치를 보지만, 슬쩍 옆으로 보면 여자의 몸이 보이지. 그것은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데 바로 당신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라고 말하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돌아보니 문득
어느 날 느닷없이 거실로
작은 들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유리창에 부딪치고 벽에 미끄러지며
나갈 곳을 찾지 못해 파닥이다가
천장 모서리에 겨우 매달려 앉았다
어서 나가라고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거실을 가로질러 날면서도 나가지 못하고
다시 모서리에 앉기를 몇 차례,
긴 막대기로 휘젓자 어찌어찌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사라지는 새의 꽁무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거울 속 자신을 돌아보니 거기
쇠사슬에 묶여 꼼짝 못하는
짐승 한 마리 처량하게 앉아 있다
눈부신 햇살 속 환한 대낮에,
꽃은 말하지 않는다
꽃은 말하지 않는다.
엷은 미소나 활짝 웃음으로
속마음을 감추고
스칠 듯 말 듯
향기를 펼치지만, 꽃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날아온 한 마리 나비
꽃의 눈썹 위에 아찔하게
햇살 한 가닥 내려놓고 사라질 때
바람에 잠깐 자신을 맡겨
몸을 흔들 뿐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