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기 나무
서경애
20억년 전
한 알의 풀씨가 해변 모래사장에 떨어져
모래사장 속 물기 목젖 아프도록 빨아 올려
여린 싹 하나 밀어 올렸네
키 높이 뒤꿈치 세워
한 뼘 두 뼘 키재기
조석으로 부는 강한 갯바람
이리저리 휩쓸려 온 몸 멍드는
멍든 몸으로 보랏빛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린 순비기
하 세월 흐르는 동안
모래땅에다 육신을 눕혀 살아 남았네
살아 남았네
이 순비기 양지바른 언덕에 옮겨 심으면
하 세월 모래사장에 눕힌 키를
하 세월 진흙땅에 뿌리내리려 세워야 하리
몸부림 치리
이렇게 생은 자연에 길 들여져 가는 것
살아남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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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세 알
서경애
사람들이 품앗이로 모심기를 한다
못줄매기는 사람 농요가 구성지다
그 논둑에 콩을 심는다
한 구덩이에 세 알씩 넣어라잉
왜 세 알 씩이랑가 엄마?
한 알은 땅 속 벌레가 묵고
한 알은 하늘 우에 새가 묵고
한 알은 우리가 묵어야제잉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막손으로
콩 세 알을 넣고 흙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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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장, 이 뭐꼬
서경애
가기는 가도 편하게 갔제
아마 자는 잠에 갔는 갑다
니 댁과 통화할 때 멀쩡하다 했으이께
자는 잠에 갔제 그자
그래도 죽을 복은 타고 났데이
그렇게 편하게 그 먼길 간사람 난 본적이 없데이
밤사이 안녕이라카디 니는 안 안녕이데이
지금 니를 칭찬한게 아니데이
억장이 무너져서 안그라나
그리 핀하게 가면 뭐하노
소똥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카던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살아야제
와그리 퍼떡 갔노 고마
말 좀 해보라 카이 소영 에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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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개치마
데크 밑 무더기로 핀 봉숭아
울 밑으로 옮기고
잡초 뽑아낸 화단 가로 옮겼다
뜰의 잡초 말려
봉숭아 꽃대 아래 거름으로 주었다
두 달여 가뭄에 시들시들하던 봉숭아
늦장마 단비 맞아
색고운 다홍치마 입었다
화단 가 살그머니 고개 내민
붉디붉은 쓰개치마
방긋 웃는 그대 웃음
아련한 울 밑 그리움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내 유년의 마당가 낙원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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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서경애
네 작은 몸뚱이에서 나온 피칠갑이
이리도 선명하다
짓이겨진 내장이 쏟아져
아직 물기도 꾸득꾸득한데
너의 영혼은 어디를 떠도는 거니
슬쩍 보고는 몸서리를 치고
휘돌아 너를 지나쳐가는데
지나는 차들 모두 너를 비켜 가느라
중앙선을 넘는다
이미 싸늘한 주검인데도
바퀴를 통해 전해져올
물컹한 네 몸뚱이의 저항이 싫었을거야
저 회색사막을 안 건넜으면
너는 아직 숨 쉬고 있을 텐데
회색사막에 붙박힌
네 처절한 주검
고이 삽에 떠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 줘야할 텐데
온몸이 저려 도저히 못할 것 같다
편안히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