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적막한 당신
서경애
거기 가만히 앉은 당신
늘 반겨주는
그대이기도 하고 또 나이기도 한
설레며 가는 길
산자락에 닿아
가만히 귀 대어
터벅터벅 그대 가슴 두드리며 가네
그대 혹은 나를 만나러 가는 길
하염없이 그대를 열며 가네
나를 열어 산을 오르네
거기 적막한 당신이 있어
적막한 내가 한없이 가네
***
눈길
서경애
한가로운 들판
점점이 백로가 보인다
벼 사이에 목만 드러낸 그대
아기백로의 정수리와 숨바꼭질 하는 벼
논둑에서 온몸을 드러낸 그대
그대가 기쁨이다
그대가 보는 이에게 기쁨이 되듯
세상 만물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기를
산다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면 기쁜 것이다
끝내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
무궁화호
서경애
마냥 널널한 무궁화호 열차 안
들판과 개울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
창밖 백로 왜가리의 고요한 몸짓
이 순간 살아있음의 기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죽어도 내려놓지 못해
오랫동안 끙끙거리며 이고 있던 보따리
지금 막 내려놓으니 새털처럼 가볍다
마음의 뜰이 고즈넉하다
발목을 잡던 것들의 절망이
저만치 풍경과 함께 멀어져 간다.
이 순간 저 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백로의 눈부심이 행복이다
백로와의 만남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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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고독
서경애
절대고독해 보셨나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오로지 인간나무로 존재하는 것
우주와 하나 되는 것
온 몸을 한 자루 촛불처럼
켜 두는 것
철따라 나고 죽는 자연의 옷 되어보는 것
한 송이 개미자리처럼 투명해 보는 것
엉겅퀴처럼 잎 가시 세워 보는 것
깎아지른 절벽의
낙락장송 되어보는
청천벽력 뇌성에 두려워 몸 떨어보는 것
그 자리에 겸허히 몸 놓아 보는 자리
인간의 끈 저 멀리 두고
마음의 토굴에 앉아 보는 자리
감미로운
***
복지농장, AI
서경애
2014년 2월 어느 날 살처분 시작되다 새하얀 방역복 입은 사람들 계사에 들어서서 불을 끈다 수 만 마리 닭들 펄펄 날아 오른다 3명이 한 조가 되 두 명이 자루를 잡고 한 명이 목잡아 넣으란 말야 불 끄고 어떻게 잡아넣으라는 거야 산닭들 담은 포대자루를 쌓고 이산화탄소를 비닐 안으로 주입하자 닭들의 꿈틀거림이 서서히 잦아든다 압력솥에 던져지는 닭중에 숨이 붙어있는 산닭이 꿈틀 거린다 고온압력솥에 죽임당한 닭들이 삶아진다 이게 할짓인가 밤에 잠도 안와 그러게 정말 이 짓 못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