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 꽃그늘 아래
그대 사람아
우리 어디까지 걸었던가
산책길 초입에 우연히 만나
쑥부쟁이 이쁜 꽃그늘 함께 보며
건네는 말 한마디
침묵 한 소큼
함께 들여다보며
동행이 되었던 그대여
그대는 띄엄띄엄 말을 하고
나 조용히 미소 지으며 듣기만 한
깊은 동행길이었네
간간히 미풍이 우리의 뺨을 간질으면
상기된 눈 들어 하늘 쳐다보았네
훌쩍 높아진 하늘 너머
우주와 은하의 강이 조용히 손짓하고 있네
저 끝없이 펼쳐진 은하의 강가에 그대와 앉아
벅찬 감동으로 세월을 낚으리
쑥부쟁이 꽃그늘을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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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아 어머니
살결이 낱낱이 찢겼구나
너덜너덜 떨어진 살점
불도저가 먹어 버리네
속살거리던 은빛 모래
모래성 쌓고 찜질하며 뒹굴던 사연들
이 강에 기대어 살던 무수한 생명붙이들
자장가로 흐르던 강의 노래
웅숭깊던 발걸음이
구담보의 전설로 날아갔네
도려내버린 젖가슴
아, 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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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이번 휴가는
지리산 칠선계곡
근처의 농가에서 보냅니다
산행에서 지쳐 돌아오던 저녁 무렵,
동네 어귀에서 아스라히 피어오르던 저녁연기에
왠지 목이 메입니다
집 주인은 우리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치자 빛 반죽을 개어 호박전을 부치고 있네요
우리 아이는 묵은지와 나물 반찬에
밥을 세 그릇씩이나 비웁니다
모깃불 피워놓고
우주바라기 하던 경인년 한가운데....
푸른 안개 속에
고요히 깊어 가던
이 여름밤이
오래도록 그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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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존재들이여
토교저수지 앞
서녘하늘 노을빛 배경삼아
이제 잠자리로 날아드는
쇠기러기 떼 수만 마리
양지리 하늘 온통 뒤덮어도
접촉사고 하나 없네
V ・ㄱ・ㅡ 자
온갖 형태로 날아드네
우주의 순항에 맞물린
생명들의 날갯짓이
철원하늘을 수놓고 있네
삶의 경건함이여
아름다움이여
우주적 존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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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동 강
부용대
물안개로 신비로운 한 폭의 동양화
강에 깃들어 둥지를 튼 생명들
모래사장에 꼬리를 끌고 지나간 수달의 흔적
보가 들어서면 물에 잠긴다며
한숨짓는 허리 굽은 농부
이 강가를 배회하는 강지킴이들의 발자국 소리
그 발자국 소리를 지우는 삽차소리
가물막이 공사로 속살이 다 드러난 그대
그래도 흐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