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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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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통증이 날 에워쌌다

 

흉추 12번 골절

 

누워서 견디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조금씩 차오르던

눈물샘이 터지던 날

세 살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늘 가까이서

서성이던 엄마가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커다란 힘이 

나를 감쌌다

 

다른 말은 다 놓아버려도

세상 떠날때까지

꼭 쥐고 있는

엄마라는 말은

대신할 말이 없다

 

 

출항

 

배가 정박해 있을 땐

태풍도 파도도

먼 나라 얘기였다

 

이제 닻을 올리고 

떠나야 한다

 

별이나 헤던 

저 여린 손

 

무수한 담금질과 메질끝에

호미나 낫이 태어나듯

담금질을 피할 순 없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고

 

앙다문 흙을 열어 

씨앗을 뿌릴 수 있게 하는

호미 같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날

 

목이 한 자나 길어진 항구는

팔을 넓게 벌리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을 것이다

 

 

빛을 잃다

 

시장 안 정육점

아저씨가 우두커니 앉아있다

 

종착역은 아직 멀었는데

홀연히 내려버린 그의 아내

 

무채색 옷만 입던

그녀가 빛이었나

몇 개나 켜져있는 전구가

빛을 잃고 어둑하다

 

환하게 웃던 그녀가 없는 가게

길 잃은 표정의 아저씨와

늘어지게 낮잠 든 고양이

둘이서 지키고 있다

 

 

관음죽에 물을 주며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녀를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우연히 들른 인터넷 카페의

카페지기였다

 

그곳을 들락거리다

습자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

우린 서로에게

스며 들었다

 

자폐가 있는

동생의 딸을 돌보면서

소중히 키우던 자신의 꿈은 

접어서 가슴에 묻었다

 

진액과 땀으로 보살핀 

긴 세월

이제 그녀의 몸도

예전같지 않다

 

관음죽*에 물을 주며

지구 한 귀퉁이를 

맑히고 있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녀가 생각났다

 

*관음죽 ; 공기를 맑게 하는 식물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가져옴

 

 

늦은 출발

 

군자란이 

꽃대를 밀어 올리다 멈췄다

 

뭇 꽃들이

다투어 피었다 떠나고

벌도 나비도 가버린 지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올라오던 꽃대를

물고 있는 군자란

 

서늘한 날씨에

때 늦은 출발

숨이 차게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없다

활짝 핀 날을

보여 줄 수 없다

 

계절의 고개를 넘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동그마니 앉아있는 군자란

가을 햇살 속에

긴 그림자를 끌고있다

 

 

달도 별도 없는

 

밤 깊은 줄 모르고

울어대는 귀뚜라미

 

서러움이

목까지 차였구나

 

속이 후련할 때까지

다 비워내라

 

네가 토해내는 얘기

토씨하나 안 빠트리고

열심히 들어줄게

손 잡아 줄게

등 두드려 줄게

 

달도 별도 없는 오늘 밤은

목 놓아 울기 좋은 날

 

네 울음 엮어서

천을 짜면 

가을 한 벌 만들겠다

 

울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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