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시 5편
* 후드득, 툭
* 댓돌난야*
* 쉬는 손
* 운문사 처진 소나무
* 그 강변 수양버들에게
후드득, 툭
때 아닌
소나기 온 뒤
온몸 던져
져버린 동백
눈 뜬 채
세상과 멀어지는
봄날 오후
조문처럼 스쳐가는
새의 그림자
잠깐 사이
열렸다 닫힌
붉은 입술
댓돌난야*
겨울 안개비 내리는 운부선원
댓돌 위 낡은 뒤축의 신발 한 켤레
가던 길 멈추고 숨 고르는 중인 듯
마음속 겹겹의 먹구름 쳐내며
난향 피어오를 때 기다리는 사람들
차 한 잔 머금고 바라보는 먼 산, 안개비 그치고
다시 선명해지는 산사 풍경
뒤돌아보지 않는 걸음들 또 다른 길 열고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하나의 바다, 깊숙이 들어가
무진장 피어날 자신을 위해
온몸 물어뜯는 아귀들 물리치는 동안
댓돌 위 신발도 함께 수행 중인 듯
* 난야(蘭若): 한적한 수행처라는 뜻으로, 절, 암자 따위를 이르는 말. (원어) 아란야(阿蘭若)
쉬는 손
빨랫줄에 널린 고무장갑
물기 말리느라
뒤집어져 있다
평생 식당일 하며
집안 일군 할머니
낮잠 주무시고
비스듬히 서 있는
바지랑대, 할머니 등뼈 휜
세월도 받쳐주었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대웅보전 향해
수백 년 솔향기 공양하는
소나무보살
사시절 초록빛 보시하는
그 자무량심
저 홀로 묵언수행
오만 가지 다 내려놓고
거친 몸에 새긴 법문
새들이 앉아 읽고
날마다 지켜보는
하늘바다
물고기 한 마리
그 강변 수양버들에게
네게만 속삭였던 말
기억하지 마
한때 네게 기대었던
나를 찾으려고
둘러보지 마
강물 위 윤슬처럼
무지갯빛 비늘 얻고
네가 닿지 못할 곳으로
영 떠나온 나
천둥 비바람 속
허공 치며 흐느끼던
네 머리칼, 푸른 핏줄기
사방 흩날리고
강물 따라 기어가는
네 뿌리의 숨죽인 울음소리
나는 듣고 있어
거슬러 갈 수 없는 날들
첩첩하게 저물었으니
이제 그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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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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