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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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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지 않아도 괜찮아

 

나무 그늘 아래

잡초들이 모여 사는 동네

 

보일 듯 말 듯 반쯤 얼굴 내민

새끼 손톱만한 노란 꽃과

눈이 마주쳤다

 

화려하지 않는 맑은 미소

옆집 살던 순이의

보조개가 생각났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연약한 종아리로 무사히 건너고,

힘이 넘쳐나는 이웃들의

텃새에도 아랑곳않고

실처럼 가는 줄기에서

안간힘 다 해 피워 낸

앙증맞은 웃음

 

크지 않아도 괜찮아

 

최선을 다 한 너에겐

너만의 큰 광채가 있어

 

 

     

     강보를 펴 보다

 

꼬물거리는 어린것

강보에 처음 싸 안던 날을 기억한다

 

새순 같은 손으로

웃음의 씨앗을 뿌리고

온갖 꽃들을 피우던

 

천정엔 푸른 하늘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밤이면 별이 반짝였다

 

어린 것은 스승이었다

길을 걷다 다리에 힘이 풀릴 때

손 잡아주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던

 

어느새 세월은 가고

비어있는 강보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젖 냄새 나는 듯

 

강보는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 고인 옹달샘

밤이 이슥하도록

나는 그것을 퍼내고 있다

 

 

 

   바닥을 드러내다

 

주산지를 

다시 찾아 나서며 설레었다

마음속으론 몇 번이나 다녀왔던 곳

 

모심기 철이어서인지

물을 다 흘려보내고

바닥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주산지

 

왕버들과

병풍처럼 둘러싼 산의 숲과

푸른 하늘을

그림처럼 담아내던

맑은 물이 사라진 그 곳

갑작스런 죽음으로

민낯이 드러난 사람 같다

 

외면하고 싶은 얼굴

 

저 깊은 곳에서

나의 바닥이 움찔했다

 

 

 

   그녀의 사치

 

팔순 넘은 그녀가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뜻밖의 제안에 깜짝 놀라

내가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 집안 형편과

몸에 밴 절약 정신을

알기 때문이었다

 

메마른 땅에서 태어나

초록의 꿈을 꾸기도 전에

척박한 땅으로

옮겨 심어진 나무

열매도 맺고

고목이 되었지만

수맥은 늘 멀리 있고

목마름과 함께 살았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모처럼 누리는

그녀의 사치를 받아들였다

 

변두리 중국집에서

마주 앉아 먹는

따뜻한 마음과 잘 섞은 짜장면

최고의 식사였다

 

모란꽃처럼 웃고 있는

주름 가득한 얼굴

 

 

 

     늦가을

 

선생님은

까마득하게 높은 곳의 열매를 따서

아낌없이 나눠 주신다

 

치마를 벌려 받기만하면

모두 내 것이 된다

 

잘 익은 말씀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내가 가진 호리병은

입구가 좁아

오래 갈무리하고 싶은 말들

숱하게 밖으로 떨어져 내린다

 

흩어져서 생기를 잃어가는

알토란 같은 말 말 말

 

부숴서 새로 만들고 싶은

내 호리병

 

 

 

    그저그런 그제

 

건강검진 결과지가 왔다

'유방에 비대칭 결절형 음영이 관찰되니

초음파검사 요망'

 

빠르게 줄기를 뻗어가는 불안의 넝쿨

 

어쩌면 원하지 않아도

당연한 듯 앉아있던

엄마와 아내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호수만큼 넓다

 

가시 덤불로 뒤덮인 방에

눈이 퀭한 창문으로 아침이 왔다

 

리본 하나 달지않은

그저그런 그제가

봄날이었음을 깨닫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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