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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죽어서 말한다

 

  산등성이에 뼈만 남은 고사목 한 그루

 

  살아서도 한 자리

  죽어서도 그 자리

  하얗게 열반하셨네

 

  껍질까지 훌훌 털고

  당당히 선 채

  풍장에 드셨네

 

  내리친 천둥 벼락에도

  묵언수행 중이신가

  묘비명도 한 줄 남기지 않으셨네

 

  비바람에 빈 몸 맡겼으니

  남은 천년 세월도

  담담하게 사시겠네

 

  곁에 선 나그네 바위 되어 엎드렸다

 

 

 

장맛을 그리며

 

  동네 장맛 내시던 뒷집 할매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살피지만

  빈 마당엔 흙먼지 나르고

  장독간엔 겨울 볕만 시리게 앉았다

  콩밭 매다 꺾어진 허리로 어디를 가신 걸까

  간수 뺀 소금 찾아 꽂지까지 가셨나

  구수한 장내 골목을 흔드는데

  대문엔 커다란 쇠자물통 말없이 걸렸다

  장맛이 나야 인심난다며,

  묵은 장독에 매달려 짚불 사르시던 할매

  우수雨水에는

  유모차에 참숯 가득 싣고 돌아오시겠지

 

 

꿈 나들이

  볕 좋은 날 바람 따라 소풍 길 나섰지요 울렁울렁 산 넘고 물 건너 호숫가에 다다랐어요 샛노란 수선화들 곱게 피어있었어요 길동무들 둥그렇게 둘러앉아 피자를 먹고 있는데 나만 김밥이었어요 슬그머니 호수에 빠진 산을 건져 올리려다가 손만 씻고 돌아섰지요, 그냥

 

 

 

꿈 나들이(2)

-를 기다리며

   그녀가 오신다기에 조심조심 댓돌을 밟고 마당으로 내려섰어요 한줄기 소슬바람 옷깃을 스칠 뿐 나무 위에도 장독 뒤에도 달빛만 가득했어요 대문 밖 골목엔 밤마실 나온 들고양이 어슬렁거리고 그녀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어요 울다가 쉬다가 다시 울어대는 풀벌레 따라 나도 울다가 잠에서 깼어요 쉿, 멀리서 발자국 소리 들려요 그녀가 오시는가 봐요

 

 

 

홧병

  

  어매 속처럼 늘 푸른 바다

  공연히 화를 낼 리는 없다

 

  해와 달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오느라

  온몸으로 출렁거리다가

  낮아서 더 넓어진 마음

  세상 쓴물 단물 다 받아내느라

  밤새 울렁거렸다

 

  큰 섬 안아주고

  작은 섬 안아주느라

  한없이 깊어졌어도

  시꺼먼 욕망

  나날이 뜨겁게 떠밀려오자

  태풍으로 소용돌이쳤다

 

  하늘보다 먼저 울어주던 어매

  기어이 바닷새들 따라 날아올랐다

 

  

  

 

스피노자처럼

  봄비 오는 날

  늙은 살구나무 살다 간 푸서리에다

  어린 살구나무 한 그루 심었다

  풋살구 깨물고 찡그린 웃음 감추던 옆집 순이

  가지째 꺾어 달아나던 개구쟁이들

  다시 오라고 담장 곁에다 자리 잡았다

  오가는 비바람에 꽃은 절로 필 테고

  신맛 단맛은 달과 해가 넣을 터이니 하릴없어진 노인은

  연둣빛 생명 터지라고 땅만 꾹꾹 밟았다

  세월이 모든 걸 휩쓸어 가더라도

  새콤달콤한 맛 즐기는 손자손녀들 위해

  가지는 미리 낮게 잡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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