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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이끼 낀 뒤란 낮은 울타리
그 옆에 핀 망개꽃 지고 난후
저녁달 올라와 적요한 뜰을 비춘다
오랜만에 보는 生家 뜰이고 달빛이다
내 유년시절 붉은 수숫대 울음에
마음 조렸고 지금도 그 소리
공허한 바람소리로 혼을 빼앗아가
망개알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
가슴속은 아궁이불 타듯
빨간 불길 새로 지난 일들 떠올라
야심한 밤에 놀라 깨어나면
어디로 갔는지 유년시절은 사라지고
한기에 오들오들 떨며
꽃으로도 피어나질 못할
망개알 하나 내려와
툭하니 뜰 안에 떨어진다
겨울에도 자라려는지



무엇을 더하여 꽃피울까

길과 나무 검은 구름 너희들은
장대한 팔월을 이고 있다
대기의 이동 말이 없고 울창한 숲은
먼 산에까지 이어진다
간혹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애초에 암울한 시선 북쪽 허공을 따르다,
그마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면
관수재 뜰에 힘없이 선 나를 발견하곤 더욱 놀란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암울한 덫으로 포박케 하는가
젊은 날 한 여인에 대한 이 질긴 사랑인가
그리움의 실로 짠 짧은 사랑의 形骸,
이젠 노랫가락만 남았으니
깊이 못 박힌 너 애련의 줄기에다
무엇을 더하여 꽃피울까



친구

웅덩이 물에 날짐승 그림자
비치고 관수재 뜰은 고요하다
육십년 지기 친구가 찾아왔다
내자는 씨암탉을 잡아 술판이
거하게 벌어지고 신변, 세상이야기로
의기투합 어두움이 내리고
외등 위로 밤달이 걸렸다
앵두꽃 달빛 아래 더욱 곱다
아침엔 까치가 울고




분이

유리잔 속에 고인 아침햇살
날아가던 새의 눈에 반짝인다
집들은 고요 속에 잠기고
여명에서 깨어난 아이들
수수밭으로 달려간다
달과 해가 바뀌는 순간
나는 행복하다

분인 우물에서
그 작은 손으로
햇살을 집어 올려
내 집 창문에
걸어두고
간다




살구꽃

어렸을 때다
소학교 2학년 때던가
허기가 진 하교길
남의 집 토담 밑에 앉아 있었다
그 날 살구꽃 연분홍빛은 하도 고와
구름도 햇살도 빛을 잃고
나는 한 폭 유채화를 보는 것 같아
한동안 눈이 부셨다

다 늙은 지금에도
연분홍 꽃잎과 토담에 트인 하늘은
나에게로 내려온다
고풍스런 언덕 위 흰 집들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구름의 황홀함에 취하여
또다시 혼미해진다



시인의 서재

건물 벽에 반쯤 잘린 산과 숲
서재 책상에 놓아 둔 흰 풀꽃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하늘을 비상하는 구름이 된다
힘찬 곡선을 그려내는 독수리의 날개가 된다
숲은 비와 태풍이 지나간 자리로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저들 왕성한 생명력은
여인의 유연한 나신으로 깨어난다
과녁을 향해 날아간 화살 탄력으로 꽂히고
투명한 유리알로 드러난 옥색 하늘,
아득한 허공과 무성한 숲에는
시인의 예리한 눈이 명중한다
거기 반짝이는 불꽃



저녁별

강물로 흘러가는 비애를 건저
하늘에 반짝이는 저녁별로 올린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번개를 부르고
묘지의 침울한 정적을 깨트린 분이 웃으면
작은 노새 프라테로여 너는 모게르지방의 황혼을
나는 네 고향 모게르의 포도밭을 떠올린다
여기 상암천 금호강에 이어지고
무학산이 포도밭을 내려다볼 무렵
집들 사이 훤한 들길로 나와
농가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본다
그 때, 이상하다 저녁별 하나
가슴에 환한 꽃등을 단다

* 모게르 J R 히메네스가 태어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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