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그릇
고미현
오래 즐겨 쓰던
사기 그릇 하나가 깨졌다
살짝 부딪혔을 뿐인데
어지간히 떨어지고 굴러도
말짱하던 그릇이었다
넘어지고 다쳐도
훌훌 털고 일어나던
스폰지 같은 마음이
조그마한 스침에도
서럽게 금이 간다
빛바랜 시간을 지나며
퍼석퍼석 골다공증이 온 그릇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경전 구절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사방 흩어진 경전 구절을
쓸어 담으며
관절염 앓는 무릎을
쓰다듬는다
금이 간 마음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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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연둣빛
고미현
이른봄 고운 햇볕 아래
오가피 새순을 뜯는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는데
미안한 손길로
한 바구니 가득 채운다
맛있는 연둣빛
순하고 쌉싸름한
치열하게 준비해서
첫발을 내딛는데 갈 곳이 없다
꿈이 사라진 연둣빛
어린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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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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