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려장
- 누군가에게 지팡이가 된다는 것
이규석
잡초라도 무리에서 벗어난다는 건 위험한 일
숨바꼭질하듯 몰래 자라야 한다
날마다 햇볕을 한 움큼씩 훔치고
비 오는 날엔 뿌리까지 흠신 적셔서
천둥이 쳐도 곧게 자라야 한다
벼락이 칠 때마다 키도 한 뼘씩 키워야 한다
버려진 땅에서 훤칠하게 자란 명아주
늦가을, 잘 벼려진 조선낫에게만 몸을 내놓는다
가마솥 안에서 옷을 벗고
그늘에서 몸을 말렸다가
모난 옹이 다 지우고 옻칠을 끝내면
청려장으로 태어난다네
곧은 지팡이 되려고 안달했던
나무는 아직도 흔들거리며 섰는데
쓸모없음의 쓸모
명아주는 거꾸로 서서 명품 지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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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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