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br><br><br>신상조<br><br><br><br> 베란다 가득 쏟아지는 볕이 부서진 사금파리처럼 요란스레 반짝인다. 어떤 노련한 작가는 그런 봄볕을 ‘요망스럽다’ 라고까지 묘사했던가. 과연, 3월 한낮의 적요가 무색하도록 힘차고 환한 볕발을 보니 그 말이 과장된 표현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쨍, 하고 부서지는 눈부심 때문일까? 때론 빛에도 날카로운 소리가 있는 것 같다. <br> 요 며칠 날씨가 화창한 것과는 반대로 지난 토요일부터 내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보름 동안이나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주말에야 돌아온 남편이 오랜만에 기분이나 내자며 데리고 간 식당에서도 겨우 숟가락을 드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아파트 단지 끝에 위치한 그 식당의 주 메뉴는 대구지리다. 마늘이나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지 않고 맑은 육수로 우려낸 국물 탓에, 개운한 맛을 좋아하는 그와 내가 평소에 즐기던 음식이다. 그런데도 그날은 목이 뜨끔거리는 게, 영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으슬으슬 한기가 오면서 시작된 몸살기가 화요일인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br> “너, 남편이 옆에 없을 땐 살 것 같다가 집에 오니까 아픈 거지?”<br> B는 자기 남편을 출근시킨 후면 벌려놓은 집안일도 아랑곳없이 지척에 살고 있는 내게 전화를 건다. 식후의 가벼운 커피 한 잔처럼, 그것은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에도 수화기 저편에서 한바탕 시시한 농담을 풀었었다. <br> “원래 전생에 원수가 맺힌 사람들끼리 만나서 사는 게 부부라잖아. 그러니 안 보이면 살 것 같다가도 만나면 오장육부까지 틀려오는 거야. 대게 서른 중반부터 시작해서 마흔 넘어서면 이런 증상이 누구에게나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아마. 근데 그놈의 인연이 다행히 이생에서 풀리면 좋은데 못다 푼 인연은 또 저 세상에까지 연결 된데요. 나 참! 그러니 너도 남편한테 잘해라. 너처럼 아프다 그러면 약도 제꺽제꺽 사다주고, 술 먹고 들어왔다고 바가지도 긁지 말고.……왜라니? 아, 그래야 다음 생에선 행여 안 마주칠 거 아니야. 결국 이승에서 남편한테 잘 해주는 길만이 얽히고설킨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오묘한 진리인 거지.”<br> “어디 그이가 사람을 귀찮게나 하니? 그 사람 순하고 무던한 거 너도 알잖아.”<br> 웬만하면, 팔불출 아니랄까봐 지 신랑 자랑이냐고, 타박을 할 법도 하지만 자식도 없이 오붓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한 우리 부부의 처지를 아는 B는 별다른 대꾸 없이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br> “얘, 어젠 ** 모임 가느라 택시를 탔는데 길이 정말 장난 아니게 막히더라. 그렇잖아도 늦어서 탄 택신데 기사양반 하는 짓이 자기는 하나도 안 바쁜 거야. 탈 때부터 하고 있던 전화를 끊을 생각도 않고 천하태평으로 느릿느릿 운전을 하기에 뭐라고 좀 쏘아붙이려다가 참았잖니. 아무래도 사근거리는 품이 마누라하고 통화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애인 같더라고. 좀 들어보면 재미있겠다, 싶었지. 어떻게 아느냐고? 얘, 세상에 어느 나이 든 남자가 지 마누라보고 너는 꾸미지 않아도 본 바탕이 예쁘다느니, 내일 꽃샘추위가 온다고 하니 옷을 단단히 입고 나가라느니, 외출하면 꼭 사진 한 장 박으라고, 그거 코팅해서 차에다 걸고 다녀야겠다고, 그렇게 간질간질한 소리를 귓전에다 해대냐. 엄청 닭살은 돋더라마는. 아까 헤어지면서 보니까 뒤통수에 머리카락 센 게 하나 언뜻 보이더라나 어쨌다나, 그러니 염색은 해야 되지 않겠냐고. ……그렇지. 흰머리가 어쩌고 하는 걸 보니 그쪽 여자도 나이를 먹을 만큼은 먹었나 보지 뭐. 그래, 그 얘길 듣는데 갑자기 코끝이 찡한 거야. 그 여편네가 바람난 유부년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애인 아니면 어디서 그토록 살뜰하게 챙겨주는 남자 찾겠니? 부디 둘 다 배우자한테 들키지나 마슈, 그런 마음이 절로 들더라니까, 글쎄.” <br> 다혈질인 B는 매사에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했다. 그렇다고 무슨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분히 그날그날 자신의 상태에 따라 좋고 싫거나, 옳거나 그른 것의 판단을 내리는 편이었다. 아마 다른 날 같았으면, 미친 놈! 그런 놈일수록 집구석에 들어가면 지 마누라는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릴 거야, 어쩌고 하면서 흥분했을 게 분명하다.<br> B는 고등학교 동창생들 중에서 나와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여직까지 친분을 유지하는 세 명의 친구들 중 하나이다. <br> 그녀는 엉뚱한 데 발목이 접질려 제대로 넘어진 적도 없어 보일 뿐더러, 세상 두려운 것을 미처 배우지 못한 행운아 같았다. 게다가 만사, 들볶는다고 일이 풀리는 건 아니라는 대범함에, 일 저지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과단성까지 갖춘 모양새였다. <br> 그런 그녀의 생활은 성격답게 늘 활동적이고도 돌발적이어서 어느 날 뜬금없이 야생화에 관심을 보이는가하면, 한번은 갑자기 댄스를 배워야겠다며 <탱고 레슨>, <셀 위 댄스>, <유 갓 서비드>, <댄서의 순정> 등 춤을 소재로 한 영화 테이프를 가게에서 열심히 빌려다보기도 했다. 일 년 전에는 같은 구(區)에 있는, 주말이면 가벼운 등산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의 모임을 웹 서핑 중에 발견하고는 거기에 선뜻 가입도했었다. 쉽게 호기심을 갖는 만큼 또한 매사 빠르게 싫증을 느끼는 B답지 않게 이번에는 열심히 이 산 저 산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거기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다녀온 곳에서 찍은 사진이나 등산기 비슷한 자신의 글을 한동안 꾸준히 올리기도 하는 눈치였다. 한때 야생화에 마음을 쏟았던 덕인지 그녀의 사진 속에는 내가 이름조차 미처 들어보지 못했던 꽃들의 자태가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앙증맞고도 화사했다.<br> 그러나 보온밥솥에서 이틀씩이나 묵어 변색되고 냄새나는 밥을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도 괘념치 않을 만큼 씩씩하게 진행되던 B의 취미생활은 아이의 상급학교 진학 준비나, 아내의 부재와 그에 따른 불편함을 참다못한 그 집 남편의 폭발로 대부분 제대로 배워보기도 전에 제동이 걸리곤 했다. 그럴 때면 빙빙 돌며 애써봤자 말뚝을 벗어날 수 없는 염소라도 된 듯 가족이란 굴레에 답답해하다가도, 자기네들이 편안해야 나도 있는 거지, 라며 주저앉는 B. 그러다가도 어느새 신천지를 발견해냈다는 듯 새로운 재미에 환호하는 그녀는 어찌 보면 온순하고도 낙천적인 낭만주의자였다. 그렇긴 해도 연거푸 두 번씩이나 산행을 따라나서지 못 했던 이번 봄엔, 자신의 처지가 담장 안에 심겨진 붙박이 나무 같다고 느꼈던지 아파트 화단에 핀 **을 찍은 사진과 함께 난데없는 시 한 편을 카페 게시판에 올려놓았었다. 오규원 시인의 <나무와 나무들>이란 작품이었다. B가 베껴놓은 시의 전문은 이랬다.<br><br> 뜰의 산벚나무 밑에서 뜰의 층층나무와 마가목 밑에서 홍매화<br>와 황매화 밑에서 고욤과 살구 밑에서 모과 밑에서 자귀나무 밑<br>에서 때죽나무 밑에서 석죽과 돌단풍 밑에서 고려영산홍과 배롱<br>나무 밑에서 조팝나무 밑에서 불두화와 화살나무 밑에서도 그들<br>이 산다 이 지상에서<br><br> 가장 얇고<br>납작한 나무들<br><br> 그녀의 글 밑에는 억새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회원의 짧은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br> “가화만사성! 그렇더라도 너무 납작 엎드려만 있지 마십시오. 봄이 왔습니다.”<br><br> 애가 당초에 들어서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신혼 일 년째 만에 들어선 아이는 8개월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음악소리에 맞춰 툭툭 내 배에다 발길질을 할 만큼 장난스러웠다. 유별난 입덧조차 없이 수월하게 자라준 태아가 죽어나온 것은 어이없게도 10개월을 고스란히 견디고 난 끝이었다.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나 계속된 진통으로 내가 거의 혼절한 끝에 밀어낸 아이는 끝내 숨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제왕절개를 할 적기를 놓친 의사의 실수라고 주위에선 수군대고 분노했지만, 난 아이의 조막만한 발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조차 없다는 사실만이 돌연히 짚게 된 허방처럼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 사내아이였다고 했다. 남편은 그 애를 어디에다 묻고 왔을까? <br> 그 일이 있고 달포도 지나기 전에 남편은 스스로 정관수술을 받고 왔다. 그이 밑으론 결혼식을 코앞에 둔 아우와 대학생인 누이가 있었다. 그렇듯 시댁이 손이 절실하게 귀하지 않은 집안이라고는 해도 맏이인 그의 처지에 비추어볼 때, 첫아이를 잃은 충격치고는 성급하고 무모한 결단이었다. <br> 나와는 한마디 상의조차 없이 일을 처리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남편은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자신이 겪은 사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br> “퇴근 때였어. 차가 밀려서 앞차가 서고 내 차도 섰지. 그런데 백미러로 보니 뒤차가 그냥 달려오는 거야. 어떡하지! 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쾅, 하고 내 차를 들이받더군. 할 수 없이 내 차도 앞의 트럭을 받을 수밖에. 소리는 크게 났지만 별 사고는 아니었어. 보닛이 좀 찌그러들고 운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으니까. 뒤차가 보험처리를 했고. 근데 뒤차가 질주할 때 그 기분이 묘하더라고. 사고는 뉴스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내 일상이 그렇게 안전한 게 아니구나.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그렇게 튼튼한 것만은 아니라는… 뭐,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는 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들.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당신, 이런 말하면 내가 나쁜 놈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애가 그렇게 되었을 때 나 이상하게도 완전히 슬프지만은 않았어. 무거운 짐을 하나 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끔찍하지?”<br> 남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을 더듬어 잡았었다. 한 달 새 놀랍도록 야윈 모습과는 달리, 그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br> 기어이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 후련해서였을까. 남편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곁에서 나는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와 숨결이 맞닿도록 가깝게 누워있었지만 문득, 남편과의 거리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아니 도리어 아주 밀착된 사이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가 가진,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삶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를 주검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나의 무력감은 불가해하게도 한배를 빌려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br> 미리 준비해둔 신생아용품들은 이듬해 신혼여행을 다녀온 즉시 임신한 아랫동서에게 그대로 물려주었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서는 죽은 아이 차지가 될 뻔했던 물건이라고 찜찜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았다. 4.5킬로그램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그녀는 도리어, 형님 아기가 제게 온 것만 같아요, 라며 나를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br> 오 년 전쯤, 도로공사에 근무하는 시동생이 연거푸 지방지사로 발령을 받자 할 수 없이 동서는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해 그곳에다 살림을 합쳤다. 시동생의 직장은 길게는 7년, 짧게는 2,3년이면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곳이었다. 동서는 이따금 그곳의 특산물이나 자신이 직접 만든 무공해비누를 짧은 편지와 함께 부쳐오곤 했다. <br> “형님, 천연비누는 화학재료나 경화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물에 약한 성질이 있습니다. 꼭 비누받침대를 사용하세요. 식용재료를 사용했으므로 보존할 수 있는 기간은 일 년밖에 안 된답니다. 일전에 고모께 보내드렸더니 아기가 앓던 아토피에도 효과를 제법 봤다고 하시더군요.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저희는 다들 잘 지낸답니다.”<br> 비누는 일정한 틀에라도 찍어냈는지 깜찍하게 둥글거나 예쁜 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둘러싼 랩을 벗겨내도 시중에서 파는 여느 제품들과는 달리 동서가 보낸 것들에는 별다른 향이 없었다. 주위에 각별한 이 한 사람 없는 곳에서도 동서의 삶이 비누 모양새처럼 아기자기함이라면, 내 삶은 그렇듯 무취에 가까운 공허함이 아닐지.<br> 밤에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 것을 빼면 내게 문제라곤 없어 보인다. B는 직설화법의 명수답게 그런 나를 대수롭지 않은 우울증환자로 거침없이 몰아붙였지만. 달랑 두 사람만 씻고 벗고 먹는 생활이란 게 별 게 아니어서 일거리가 많은 살림살이도 아니고, B처럼 일을 벌이는 법이라곤 없으니 내 육신은 지치거나 단잠이 필요치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br>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밤이 깊어가고 어둠이 검푸른 색으로 짙어질 때까지, 그 검푸름이 또 희뿌옇게 바래갈 때까지, 나는 꼼짝 않고 누워 묵묵히 그 과정을 지켜본다. 주방에선 냉장고가 가래 끓는 소리로 그르렁대고, 이따금 거멀쇠가 벌어지거나 가구들이 마른 뼈를 맞추어보곤 한다. 낡은 수도꼭지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그 각각의 소리들 너머로 어김없이 재깍재깍 분침과 시침이 돌아간다. 모두 조금씩 낡거나 늙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다른가. 시계바늘처럼, 다만 지나갈 뿐이다.<br><br> 번잡할 리 없는 우리 부부의 살림 규모에 일손이 부족할 까닭이 없었으므로 사람을 부리라는 B의 권유에 나는 대뜸 웃기부터 했다.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br> “네 깔끔한 성격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새댁 형편이 너무 딱해서 그래. 남편이 직업군인이었는데 다쳐서 퇴직을 했나봐. 매달 조금씩 연금은 나온다지만 어디 요즘 세상에 고것만 갖고 넉넉하게 살아지니?”<br> 무턱대고 인심 쓰기를 좋아하고 남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덮어놓고 도와주마고 큰소리부터 쳤을 B이니 내게까지 전화를 건 앞뒤 상황이 짐작 되었다. <br> “그렇다고 몸을 굴리면 큰일 날 만큼 건강이 형편없는 것도 아닌데 이 남자가 도통 일할 생각을 안 한대요. 하니 젊은 사람들이 내내 구들장만 지고 있으면 뭐하겠냐고, 자기라도 벌어야겠다고 일거릴 찾아 나섰는데 남편이 가벼운 의처증까지 있댄다. 그래서 사람들 들락거리는 식당 같은 데나 판매점 같은 데는 아예 나갈 마음도 못 먹고, 게다가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너나 나처럼 여자들만 오도카니 있는 가정집에나 낮에 잠깐씩 부칠 수 있나봐.”<br> B는 덧붙이길, 다섯 살 난 그녀의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귀가해야하므로 일은 꼭 오전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br> 일주일 후, B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며, 내가 사는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확인하기 위해 Y는 전화를 걸어왔다. 쟁쟁쟁,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진 여자였다. 수화기 이편에서 나는 그녀의 삶이 넉넉하거나 산뜻하지 못한 게 여자아이 같은 그 목소리 탓이라고 단정했다. 들려오는 첫마디에 단박 세일즈맨의 냄새를 맡고 거리를 두듯이, 그 목소리에서 나는 터무니없게도 Y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짐작할 것만 같았다. <br> 오전이라고는 해도 폭염 아래를 한참 걸어와서인지 처음으로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는 Y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소녀처럼 풀어헤친 단발머리에,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긴 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br> 한 달쯤 후, 더운 날씨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줄곧 하고 있는 그런 차림새가 그녀도 신경이 쓰였던지 팔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았다. <br>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재가를 하셨어요. 전 할머니한테 맡겨졌는데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낮이고 밤이고 울었지요. 그렇다고 할머니가 저한테 뭘 못해주신 것도 아니었는데. 도리어 불쌍하다고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몰라요. 근데도 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어느 날 할머니가 절 엄마한테 데리고 갔어요. 그때부터 엄마랑 의붓아버지랑 함께 살게 되었지요. 제 밑으로 배다른 동생들이 다섯이나 돼요.” <br> 그들 얘길 하면서 그녀는 뭐가 새삼 흐뭇한지 수줍게 웃었다.<br> “그 애들을 제가 다 업어 키웠어요.”<br> “의붓아버진 잘해주셨어요?”<br> “잘해주고 말고가 있나요. 그냥 남 보듯이 그렇게 덤덤하게 대하셨어요. 그래도 그만하면 좋은 분이셨지요. 근데 엄마가….”<br> “엄마가 왜요?”<br> “사는 게 팍팍했거든요. 공사판으로 떠돌던 아버지는 잡일이 늘 있다 말다하고. 엄마가 미장원을 하셨지요. 근데 애들은 저까지 여섯이나 되고, 집에 일거리는 넘쳐나고. 그러니 동생들이 울거나 말썽을 부리면 엄만 그 화풀이를 저한테다 할 수 밖에요. 그날 하필 제가 막내를 집에 두고 빨래를 하러 간 게 잘못이었어요. 연탄화덕에 손을 짚어 그 애가 화상을 입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불같이 화가 났었지요, 엄마가.”<br> 소매를 걷고 보여준 그녀의 오른쪽 팔뚝에는 미장원에서 사용하던 고데기로 그날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지졌다는 자국이 낙인처럼 선명하고 끔찍했다.<br> “그런데도 전 할머니한테 돌아가고 싶진 않았어요. 매를 맞아도, 하루 종일 동생들을 업고서 온갖 궂은일을 해도 그래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게 행복했거든요.”<br> 그 말을 할 때의 Y는 정말 좋았던 한때를 회상하는 사람처럼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울 듯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br> 한번은 거실에 놓인 책장에 마른걸레질을 하던 Y가 갑자기 생각난 듯 내게 에스키모의 썰매 끄는 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br> “전에, 아직 애가 없을 때 말이에요, 자식들이 다 외국에 나가고 혼자 지내시는 할머니를 돌봐드린 적이 있거든요.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할머니였는데, 그 댁엔 책이 엄청 많았지요. 그 중에서 우연히 제 눈에 띈 책이 일본인이 쓴 ‘알라스카 이야기’라는 책이었어요.”<br> 그녀가 읽은 대목의 내용은 이랬다.<br> 에스키모의 썰매를 끄는 개는 많을 땐 15마리 적을 땐 7마리나 8마리가 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들이 개들로 하여금 썰매를 끌게 하는 방법이다. <br> 개들 중에서 우선 최고로 병약한 개를 골라 줄을 짧게 맨다. 그리고 가장 썰매 가까이 매단다. 썰매를 끄는 사람은 그 개에게만 채찍질을 하는 거다. 다른 개들은 그 개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고 더 빨리 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짧게 매인 이 병약한 개의 역할은 비명을 지르는 거다. 얻어맞고 비명 지르는 일이 그 개의 몫인 것이다.<br> 느릿느릿 걸레질을 하던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br> “그 책을 읽을 땐 몰랐는데, 요즘은 한번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내가 그 개는 아니었을까. 최고로 비루먹고 병약한. ……아무도 그 불쌍한 개가 완주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