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의 블루
이진흥
네 작은 가슴속에는 블루가 있다. 그것은 푸르고 깊은 눈으로 나를 포박한다. 블루의 눈빛을 본다. 우울한 신비가 감도는, 캄캄한 고요 속에서 하느적거리며 미소 짓는 블루, 그 지느러미와 날카로운 발톱이 숨막히게 한다. 거대한 청색에 싸여 있는 아늑한 슬픔, 내 안의 블루는 소리 없이 나를 살해한다.
김현옥
살아온 길들을 지우며 떠난 길
그랑 블루, 너는 나의 최후의 집
삶의 강물이 이끄는 대로 순하게
네게로 갔네, 오래 익숙했던 마음의 집을 떠나
깊고 푸른 네 몸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내 붉은 아가미 물결 따라 춤추었네
오랜 미망의 길들이 사라지자
문득, 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고 푸른 사랑
너는 언제나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 왔었네
햇빛이 순결한 네 몸의 건반을 누르면 너는
푸른 풍금소리로 늙은 내 지느러미 어루만졌네
내가 간직해온 몇 개의 붉은 노래들이
동백꽃처럼 후드득 떨어지고
네가 들려주는 따스한 자장가에
먼 길 가만가만 흘러왔던 내 마음 뉘였네
그랑 블루, 나는 네 속에서 잠들겠네
갓 피어난 분꽃 같은 입술로
너의 깊고 푸른 이마에 굿 나잇 키스를 하고
꽃들이 파랗더라
최승자
꽃들이 파랗더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일까
꽃들이 파랗더라
이 주야장천 긴 날에
꽃들이 파랗더라
* 시 읽는 밤은 행복하다. 행간 사이, 시인의 마음을 엿보는 일 또한 즐겁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도 이런 즐거움과 행복이 있기에 해마다 푸르른 봄이, 꽃들이 부럽지 않다.
이진흥 선생님과 김현옥 시인으로부터 받은 시집과 한때 지독히 좋아했던 최승자 시인의 시집들을 다 꺼내놓고 다시 읽어 보며 오늘밤은 ‘블루’라는 단어에 꽂혔다.
새로 산 시집들을 곁에 쌓아놓고 다 읽지도 않은 채, 읽었던 시집의 시들을 다시 찾아 읽는 것은 그 시가 준 감동과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언제 읽어도 변함없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기에 시 또한 봄꽃처럼 해마다 피어나는 한 편의 꽃인 셈이다. 사시사철 향기로운 꽃,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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