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dance? > 정겨운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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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의 진국, OO님의 친절에 화답하며 지난 2월에 쓴 글을 올려 봅니다.   

 

                               Shall we dance?

                                                                                                            

 

  퇴직하고 나니 그동안 방치해 둔 잡다한 일들이 송곳처럼 나를 찔렀다. 오래된 책 더미와 쏟아질 것만 같은 가재도구,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야말로 내려놓기를 실천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하지만 내려놓기라는 말에 나는 꽤 부담감을 느낀다. 쥐고 있는 뭔가가 있어야 내려놓을 텐데 주어진 일을 해내려고 능력껏 노력한 것뿐이니 말이다. 그동안 나는 책상 앞에서만 큰소리치는 위인이었다. 결산하자면 내가 배운 교과서와 오늘까지 축적된 학자들의 연구물을 부지런히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통로 역할이었다. 지식이 늘면 근심도 쌓이는 법, 이제 와서 보니 머리만 굵어진 내가 몹시 부담스러웠다.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인 삶은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왜 이리 세상을 모르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은 텔레비전 뉴스를 끝도 없이 보게 했다. 각종 미디어는 내가 동동거리며 살았던 캠퍼스와는 딴판이었지만 세상의 속살을 화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동안 빈둥대다가 책 더미부터 정리했다. 최근 책들은 중고서점에 가져갈까 생각했지만 일의 능률을 위해 묶어서 내다 놓았다. 서점을 찾아 나서는 일도 번거로웠다. 켜켜이 쌓인 복사물을 정리할 때는 울컥할 뻔했다.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노트와 자료들. 절판된 책을 어렵게 복사하고 그걸 스프링노트로 만들어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흔적. 그렇게 열심히 메모한 이유는 훗날 다시 들춰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젠 내다버리는 것이 좁은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오래 갈무리한 수고가 의미 없게 됐지만 사십 년 전에는 누구나 그런 방식으로 공부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고 위로할 수밖에. 이제는 인터넷 검색으로 다양하게 자료를 찾을 수 있으니, 앞으로 인간은 명령만 내리고 실무는 AI가 맡도록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야말로 시대와 문화를 바꿔 놓은 첨병임에 틀림없다.

  건강도 문제였다. 키는 오그라들었고 어깨는 구부정해졌다. 이석증과 야맹증. 허리는 급하면 통증 주사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앉은 자세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골반도 비뚤어졌나 보았다. 도수치료나 침 맞는 것도 그때뿐, 척추 3,4,5번은 나를 따라다닐 불치병 같았다.

  원인은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처럼 나 역시 책상에 한 번 앉았다 하면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일어나질 않았다. 컴퓨터로써 뉴스와 정보를 찾았고 수업자료 편집도 컴퓨터라야만 가능했다. 몸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시간에 쫓겨 차로 이동하고 대화는 스마트폰으로 나누고 물건은 택배로 받았으니 말이다.

  관절 시린 것 역시 운동 부족 탓일 것이다. 건강보조식품도 수면 양말도 지나가는 말에 불과했다. 우연히 찾아낸 방법은 율동이었다. 음악에 맞춰 손발과 허리 돌리기를 해보자는 것. 구청에서 운영하는 체육센터를 통해서 라인댄스를 알게 됐다. 행과 열, 즉 라인을 유지하며 함께 움직이는 춤 동작이었다.

  몸의 평형감각이 둔하던 내가 리듬에 맞춰 체중을 옮기는 일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중요한 건 연습. 밴드에 올라온 영상을 따라 집에서도 가끔 스텝을 밟았다. 춤바람이라는 말보다 춤 운동이라고 생각하니 맨손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 후 허리는 더 이상 어긋나지 않았다. 혹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탈이 나면 모를까 오히려 걷기 이상의 운동이라 근육이 강화되는 느낌까지 받았다. 게다가 춤은 시와 음악을 아우르는 장르라서 기분 전환에도 좋았다.

  일에도 매듭이 있다면 두 시간 정도가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일도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무조건 일어선다. 머리에서 쥐가 나기 전에 다른 일로 대체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두어 시간 정도에 머무를까 한다. 수다를 떨다 보면 옛 이야기나 남의 말 전하기로 흘러갈까 조심스럽다. 기억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고집하는 버릇이 있기에 말이다.

  우리는 자주 행복하기를 꿈꾸지만 행복감이란 신체의 생화학적 호르몬 반응일 것이다. 뇌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3에서 7까지 그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데 7이면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와도 7 이상의 수치는 없다. 그러니까 행복은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는 일이겠다. 그러니 몸이여,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겠다. 반복되는 일상에 리듬이 담긴다면 그 리듬을 흥얼거리며 우울증과 자괴감을 풀어보면 어떨까. 팝송도 싸이의 노래도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파도 타는 듯한 율동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요즈음, 생의 주기에 걸맞은 리듬에 맞춰서 사는 여유를 부리고 싶다

 

                                                                                                                                                                  ㅡ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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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ll we dance?
    경쾌한 제목의 묵직한 울림, 명품 글!!!
    <밑줄 그으가며> 읽고 또 읽으면서~
    울다가 웃다가~
    퇴직 후의 기분이나 건강문제~
    <뼛속까지> 공감해요^^
    마치 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듯,
    시원하고 따뜻함을 느낍니다^^
    라인댄스는 먼나라 얘기 같았는데 이제 가까이 있네요^^
    조르바 교수님의 신선한 도전을 뜨겁게 응원하며,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러워라~~~~~~~~~~~~~

    정년 퇴직을 축하(?)드리며
    대학생들에게 명강의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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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빛에서 존칭을 받으실 분은 한 분밖에 없으니
    OO님께옵서는 무언의 규칙을 어기시면 아니 되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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