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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애지문학상 시부분 수상자- 정해영 /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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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

 

정 해 영

 

산을 올려놓은

가슴이었다

 

뱉어서는 안 될 말

가파른 높이로 쌓여

 

핏덩이일 때

작은 집으로 보낸 아들

남의 식구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천륜을 막아서는 그림자

밤마다 바닥에 엎드려

호랑이처럼 울었다

 

퉁퉁 불은 젖을

눈물로 죄다 말려버리고

 

일생의 울음

눌리고 눌러

납작해진 아들

 

신산한 가슴에

눈감아도 지지 않는

꽃으로 박혀 있다

 

       

*

제 19회 애지문학상 수상 소감

 

 사과를 깎으면 껍질이 구불구불 살아납니다. 긴 끈  같기도 하고 길 같기도 하였습니다. 제 몸을 깎아야 생기는 붉은 인연의 길 따라 수많은 길을 걸어 왔습니다. 어젯밤, 한 달 전, 혹은 수십 년 전에 걸었던 길, 열 살 즈음 읍내에 있는 사진사가 와서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나리꽃 향기를 찍은 가족사진 속의 그 길은 다시 걸어 보고 싶은 길이기도 하지만 죽은 짐승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은 진저리 치는 길도 있었습니다. 어떤 길은 처음은 험난했지만 평탄한 길로 들어서기 위한 감춰진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문학은 삶의 해석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곧 삶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친정에서 26년을 자라고 환경이 아주 다른 남편을 만나 오십 년 가까이 살아 왔습니다. 밖에서 우리 부부를 들어야 보는 시선은 "그러나 또한"으로 이어지는 씨줄과 날줄의 신비라고 하였습니다.

 

이성주의 "그러나 또한" 감성주의

획일주의 "그러나 또한" 다원주의

경제제일주의 "그러나 또한" 문화주의

현실주의 "그러나 또한" 이상주의

능력주의 "그러나 또한" 인본주의

직선주의 "그러나 또한" 곡선주의

상면하복의 방식 "그러나 또한" 하의상달의 방식

 

이렇게 상반되고 모순된 것 속에서 "그러나 또한"으로 이어져 스며들고 공존하여 통합하는 것이 저의 삶의 환경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극복해야 할 대상과 마주치게 되고, 어떤 때는 그것이 몇 달이 걸려야 넘을 수 있는 태산준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있어 문학은 늘 밟고 가는 현실과 안고 가는 생각 사이에 있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삶이 비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한 조각의 사랑을 얻기 위한 사과 깎기 같은 것으로, 제 살을 깎아야 길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지나간 모든 길은 속살의 긴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뿌리 칠 수 없는 길이었고, 그 길의 가장자리에는 칼끝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참회와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저의 삶의 갈피에서 나온 시를 뽑아 주시다니 살아온 날들 중 처음 만나는 뜻밖의 일입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따뜻한 격려 잊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

제 19회 애지문학상 시부분 심사평

 

 애지 문학상이 올해로 열아홉 번째를 맞이했다. 애지문학상은 그동안 우리 시단의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일에 열중해 왔다. 이미 보석으로 인정받은 시인에게 뒤따라 박수를 치기보다는, 새로운 보석을 찾아내 우리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올해도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사실 문학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요즈음 문학상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학상 선정에서 작품 자체를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작품 이외의 요소들이 작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작품보다는 학연과 지연 등과 같은 요인이 문학상 선정의 기준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이 새로운 창작의 동력을 제공하기보다 문인들 사이의 친소관계를 확인하는 장으로 변질된 부분도 없지 않다. 이런 연유로 하여 일부 문인들은 문학상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번 애지문학상은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음을 밝혀둔다.

 본심에 올라온 애지문학상 후보작은 길상호의 '쌍둥이', 김추인의 '나를 응시하는 눈이 있다', 박성우의 '안부', 안현심의 '굴참나무', 오은의 '그들', 이병률의 '기차표', 이서빈의 '개복숭아꽃'. 이제니의 '너는 멈춘다', 정해영의 '압화', 한이나의 '노독'(가나다 순)등이다. 이들은 우리네 삶과 내면의 다양한 표정을 읽어내는 데 저마다 개성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현실 비판과 삶의 성찰이라는 시의 오래된 주제를 나름의 언어로 충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요즘처럼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이제는 시가 읽혀야 한다는 당위를 증명해 주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일은 우리의 삶과 현실을 갱신하기 위한 언어의 혁명이고, 시인은 그 혁명의 주동자가 되어 앞장서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우리가 망각하고 살아가는, 하지만 꼭 필요한 생각과 느낌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심사위원들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정해영의 '압화'를 제 19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정해영 시인은 다른 시인들에 비해 시인으로서의 경륜이 길지 않지만,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압화'는 짧은 시 형식 속에 인생의 기구한 사연과 독특한 감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핏덩이일 때/ 작은 집으로 보낸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수많은 사연을 상상하게 하는 서사적 요소이자, 다양한 결의 서정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요소로 작용한다. 어린 아들과의 생이별이라는 비극적인 서사가 슬픔의 "눈물"혹은 "울음"의 서정으로 압축되고 있다. 그 서정의 절정은 "신산한 가슴에/ 눈 감아도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는 대목이다. 일평생을 남의 집에서 억눌리며 살아온, 또는 스스로 억누르며 살아온 "납작해진 아들"이 압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꽃"은 슬퍼 보이지만 아름답다. 한 어머니의 극단적인 고통이 미적 거리를 획득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 되었기 때문이다 서사적 요소를 서정적 감각으로 변용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사람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억눌린 사연을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눈물"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것은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에 해당한다. 시인은 그러한 사연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인간의 마음을 위무하고 승화시켜 주는 존재이다. '압화'는 이러한 인생과 시에 관한 근원적 성찰에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앞으로도 더 새로운 생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계속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글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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