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하이디님 못지않게 묵직하고 새롭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일종의 소모품 같은 것인데
이러한 류들은 소멸이나 존재의 죽음 같은 의미로 확장해 볼 수 있습니다.
소멸되는 것들!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들은 육신적으로는 아프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아프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러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이 시는 던져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연이 다 의미심장하지만
이 시의 압권은 4연이라고 생각합니다.(조르바)
“가을 볕 아래 서 있는 나무를 본다/붉게 타올라도 뜨겁지 않은/단풍잎이 맹렬하게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가을 볕 아래 서 있는 나무”가 주는 익어가는 것들에 대한 성찰의 의미.
“붉게 타올라도 뜨겁지 않은”이라는, 한참 생각하게 하는 말(뭐지???)
‘모세의 떨기나무’를 연상케 하는, 자연현상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신비를 느끼게 한다는 말.(조르바)
“단풍잎이 맹렬하게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구절 역시
단풍잎이 자기 색채,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존재, 즉 현존재(Dasein)로서 특별하게 세계에 반응합니다,
존재론적인 질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이겠지요.
그래서 이 시의 폭이 가까운 몸에서부터 우주까지로 울림이 큰 것 같습니다.
“소리 없이 헐거워지는 공중”이라는 말 역시.......
공중은 빈 공간이지만 꽉 차였던 것이 헐거워지는 느낌을 주는,
움직임을 거느린 표현이 시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씩 사라지는 내 것 아닌 내 것들” 정직하고 따스하게 읽힙니다.(조르바).
“오늘도 이만큼 죽었다”라는 말에 그렇게 공감하면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마지막 연에서 티 하나를 발견하십니다.
“망설임이 있어야겠다”라는 운문적 주문(산문적 주문이 아닌^^)을 하십니다.
이 시의 품격에 비추어, 쉽게 쓴 말 같아서
직접 말하기보다 에둘러(?) 말하라는 고난도의 요청 같습니다.
서강님께서는 능히 감당하실 수 있는 “하이 파이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만큼 살았다”(?) ㅎㅎ, 우린 그런 Hi-Five로도 충분히 만족하지만
서강님의 마지막 향기를 곁들인 수정본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타올라도 뜨겁지 않은” 이 시의 호소력에
‘조바심 나도 느긋하게’ 화룡점정의 시를 기다려보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