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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00자 에세이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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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시인의 에세이, 「당신에게 보내는 지나간 한 해」 중에서


문을 안으로 닫아걸었습니다. 문밖에는 덧문이 있는데도요. 두꺼운 옷으로 몸을 여러 겹 쌌습니다. 사람들이 움츠리고 걷습니다. 자신의 동굴로, 외투 속으로, 두꺼운 껍질, 그 성곽 속으로, 꼭꼭 숨기 위하여 바삐 걷는 것입니다.

문을 닫은 집들의 유리창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옵니다. 불 켜진 창의 빛깔이 아늑한 애수를 자아냅니다. 행복에 빛깔이 있다면 겨울밤 불을 밝힌 가정의 유리창 빛깔일 겁니다.

문밖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짐승의 울음소리 같습니다. 겨울은 겹겹이 둘러싼 껍질 때문에 진실한 내면을 내보일 겨를이 없습니다. 겨울은 그 때문에 슬프고 그 때문에 고독할 것입니다. 잎을 벗어 버리고 뼈만 남은 나무들이 장승같이 서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길고 긴 동면을 시작할 것입니다. 땅속 깊이에는 바쁘게 여름을 살아낸 개미의 궁궐이 있을 것이고, 더 깊은 곳에는 두더지가 쌓아 놓은 도토리 더미가 있겠지만, 땅 위에는 눈바람이 매서울 뿐입니다.

겨울은 은둔의 계절, 거절과 침묵과 어둠만이 바위처럼 웅크리고서 죽음에서 헤어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입니다. 그리고 12월입니다. 12월, 마지막이라는 말이 잊었던 목마름을 일깨웁니다. 불안과 초조를 동반한 목마름은 시한이 벼랑 같은 경계 때문일까요? 보상을 받거나 변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감 때문인가요?
나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혹시 소홀히 했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다시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만났으며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당신과 마주할 때 나는 다소 방종해도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알고 있으며, 나는 잘못을 용서받거나 수정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12월, 하강의 곡선이 바야흐로 지평선에 이르는 이 시간은 황혼. 나는 이 편지를 당신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 일 년을 함께 묶어서 보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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