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연의 “몸이 땀 흘리는 대로/ 마음 따라 가니/ 해 질 무렵 근심도/ 너를 사랑한 기억도 내려놓는다”에서
“마음이 따라간다고 했으니 피동일 텐데
”내려놓는다”는 능동이 되어 버린다고,
그래서 “가라앉는다”라든지 “녹아내린다”라든지, “내려앉는다” 등을 생각해 보라는 교수님 말씀.
2. 4연에서
“계절 바뀐다고, 창 밖 나무들/ 살짝 부끄럼 탄다”에서
창 밖에 선 나무들이 왜 부끄럼을 타는가에 대한 의구심.
갑작스럽다(곽미숙 님, 서강님 외),
뜬금없이 생소하다는 반응(하이디님 & 교수님).
더 깊은 무언가를 꺼내라는 교수님의 진언.
부끄럼 탄다 대신에 “물들어간다”는 의미로 바꾸어 보라는 조언들.
1,2연에서도 이 시가 좁은 일상성을 벗어나도록
좀 더 확대된 시야를 보여주라고 일러 주십니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공간을 더 넓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보라는 주문.
수축되는 기억력이라 할지라도 가벼워져야 상승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욕망을 줄여보라는 권유.
3. 희랍시대에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서 (개처럼 편안하게) 자족할 줄 알았던 디오게네스의 행복론을 교수님께서 꺼내셨습니다. 후~!
소원을 묻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저리 비켜달라고 했던 그 여유만만, 대범함.
그러니까 견유학파일 수밖에 없겠지만
조르바는 근심학파 초조학파여서.....
소유가 많으면 행복하지 않다는데,
왜 버리지 못하고 머리 위에 이고 다니는지요?
잘 버려야 잘 살 텐데, 아직 멀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