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미인
정해영
등에 붙은 흰 머리카락을 떼어주다가
스무 살 적
그의 어깨 너머(로) 떠오르던
푸른 앞날을 보았다
겨울 아침
언 손이 펴지지 않았을 때
셔츠의 단추를 채워 달라던,
그 때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머리를 빗을 때면
아직도 귀속에 살고 있는(△)
머리카락 미인이라는 말
평생 빠져 나올 수 없는 바다였다
아무도 일러 주지 않았지만
세월이 일러 주었다
허우적거리던 나를( or 그 옛날을)
나이가 건져 주었다
이제 알겠다
무심코 손이 하는 일들이
수심을 모르는 깊은 바다에
스스로를 밀어넣는 일이었음을
1. “머리카락 미인”이라는 제목이 “긴 머리 미인“(조르바)이라는 말보다 더 넓고 독특한 개념이어서 좋다고 하셨습니다(교수님, 서강님).
2. 수식어가 피수식어를 한정하지 않도록, 형·부를 조심하라는 말씀
예컨대,
1) 타인의 등에 붙은 흰 티끌 →→ 등에 붙은 흰 티끌 →→
티끌 대신에 “등에 붙은 흰 머리카락”
2) 단정한 그의 어깨 너머 →→ 그의 어깨 너머 +떠오르던
3. 교수님의 예시 소개
화살과 노래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너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
공중을 향해 노래 하나를 불렀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어느 누가 그처럼 예리하고 강한 눈을 가져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참나무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네.
교수님께서 일러주신 롱펠로우의 <화살과 노래>의 전문입니다.
어릴 때 화살 쏘기 놀이를 하던 기억에서 시가 잉태되었나 봅니다.
화살은 참나무 숲에 그대로 박혀 있고,
노래도 친구 가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내용.
한 때의 꿈과 희망이 세월 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사라진 듯 보여도)
여전히 친구의 따뜻한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