뵌 지 오래 됐습니다.
가내 무탈하시리라 기대하오며
877회 정기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일시 : 2020년 6월 9일(화) 저녁 7시
장소 : 인더가든 커피숍(반월당 화랑골목 053-252-1517)
모쪼록 잘 익은 시 한 편씩 준비해 오셔서
이진흥 교수님과 함께
시의 성찬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홈피에 구경오신 분들께도 문이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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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 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몇 개 따서
너어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을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ㅡ 고두현, 『늦게 온 소포』(민음사, 2017) 중에서
'작은 따옴표' 속의 내용은 고두현 시인 어머니의 손편지로서
택배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