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심보선
들어라
뱃속의 아기에게 시를 읽어주는 어머니여
들어라
죽은 개를 야산에 묻고 묵념을 올리는 아버지여
들어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한 것을 모두 증오했기에
자신까지 혐오하게 된 장자여
들어라 실패한 자여
떠돌 만한 광야가 없어 제자리에서 맴도는
개 같은 인생이여
들어라
늙은 어부여
고래의 내장 속에 어떤 어둠이 있었는지 잘 아는 이여
들어라
거울 앞에서 얼굴의 얼룩을 노려보는 처녀여
언덕에 울려 퍼지는 변성기의 목소리를 사랑했던 이여
들어라
한 개의 뼈만 남은 거대한 무덤이여
그 아래 흐르는 고요한 물줄기여
그 아래 쌓인 수만 개의 뼈여
들어라
세상의 모든 뼈를 이어 붙여도 모자란 키 큰 허공이여
그 위에 부는 세찬 바람이여
그 위에 얹힌 무한의 허공이여
들어라
인적이 드문 밤거리에
쨍그랑 병 하나가 깨지면 순식간에
모든 집의 불빛이 꺼지는 첨단의 도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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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 계신가요?
홈피에 들어오기도 조심스러우시겠지요?
너무 오랜 방황,
시가 구원이 되는 시대는 갔나 봅니다.
바이러스 앞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겁을 먹게 되었으니까요.
세계사는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빨리 가는 세월인데 이제 문화풍속까지 바꿔놓게 되나 봅니다.
마스크를 안 끼면 오히려 허전해질 정도로
우리는 이전의 우리를 잊고 삽니다.
모든 것을 잃었어도,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날들이 계속된다고 해도
시인은 새 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