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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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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만개의 먹물방울로 이루어진 팔월의 검은 구름이 거친 이빨로 고층 아파트를 짓씹어 으깨버릴 것 같앗다
폭우가 사람들을 시멘트 무덤 깊숙이 밀어 넣기 전에 가야산이 여인을 불렀다
얇은 배낭엔 식은 밥으로 만든 자르지 않는 김밥이 두 개 들어 있었고
버스가 가야산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는 산을 집어 삼켰고 여인은 마분지 같이 희고 두꺼운 비에 휩싸여 용탑선원에 다달았다
짙은 빗속에서 누군가 손짓을 했다 짐을 나귀처럼 등과 두 팔에 가득 짊어진 젊은 남자였다 남자의 소리는 시끄러운 빗소리에 삼켜졌지만 가야산은 청배암 같은 줄을 풀어 샛길로 여인을 산 중턱까지 끌어 올렸다
집채만한 큰 바위에 등을 기댄 푸른 천막이 뱀 아가리 같은 동굴을 가로 막고 있었고 굴 속에는 가지런히 깔린 돌들이 잘 생긴 치아처럼 습기에 반들거렸다
생식한다는 젊은 도사는 광목 도포를 갈아입고 온기도 없는 구들 목을 추위에 구부러지는 여인의 몸 위로 둘러 씌웠다
탄트라 밀교처 같은 동굴에는 49개의 촛불이 켜지고 놀란 모기들이 시든 꽃잎처럼 날아올랐다
산 속의 낮은 금시 까물아치고 두꺼운 물안개는 담요처럼 첩첩으로 동굴을 에워 싸서 이내 여인은 돌아갈 길을 잃었다
촛농이 백사처럼 길게 몸을 늘이고...... 젊은 도사는 오랫동안 견고한 수행으로 도달한 유사이탈의 경지를 자랑했지만 아직도 피가 타는지 흘러온 여인의 손을 놓지 못했다
육과 영의 경지에서 그을음 낀 동굴안, 숨소리는 가빠지고 여인은 배낭 속 우산을 죽비처럼 내리쳐 어둠에 절여지는 도사의 신음소리를 잘랐다

다음날, 굴참나무 창창한 잎들 사이로 금빛 아침이 찰랑거렸다 한바탕 꿈을 꾸고 난듯, 어제 그토록 사납게 짓누르던 죽음의 유혹이 젖은 종이장처럼 풀어져 있었고 여인의 고뇌도 평온을 달리고 있었다 해면처럼 부드러운 초록 공기에 여인은 새로운 하늘에 부풀고 어린 해가 모가지를 빼고 동굴 깊숙이 들어와 은회색 습기를 핥고 있었다
곁에는 눈썹이 하얀 사슴이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고 젊은 도사의 혼은 어젯밤 잠시 흐린 道를 찾아 먼 길을 떠나고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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