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세
전건호
금방 들은 것도 오십초면 증발된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왼손이 오른 손을 믿지 못한다
전화를 걸어놓고 상대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일년 전 감추어둔 쌈짓돈을
아직도 찾지 못하는 비상한 은닉술에
동네참새들은 닭대가리라는 둥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는 둥 쪼아댄다
닭이든 까마귀든 허공을 나는 새 아닌가
나를 둘러싼 시공이 가벼워진다
내게 착지했던 생각들 깃털이 돋아났는지
고개 돌리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잘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겁게 짓누르던 잡념이 휘발되는 것
텅 빈 풍선이 되어
미풍에도 풀풀
눈짓만 줘도 포르르
바람만 불어도 기우뚱 한다
기억의 한계가 0을 향해 달릴수록
무념의 경지에 달하는 듯 싶다
붙잡으려 했던 것들은
바람부는 대로 날아간다
0을 향해
초읽기 진행되는 동안
금방 뱉은 말도 잊어버리는
어처구니 구관조가 된다
~~~
전 이제 갓 마흔 되었는데도 잘 잊어 버리는데 오십세가 되면 더 심해진다니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 잘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것이
'무념의 경지에 달하는 듯 싶다'고 하니 위안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