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진항의 일출
돌샘 이재영
동해에서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일출광경을 동경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셔 청명한 일출보기를 더 동경하고 이는 것 같다. 동생내외와 여동생, 우리내외가 승용차를 타고 속초 아야진 항에서 일출이 한 눈에 들어오는 호텔에 하룻밤 투숙했다. 낮에는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의 선녀와 신선이 살았다는 아름답고 유명한 무릉계곡을 오르고 차를 많이 탄 까닭일까 초저녁에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다. 오유 월 긴긴 해라 요즈음은 해가 일찍 뜨지만 아직은 어둡다. 그러나 해 돋는 동쪽 하늘이 새카맣게 어두운 것을 보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다. 오늘은 바다위에 동그랗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모두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놓고 동쪽하늘을 주시한다. 날이 훤하게 새며 하늘이 불그레하더니 점점 주홍빛으로 붉어진다. 그 때다. 어디서 왔을까? 구름 한 덩이 붉어지는 하늘을 점점 가로막는다. 해는 바로 그쪽에서 떠오르는 것 같다. 어쩌면 이미 바다 위에 올라 온듯한데 구름에 가려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바다와 하늘 사이가 불과 한 뼘인데 가려있는 구름이 애물단지다. 오늘도 떠오르는 태양이 바다 위에 수면과 붙어 수직으로 타원형이 되는 일출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바로 그 때다. 하안 구름 한 쪽 끝에 빨간 불덩어리가 담뱃불처럼 붙는다. 동시에 미인의 눈썹을 동그랗게 그리면서 빨간 해가 방실방실 애띤 얼글을 구름 위로 살며시 드러낸다.붉은 해, 고운 모습..... 동해에 미역 감고 금방 나온 듯 해맑은 얼굴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내 마음도 태양과 같이 맑고 환하게 열리며 온 바다가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갈매기 떼도 높이 날아올라 붉은 하늘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면서 이 광경을 만 끽 한다. 잡은 고기 가득 싣고 돌아오는 배 위에도 희망으로 출렁인다. 청산도 훨훨 깃을 치며 초목도 춤을 춘다.
해수면과 하늘이 맞닿은 일출은 아니지만 오히려 구름 사이로 수줍어수줍어 고개를 내미는 듯 살며시 나오는 태양은 신부처럼 더 아름답다. 바다도 하늘도 구름에 비친 서광(曙光)을 받아 더 붉고 더 곱다. 빛의 방향이 변함에 따라 오색찬란한 황금물결이 파도친다.
우리는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이 찬란한 광경을 앉아서 맞기엔 너무도 황홀하여 밖으로 나가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 위를 걷는다. 푸른 물결이 바로 앞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사그라진다. 내 마음 속에 쌓인 세속의 번뇌와 찌든 먼지도 저렇게 사라지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순간만은 내 마음의 때들이 다 부셔져 씻어진 듯 無念無想(무념무상) 빈 마음 상쾌하다. 나의 가까운 핏줄들만 이렇게 아름답고 상쾌한 아침에 걷는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이 때는 사람도 식물도 날짐승도 길 동물도 모두 하나같이 희망으로 가득하다. 어디서 왔을까 다람쥐 한 쌍이 큰 바위에 동그마니 올라 태양을 향해 직입하여 문안인사 올린다. 삼라만상이 하나 되어 희망으로 가득 차 평화롭다. 나의 꿈도 이 순간에 영그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순간이 오래도록 머물러있으면 좋으련만 아름다운 모든 것은 곧 사라진다는 것이 한없이 안타깝다. 이대로 영원토록 향유하고 싶건만 오늘의 이 장관도 우리의 기쁨도 곧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도 애석하다. 해가 점점 높이 오를수록 장엄한 광경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잠시 황홀한 꿈을 꾼 것 같이 서운하다. 그러나 오늘의 이 광경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꿈으로 내 가슴에 남아 찬란하게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