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텃밭
돌샘 이재영
나의 집 앞에는 대공원이 있다. 내가 처음 이 산을 오를 때는 공원 부근에 아파트도 없었고 산에 올라오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과 저녁 무렵 진도견을 데리고 산을 매일 한 바퀴 돌았다. 그 것으로 심신의 건강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산에 공지가 많아 너도나도 나무가 없는 곳에 땅을 파서 밭을 만들었다. 대부분 조그마한 채전이나 많은 사람은 이삼백 평이다. 감자, 고구마, 체소를 심어서 팔기도 했다. 그래서 뒷북을 치는 나도 뒤늦게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20여 평 밭을 만들었다.
거기에 고추, 파, 부추, 열무, 배추, 상추, 우엉, 호박 심어 밥상이 항상 푸짐하게 자급자족했다. 특히 어린 열무와 배추는 큰 그릇에 담고 보리, 쌀, 상반지기 밥 놓고 고추장 된장 놓은 후 참기름 둘러 비벼 놓으면 언제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 뚝딱 비운다.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산에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공원이 대공원으로 지정된 후 운동시설과, 의자와, 정자를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체 농사를 못 짓도록 단속했다.
텃밭을 잃고 나니, 생활에 즐거움을 잃고 밥맛이 없었다. 그때 나의 집 바로 앞에 난을 키우던 사람이 그 집을 헐고 풀밭으로 버려져 있었다. 누가 샘물이 있는 요지에 밭을 100여 평 일구어 채소를 가꾸기에 나도 내 집 바로 앞에 여러 이웃들과 함께 10여 평 밭을 만들었다. 집사람은 오염 된 땅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그러나 밭에 열무, 배추, 상추, 부추, 우엉을 심고 둘레엔 말뚝을 박고 줄을 맨 후 양대 심어 벋어나는 줄기를 올렸다. 가물 때는 물을 주니 잘 자랐다. 밭은 작아도 산에 있을 때 보다 수확양이 많다. 집사람은 거기 체소는 안 먹겠다고 반대하더니 나보다 더 열심히 잘 가꾸었다.
옛 선비들도 채전을 가꾸었다 하더니 나의 텃밭은 생활에 즐거움을 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는 시유지라 이삼 년 후 주차장을 만들었다. 그 후부터 내 텃밭은 영영 없어졌다. 세월 흘러 정년퇴직을 하고 허리디스크와 무릎 관절염으로 건강을 잃고 짚 앞 공원 산행마저 끊었다. 내가 평생 범어동을 떠나지 못한 것도 대공원 산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에 오르지 못하니 낙이 없었다. 건강이 회복된 상태는 아니지만 지팡이를 두 개나 짚고 다니면서 채전 터를 물색하려고 눈독을 드리고 다녔다. 이젠 원채 단속이 심해 공원 안에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한 군데 두어 평 빈터를 발견했다.
바로 산 밑에 있는 공공건물 담장 밖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관리인들이 다 베어낸 너 다섯 평 공지가 있었다. 돌무덤과 바위라 아무도 땅이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여기는 사람통행도 드물고 관여할 사람도 없는 곳이다. 여기를 쫏아 텃밭을 만들 결심을 굳혔다. 뾰족한 외발 쇠스랑을 사가지고 가서 마대를 펴놓고 앉아 바위를 쫓기 시작했다. 이외로 바위는 푸석한 돌로 잘 갈라졌으나 석벽은 찍은 흉터만 남길 뿐 손바닥만 물어뜯었다. 바위가 부서진 돌은 언덕 끝에 놓고 쌓아올려 둑을 만드니 밭이 넓어졌다. 하루를 하고나니 손에 물집이 생기고 쓰렸다. 손은 만신창이로 얼룩졌다.
그러나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만한 고통쯤은 각오했기 때문에 참았다. 일주일을 하고나니 장갑을 꼈는데도 온 손바닥이 터지고 물집으로 말이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텃밭 하나가 완성되었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 하다가, 땅은 거짓말 하지 않는 다는 선인들의 진리를 굳게 믿고, 땀방울로 이루어 낸 결과라 보람 더욱 컸다. 일체유심조(一切 唯心造)라 하더니,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으로 실천했다. 궁하면 통하고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진리의 말씀도 내리를 치며 와 닫는다.
이튼 날부터 많은 잔돌을 며칠 골라냈다. 그래도 밭은 여전히 돌이다. 골을 깊게 파고 산에 낙엽 썩은 것을 끌어다 넣고 묻었다. 몇 차래 이렇게 했으나 부식이 완전히 되지 않고 감음 탓인가 지렁이가 생기지 않는다. 지렁이가 생겨야 땅이 좋아진다. 이것이 썩은 듯하여 복합비료와 요소를 뿌리고 열무, 배추, 상추, 부추, 우엉, 양대, 고추, 들깨를 심었다. 그러나 가음으로 씨앗 값만 낭비했다. 가을에 비가 와서 열무와 배추를 심어 한 두 차래 잘 먹었지만 첫해는 노력의 대가를 얻지 못했다.
금년에는 초봄에 봄비가 자주 와서 열무와 상추는 두어 차래 잘 먹었다. 늦봄부터 한참 가물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데도 옆에 조그마한 인공샘이 있어 물을 퍼서 주었더니 보드라운 열무와 배추는 값이 금값일 때 잘 먹었다. 이런 채소가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한여름 나물이 없을 때는 양댓잎, 우엉잎, 뜰깻잎과 고추가 이삼일 도리로 나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양댓잎과 우엉잎은 각각 특유한 맛으로 상추와 배추쌈과는 색다른 맛이 일품이다. 땅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몸소 체험한다. 땅은 노력한 만큼 대가(代價)를 반드시 준다는 선인들의 진리를 가슴깊이 새기기도 한다. 나는 아파트생활이 싫다. 전원주택에서 여러 종 과일나무 심고 채전에서 마음을 가꾸면서 살리라.
*마파람(麻風):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음식을 빨리 먹는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