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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명 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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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별명 돌샘

이재영

나는 퇴직까지 거의 여학교에 근무했지만 닉네임이 없다. 한창 꿈 많고 변덕스러운 중고등학교 소녀와 처녀들 속에서 별명하나 받지 못했으니, 내 생활이 얼마나 단조롭고 삭막했던가? 그때는 내가 너무도 고지식하고, 단순하여 특징도 없는 무미건조한 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부끄럽고 낭만도 없음에 깊이 반성했다.
친구와 친척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끝에 이름을 썼는데도, 답장은 하나같이 닉네임으로 보내왔다. 나는 서실에 수년 간 다니고 있다. 화가나, 서예가, 문인들은 이름이나 별명보다 호를 즐겨 쓴다. 그것이 멋스럽고 아름다운 것처럼, e-메일에는 닉네임이 어울리는 것 같다. 연하에게 메일을 보낼 때 본명을 꼬박꼬박 쓴다는 것이, 멋쩍고 쑥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세상사에 눈치가 없고 둔하여 지나놓고 깨닫고 뒷북을 두드렸다. 그래서 늦었지만 내 스스로나마 닉네임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멋스럽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별명이 무엇일까 하고 오래 번민했다.
내 스스로 지을 바엔 나의 내면을 다스릴 수 있는 별명을 짓기로 했다. 마음은 양심 외에는 아무도 감시하고 경계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편하고 유익한 쪽으로 항상 흐른다. 그러므로 때로는 온갖 사악한 마음으로 가득 차 내 자신도 깜짝 놀란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소유하고 싶고, 재물을 보면 탐이 나고, 귀한 물건을 보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가지고 싶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응당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건만 때로는 가슴이 쓰리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의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는 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너무도 부끄러운 일과, 무법, 비도덕적인 세상이 될 것 같아 치가 떨리고 무섭다.
양심이 있기는 하지만 양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시로 일어나는 사리사욕과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바르게 잡아줄 절대자를 닉네임으로 지어 가슴속에 박아두고 싶다. 요사스러운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즉시 눌러 싹부터 잘라 줄 마음속의 절대자를 하고 생각한 것이 바로 ‘돌샘’ 이다.
수많은 대상 중에 나의 별명을 돌샘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산행을 좋아하는 나는 산행할 때마다 심산유곡 청정한 바위틈에서 퐁퐁 솟아 넘치는 돌샘을 자주 본다. 물은 맑아 언제나 새롭고, 군자의 마음처럼 거울 속을 보는 듯 투명하여 내 마음을 늘 정화시킨다, 목이 탈 때는 생명수요,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사로잡힐 때는, 속세의 번뇌가 일시에 그 물에 녹아버린다.
내겐 돌샘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10여 년 전 설악산 등반 때, 오색에서 출발하여 대청봉을 거쳐 험준한 바위 길을 통과하여 봉정암에 이르렀을 때다. 불볕이 찌는 듯한 8월 중순 오후 2시경, 갖고 간 물도 바닥이 나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기 직전 목이 바싹바싹 탔다. 그때 봉정암 입구 깊숙한 바위틈 돌샘에서 퐁퐁 솟는 맑은 물이 철철 흘러넘쳤다.
입구에 들어서자 냉풍을 토한다. 하얀 종굴박표주박 10여개가 샘가에 가지런히 놓여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돌샘에서 넘치는 물 한 쪽박을 퍼서 단숨에 들이켰다. 오장 육부가 쩡쩡 어는 듯 서늘해지더니, 가물거리던 호롱불에 기름을 넣은 듯 생명의 불꽃이 힘차게 타올랐다. 그 샘물은 생명수요, 구도자였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 이 샘물처럼 목마른 자에겐 목을 축여주고, 욕심에 싸여 번거로울 때는 마음을 정화시켜주며, 생명과 희망을 주는 돌샘, 그 때부터 이 돌샘으로 살고자 결심을 다졌다. 이것이 나의 별명을 돌샘으로 확정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그 후부터 나의 메일 마지막엔 이름대신 돌샘이라 적었다. 이것이 역시 멋있고 격에도 맞아 내 마음이 흡족했다. 어느 날 지기지우(知己之友)로부터 매일이 왔다. 날짜 옆에는 돌샘 가에 핀 “돌란” 이란 별명을 적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일까? 그분도 늘 이름을 쓰더니 처음으로 별명을 썼다. 어지간히 고민하고 지은 별명 같다. 그분의 돌란의 뜻도 나의 마음과 같으리라.
깨끗한 물이 아니면 죽는 다는 돌란, 이런 돌란이 돌샘 가에 피었으니, 더 깨끗하고 향기 그윽한 이상적인 돌샘이 되리라 결심을 굳힌다. 7년 대한에 단비를 만난 듯 생기가 일고, 용기가 불끈 솟는다. 이젠 나만의 돌샘이 아니요 만인의 돌샘으로 생명선이요, 안식처로 거듭나리라. 남명선생은 나쁜 소리를 들으면 귀를 씻어서 검어지려는 마음을 씻었다 한다. 나는 돌샘을 생각하며 네 마음속에 일어나는 티끌을 씻어 봉정암 맑은 돌샘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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