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그렇게 희미하게 앞머리를 보이던 때 , 한달 전부터 할일을 적으며 바쁜걸음으로 준비하던 설날, 활짝 핀 모습을 들어내고 서서히 뒷모습으로 사라져 갑니다
저희 시집은 원래 7남매 였는데 둘째 시숙님 먼저 가시고 6남매가 있습니다
그믐날 하루를 통째로 바쳐 꼬박 마련한 설음식과 제수음식으로 차례를 올리고 지난해 좀 모자랐던 점 조상님께 절을 올리며 풀어 놓았습니다 저녁에는 장인 장모안계신 묵은 사위내외들과 아들 딸, 큰집의 햇사위내외들과 아들 딸,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한집안 그득 했었습니다 서로 서로 아래쪽에서 윗쪽을 찾아 새배드린다고 한참동안 엉켰드랬습니다 떡국을 끓이려고 머리수를 헤아려 보니 26명이었습니다
새배돈을 받아쥐고 즐거워 하는 조무래기들과 모처럼 만난 시누이와 시누남편들의 농담섞인 새해인사 사이로 시어머니를 대신하는 처남댁들의 백년 손님 맞이 예절까지 곁들여 따뜻하고 시끄러운 한 때였습니다
교자상 3개로 상을 차리니 한 음식을 6접시씩 담아 내야 상을 맞춰 낼 수가 있었습니다 질펀한 음식 , 딸거락 거리는 숟가락 소리와 사선으로 줄을치는 여러겹의 이야기 소리에
언제 한그릇 을 먹은지도 모를 일 이었습니다
저녁후에는 과일과 단술 집에서 만든 강정 유과 모듬시리라고하는 떡을 먹으며 초등학생들은 끼리 영어 이야기 중국에서 공부하는 세째시누이 아들은 졸업후의 취직걱정 큰집 외아들의 늦어지는 결혼아야기
서울의 대기업에 취직이 된 둘째시누이 큰딸의 혹독한 신입사원 연수이야기 ,이야기는 숲을 이루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갈길이 순탄치못한 내일의 귀경때문인지 마음이 급한 사람부터 알록달록한 핑계를 하나씩 집어던지고 하나 둘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이제 설날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버리고 다시 그리움 길게 늘어 뜨린 채 홀로남는 간이역 ,우리들 세대가 남습니다
모두 설 쉬시느라 분주하셨지요 몸살이나 안 나셨는지요 멀리있는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면 우리는 또 기다림으로 물들어가는 쓸쓸한 간이역으로 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