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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19 07:47

어머니의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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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섣달 그믐날 밤이면 댓돌위에 나무로 된 사과 궤짝을 가로로 세우고 그 안에 촛불을 밤새 밝혀 두셨다. 어머니께 여쭤 본 일은 없지만 내 짐작으론 어두운 기운은 물리치고 밝고 환하게 새해를 맞으시려는 뜻이었던것 같다.

어머니는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밤은 잠을 자지 않으리라 결심을 해 보지만 그것은 어린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눈을 까뒤집으며 안간힘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거울을 보면 눈썹이 하얘져 있었다. 걱정이 되어서 울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눈썹이 세었으니 시집을 갈 수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 그 말씀에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시집 못갈까봐 걱정이 된것이 아니라 하얀 눈썹으로 평생 살아 갈 일이 걱정 되었던 것이다.
조금후 할머니는 너 처럼 그믐날 잠을 자 버려 눈썹 센 남자 아이와 결혼하면 된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밀가루를 물에 개서 자는 우리의 눈썹에 바르고 그것이 말라 눈썹이 센것처럼 보이게 해서 재미삼아 우리들을 놀렸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설날은 한달전 부터 시작 되었다.
찹쌀 고두밥 쪄서 말려서(자리에 펴서 말릴때 밥알이 낱낱이 떨어져야지 두 개씩 세 개씩 밥 알이 붙으면 안 되었으므로 자주 들여다 보고 들어 붙은 밥 알을 하나하나 떼내 주어야 했다.) 달군 모래 위에서 일궈서 강정꺼리 만들고 강정에 들어 갈 땅콩 볶아 껍질 까 놓고 참깨 들깨 씻어 일어 볶아 놓고, 손님 오시면 덮을 이불호청 벼개호청 빨아 풀하고 다듬질해서 꿰매놓고

기왓장 곱게 빻아 짚 수세미 묻혀서 놋그릇 놋제기 윤이 나게 닦아 놓고 많은 양의 가래떡 빼다 썰어놓고(나 어릴때 가래떡은 썰어주는 기계가 없어 방앗간에서 빼 온 떡을 곧게 펴서 적당히 굳힌 다음 모두 집에서 썰어야 했는데 떡이 너무 굳어도 덜 굳어도 썰기가 힘들어 알맞게 굳었을때 모두 썰어야 했으므로 떡 써는 일은 미뤄 둘수도 없었다.) 마른 고추 김 올려 웃기로 쓸 실고추 썰고 감주 수정과 만들고 그믐날이 오면 제수 음식 만들고...

가정부 아이가 하나 있긴 했지만 엄마는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우리들에게 그런 장난을 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오늘은 하늘 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특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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