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눈이 나ㅡㄹ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걸 찾으세요"
그는 말없이 나만 쳐다봤다 바빠서
다시 일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그가
한참을 더듬거리더니 제가 진ㅇㅇ 입니다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기억이 꼬물거리며 실지렁이처럼 기어나왔다
희끗한 중년이 된 그는 늙고 초조했다
아!아!아! 친구의 첫사랑!
20대ㅡ 우리는 함께 어울려 낚시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했다
친구는 폐병쟁이였다
숨을 쉴 때마다 폐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얼굴은 달기처럼 아름다웠고 입술은 터질듯 붉었다
그래샴의 법칙처럼
가슴 속에 검은 잎으로 자라는 5%의 슬픔을 감지 하면서도
둘이는 사랑에 미쳤다
변두리 골목 안
소문은 삽시간 부모들 귀를 쑤셔됐다
남자 집 부모는 눈이 뒤집혔다
한 골목에서 형님아우하면서 한솥밥 먹던 사이가
원수처럼 욕과 집안 싸움으로 번졌다
급기야 남자 집은 서울로 이사 가버렸다
그래도 둘이는 만났다
돌아서고 또 만나고 울며 뿌리치고 또 만났다
폐보다 심장이 먼저 녹아 내릴듯이 사랑했다
서로를 묶을 한 올의 실도 가지지 못한채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렸다
언젠가 부터 친구는 서울에 가지 않았다
아스파라가스처럼 잎맥만 남은 한 쪽 폐에 독한 술을 부었다
어두컴컴한 골방에 음지식물 같은 그녀의 한숨만 무성했다
얼굴에 수 만의 강을 달아내리며 친구가 입을 열었다
"만났는데......양복과 와이셔츠와 반지와 시계가 달라졌더라 "
절벽 앞에 서 버린 그녀는 밤새도록 그의 가슴에 손톱으로
붉은 핏길을 팠단다
그리고 허깨비처럼 날아와서 마저 남은 폐마져
지워버리고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고 ......
세월은 지우개처럼 모든 것을 지워간다
몸과 마음은 허공에 서 있었지만 어느새 겉상처가 아물 무렵
그녀는 건장한 남자와 결혼에 성공해서
휘파람 소리나는 폐를 가지고도 아들 딸 놓고 살다가
쉰도 훌쩍 넘은 이태 전에 죽었다
남자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불과 사흘 전에 들었단다
그래서 내 직장 위치도 정확히 모르면서 무조건 나를 찾아 왔단다
죽기전에 한 번은 만났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 .... 며 .
그는 가슴 깊이 여태껏 품고 있던
물방울을 탁자 위에 내려 놓는다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친구라도 만나서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어쩜 안 만나고 떠났는게 좋았을지도 모르잖아요"
나의 독소 섞인 말에, 그는
그래도 그건 아니야 죽기전에 꼭 한번은 만났어야 했는데...
구겨진 어깨를 웅크리고 돌아선다
그가 가고 난 뒤,
탁자 밑 흥건히 젖은 하이펫 바닥이 혼자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