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신춘문예 당선작 > 정겨운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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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02 12:52

2008년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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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 파문

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파문 이장근


[당선소감]
어쩔 수 없는 유혹
시가 떠오르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시는 나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게 한다. 아니면 2% 부족한 나였기 때문에 시를 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완벽한 것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2%의 여백, 살랑살랑 여운을 남기며 가는 꼬리를 따라다녔다. 하늘도 어둠의 2%를 열어놓기 위하여 별을 띄웠으리라.
별이 빛나는 한, 지상에는 2%의 갈증을 느끼는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리라. 부족하지만 나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당선통보를 받았다. 전화기를 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눈빛도 요란하게 떨렸다. 한나절이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아들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시의 스승인 아모르파티님들과 어젯밤에 쓴 시를 오늘 아침에 들어주었던 제자들을 위해 붉은 마음을 펴서 장미꽃 한 송이를 접는 중이다.




파문

이장근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시조 / 눈 속의 새

황성곤



1
광년을 달려와 빛이 된 투명한 새
망막에 앉은 기억, 때 늦은 아픈 고백
이른 봄
번갯불 튄 그대 스르르 한 점 불이었던

2
빅뱅의 환상이거나 눈부신 기록이었을
이별 뒤 하얀 여백 지울 수 없는 허공 같아
가락지
흰 원을 걸어 필생의 울음 가둔 걸까

3
수축하는 잔등, 달이 팽창하는 저 언덕
환각처럼 눈 속의 새 쪼그려 앉아있는데
우수수
눈망울 털어내면 겨울 그 후, 빈 고요








눈 속의 새 황성곤


[당선소감]
살아있음이 희망이다
햇살이 따뜻한 창가
화분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유심히 본다.
뿌리를 드러낸 동백 같기도 하고 철쭉 같기도 한, 나무이고자 하는 그의 집중은 모든 내 상상의 말들을 수렴해간다.
무엇을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음으로, 그가 나무 안에서 꽃 한 송이 들어올린다. 발밑이 아득하고 흔적 없는 곳에서 바람이 인다.
아직 여물지 못한 내 언어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나는 왜 너보다 앞선 나였을까?
경계를 허물지 못한 나무 앞에서 아프다.
꽃과 짐승과 사람들이 또한 아프다. 선홍빛 언어를 열고 나오면 자음과 모음을 버린 신의 음성을 곧 만나리라. 하여 저 완성된 언어의 세계에 한없는 경배를 올린다.
내 비록 어긋난 문법으로 세상이 낯설지만, 친구여 누이여 이웃이여 사랑의 한 몸으로 항상 충만하고 행복하시길. 오직 살아있음이 희망이고 기쁨이며 한편의 詩인 것을….
끝없는 어원의 탐색을 새롭게 인도해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당선의 영광을 양보해주신 분들에게 죄송함과 더불어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보답으로 미숙한 언어를 갈고 닦아 세상의 맑음을 비쳐 보이겠습니다.
끝으로 평소 지도해주시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양점숙 시인님과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문우 여러분에게 고마움 전하며 당선의 영예와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눈 속의 새

황성곤


[심사평]
최종까지 거론된 이들은 황성곤, 유현주, 박해성, 박선미, 최재남, 박미자 등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황성곤의 ‘눈 속의 새’는 특이한 시적 언술 방식을 보인다. 그가 함께 보낸 다른 세 편들도 그런 점에서 이채롭다. 범상치 않은 언어 운용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력에서 기인된 바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와 세계와 자아의 교호 속에 어떻게 언어가 제대로 된 개성적인 이미지를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공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기량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심미적 재현을 성취하고 삶의 원리를 비밀스럽게 드러내는 이러한 형상 능력은 다른 많은 응모작들의 가장 앞자리에 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엄정한 정형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으면서 시상을 자유자재로 전개하는 활달한 수사법이 담긴 내용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신뢰를 더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웬만큼 갖추고 있으나, 그리 놀랍지 않은 일상사를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 점은 적잖은 응모자들에게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또한 상당한 수련의 흔적이 엿보임에도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끌고 가지 못하거나, 참신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띈다. 표피적 묘사를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적인 국면을 관통하려는 상상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 힘을 기울일 때 고유의 형식과 결합하여 보다 밀도 높은 언어 예술적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이 점은 당선자나 모든 응모자들이 함께 되새길 일이다.

이정환(시조시인)



소설 /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

이홍사



유독, 나만 그렇게 부른다.
그를 두고 탑리시인이라고,
탑리시인! 촌티를 벗지 못했다거나 시골의 순박함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은 호칭이다. 가끔은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호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 좋게,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강한 부정의 표현이 없음은 긍정을 뜻하는 게 아니던가. 탑리시인! 그렇잖소? 직설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솔직히 그 호칭은 그와 나 사이에 격의가 없음을 은근히 상징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탑리시인은 약사다. 의성군 금성면, 그러니까, 탑리 장터 오층석탑 부근에서 약국을 하고 있다.
달리 호명하면 K약사, 혹은 K시인이 되는 탑리시인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곳은 D병원 영안실이었다. P시인의 부친상 자리였다. P의 부친상이라 그와의 친분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문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처음 안 사실이지만 P의 아버지는 공군 소장 출신이라 했다. 장군 출신답게 훤칠한 얼굴의 영정 사진이 접견실에서 먹고 마시고 있는 문상객들을 열병하는 군사들을 감시하는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빈소 제단에 올라앉은 망자의 특권일 터이지만 눈길만은 지휘관의 그것이었다. 특실이라고 만들어 놓은 영안실 구조에 문제가 있다. 특실이라 아주 특별한 구조였다.
빈소와 접견실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야 상주와 문상객이 분리되어 울어야할 사람은 신나게 울고, 웃으며 마실 사람은 마음 놓고 슬프게 웃어가며 마실 수가 있는 법이거늘, 살아있는 사람의 그런 편의에 안배 없이 면적 활용에만 혈안이 된 장사치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였다. 분리된 칸막이가 있긴 한데 워낙 형식적이어서 안팎으로 시선이 내통하는 구조였다. 부의금을 냈으면 빨리 마시고 후딱 가라고 특별히 만들어놓은 특실처럼 여겨졌다. 보병 병장 출신인 나는 내내 그 영정의 눈길에 신경이 쓰여 젓가락질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때 옆에 앉은 탑리시인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홍두! 지난번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홀로 사는 아버지에게 비아그라 선물하고 여자를 붙여주는 소설 있지, 그 소설 내 메일로 좀 보내.
-들어보니 다분히 명령조인데 이게 원고 청탁하는 겁니까? 귀하의 옥고를 부탁합니다. 뭐 이런 원고청탁서를 보내야 되는 게 아닙니까?
-홍두 선생! 우리 사이에 그런 격식이 꼭 필요하냐? 이미 발표한 중고품 재활용 좀 하자는데 되게 말이 많은데……. 급한데 그냥 보내주면 안 되나?
-저는 원고료 안 주는 잡지에 글 안 싣습니다.
딱 한마디로 거절을 했지만 그게 거절이 아님을 K시인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말고……. 무명작가의 익명성을 밝혀주겠다는데. 허, 거참
그렇게 과장되게 딴청을 부리며 나오면 안 되지, 그러면 내가 매달려야하는 볼썽사나운 꼴이 생기는 법이지. 탑리시인은 전략을 바꾸어야 내가 매달린다는 사실마저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 실을 겁니까?
단박에 한풀 꺾인 나는 가까스로 체면을 수습하며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탑리시인은 설명했다. 의료계통의 건강 잡지인데 [초두루미] 라고, 약사, 의사들로 구성된 시인과 수필가들이 만드는 문예지인데 그 잡지의 주간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잡지라고 하자 그는 주머니의 수첩을 뒤져 명함을 꺼냈다. 건강 문예지 [초두루미]의 편집주간으로 박힌 명함이었다. 창간호를 내고 계간지로 이번에 가을호를 내야하는데 원고가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창간호를 발간하고 보니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책이 너무 얇아 소설이 한 편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초두루미라고?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초두루미가 무슨 뜻인교?
탑리시인은 다시 간략하게 덧붙였다. 두루미가 항아리란 옛말이다. 목이 좁고 아가리가 긴 호리병 같은 것을 칭하는 말인데 식초를 담는 항아리를 초두루미라고 했고 또 우리 조상들이 식초를 마시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불로장수의 상징인 학, 즉 두루미의 이름을 겹쳐서 초두루미라고 명명한 것인데 건강문예지라 아주 장수하라고 그 이름을 인용했다고 했다. 나는 쥐고 있던 명함에 박인 이메일주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보내면 됩니까? 근데 원고료는 책임지고 챙겨주어야 합니다.
-아니, 바쁘니까, 출판사로 바로 보내주는 게 좋겠네. 내가 편집장에게 얘기해서 내일 홍두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스팸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섹스스토리, 컥! 숨 막히는 S 라인. 연결하시겠습니까?]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두 통은 넘게 날아드는 스팸이었다. 이동통신에 차단 프로그램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젠장,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보화시대구먼, 중얼거리며 삭제버튼을 누르고 옆에 앉은 K시인의 귀를 당겨 손으로 가리고 은밀하게 말했다.
-섹스스토리 연결하라는군요. 이걸 받아 적죠.
-농담 말구…….
-원고료로 돈보다 아스피린 몇 알로 결정합시다. 근데 내일 열 시 이후에 연락이 오면 사흘 후로 밀립니다. 사흘간 저 잠수합니다. 탑리시인께서 알아서 하시라구! K시인은 그 말에 손바닥을 쳐들었다. 나는 그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원고 청탁과 원고료 합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아스피린이라고 말을 하면 탑리시인은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약이라는 걸 알고 있다.
상위에 올라온 돼지고기가 유독 맛있어 벌써 두 접시를 비운 후였다.
-돼지고기가 맛있으면 망자가 극락왕생한다지?
우리가 초두루미에 관한 얘기로 친한 척 격의 없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우리의 맞장구에 소외된 마주앉은 어느 시인이 나무젓가락으로 갓 삶아온 고기에 된장을 바르며 그렇게 말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할 말이 궁하지만 시인이 하는 말치고는 진부하게 들렸다. K시인이 부탁한 그 소설은 원고지 이백 매가 넘는 소설인데 아무래도 분량이 많다고 여기며 칠팔십 매짜리 신작 중에서 어느 것을 보낼까 속으로 노트북에 든 파일을 뒤적였다.
그날 영안실에서 K시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P의 아니, P부친의 부음을 접하고 곧 바로 달려간 것이다. 문상을 그 다음날로 미룰 수 없었다. 다음날은 누구에게 밝힐 수도 없는 은밀한 약속이 있었다. 혼자서 간단하게 문상만 하고 급하게 돌아오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틀 후에 발인이라 그날 문상을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왜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원망할 문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체 없이 병원을 향했다. 영안실에서 아는 작자가 아무도 없으면 좀 서먹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나의 우려는 지나친 기우였다.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 있어서 돌아가면서 악수를 하고 어느 자리에 끼일까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였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앉을 자리를 둘러보자 손을 번쩍 들고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한 사람이 K시인이었다. 나는 탑리시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상주인 P는 우리가 앉은 쪽을 힐끔거렸지만 우리 쪽으로 올 짬이 없어 보였다. 저녁시간에 맞추어 하나 둘 나타나는 문상객을 맞느라 어지간히 바쁘다. 문상객은 거의가 작가들이다. 다음날 저녁에 손님이 더 많을 걸로 예상되지만 그날 온 문상객들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삼베 완장을 찬 삼형제의 상주 중에서 막내인 P의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그날은 그랬다. P는 시집을 두 권 상재한 시인이며 국영기업체의 홍보담당을 맡고 있는 과장이었다. 해서 그의 손님들은 출판기획사 사장들과 직원, 사진작가, 화가, 문인들, 문인들 중에서도 시인들이 대다수였다. 나머지 낯모르는 사람들은 모양새로 미루어 P의 친척들인 모양이었다.
-오늘 다 와 버리고 내일 저녁에는 누가 오려고 이래요?
옆에 앉은 탑리시인에게 슬며시 물었다. 알고 보니 다음날 저녁에 그 지역 시인협회의 정기총회가 있고 또 같은 시간대에 어느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행사가 있어 시인들이 그날 몰린 것이었다. 접견실에 삼삼오오 앉아 잔을 채워주며 담소를 나누는 시인들은 두 부류로 분류된다. 내가 아는 시인과, 이름은 들은 바가 있지만 내가 모르는 작가로. 실패한 시인인 나는 시인을 그렇게밖에 분류할 수가 없다. 나도 한때 시를 쓴다고 껍죽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탑리시인 말마따나 대가리가 나빠서, 시상의 포착과 시어의 함축성, 예리한 관찰력 부족으로 시인의 방석을 슬그머니 밀어버리고 산문을 긁적이고 있다.
K시인이 권하는 소주를 사양하고 사이다를 소주잔에 마셨다. 차를 가져간 탓이었다. 탑리시인과 그곳에서 조우할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차를 가져가지 않고 느긋하게 한잔 했을 것인데 못내 안타까웠다. 영안실 호수를 찾으며 안내판에 P의 이름과 함께 장지가 국립묘지라고 적힌 걸 보았다. 망자가 무슨 연유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지 K시인에게 물었지만 그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마주앉아 있던 출판사를 경영하는 누군가가 일러주었다. 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분이며 장군 출신들은 모두가 요청만 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고, 그 외의 사항들은 술판을 벌이고 있는 문인들도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나는 탑리시인에게 몇 번 아스피린을 부탁했었다. 사실 전화로 부탁할 적에야 아스피린이지 약 봉투에 담겨 택배로 오는 것을 보면 비아그라였다. 아스피린은 탑리시인과 나만이 통하는 은어였다. 나는 그 약이 필요했다. 국내 주가가 바닥을 칠 때 하고 있는 건설업에 위기의식을 느껴 몽고로 옮겨 앉은 동창이 하는 사업에 조금 투자를 했다. 해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 몽고에 나간다. 그 아스피린은 내가 쓰는 물건이 아니라 그곳에서 한국식당을 하는 사장의 부탁을 받고 사다주는 물건이다. 탑리시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탑리시인에게 아스피린을 부탁하면 시인은 말한다.
-또 내 이름으로 발기불능 처방전을 끊으라는 말이가? 야! 옆집 내과 김 원장이 나를 두고 성기능 장애 삼 급이란다.
-그럼,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부탁을 하는 나는 지지 않고 대꾸하곤 한다. 그 정도는 부탁할 만한 사이다. 약 대금은 온라인으로 보내준다. 단 한 번도 공짜로 약을 받아본 적은 없다. 다만 택배비를 물더라도 다른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는 것보다 싸다는 이점이 있고 정품이라는 신뢰가 지배적이다. 몽고에서 나에게 비아그라를 부탁하는 그 식당사장도 중국산이 아니라 정품이라는 신뢰성 때문에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탑리시인의 연고는 탑리가 아니다. 약국을 개업하기 전에 자전거로 전국여행을 하다가 탑리가 아니, 탑리의 오층석탑이 그의 자전거 바퀴를 세워서 눌러 앉히는 바람에 마지못해 주저앉아 약국을 열고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일테면, 그가 탑에 의해 유배된 것이다. 그 유배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시골 면소재지에서 약국을 한 이십 년 넘게 하면 그 지방의 유지가 되는 모양이다. 어쩌다 내가 그 약국에 들러보면 전교생이 사십 명 안팎인 탑리중학의 재단이사장이 앉아 있을 때도 있고 그 지역 면장이나 군의원이라는 작자와 노닥거릴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끼일 자리가 아님을 직감하고 박카스나 비타500을 한 병 얻어 마시고 인사만 하고 돌아오곤 했다.
어쨌거나 문상 갔다가 원고청탁을 받기는 처음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건강잡지의 편집장이라는 작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열 시 안에 끝나지 않으면 사흘 후로 밀린다고 했더니 일찌감치 전화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불러주는 이메일 주소에 첨부파일로 소설 한 편을 보냈다. 탑리시인이 고집했던 비아그라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화자인 전업 작가, 기이한 생활을 하며 떠돌던 시인이 먹고살 길이 없어 일용인부로 채용되어 바다로 막노동을 하러 떠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시대 문학의 현주소를 짚어주는 신작이었다. 소설을 보내고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다시 편집장의 전화를 받고 스냅사진과 약력을 날려주었다. 그 일은 한 시간 안에 끝이 났다. 단편이지만 구상부터 퇴고까지 두어 달 걸려 집필한 작품이 단 한 시간 만에 날아갔다. 그것도 알아주는 문학지가 아니다. 실어도 그만, 안 실어도 그만인 건강 잡지에 헐값에 던져버린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편집장이라는 작자에게 책이 나오면 꼭 한 권 보내 달라며 오프라인 주소까지 넣어주었다. 신작을 날린 입맛이 씁쓸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에 미련을 두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날로 잡힌 은밀한 여행을 위해 배낭을 꾸려야했다.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할 수 없지. 뭐, 탑리시인의 부탁인데.

*
원고를 보내고 세 시간쯤 후, 나는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대마도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기차를 타고 부산역까지 내려가서 천천히 걸어서 여객선 터미널까지 간 것이다. 걸어서 채 이십 분이 걸리지 않았고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현관 앞 재떨이 옆에 담배를 물고 서서, 걸어서 들어오거나 택시에서 내릴 빨간오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자 잔잔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세 시에 출발하는 배니까 그 시간쯤은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약속은 벌써 한 달 전에 하고 꼼꼼히 준비한 여행이다. 소설사냥을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부산에서 시와 수필을 쓰는 빨간오리와 함께 떠나기로 된 여행이다. 빨간오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온라인상으로 알게 된 인물이다. 어느 포털사이트의 문학 카페에서 만났다. 그 카페의 [횡설수설] 코너에 내가 글을 실으면 유독 관심을 보이고 듣기 좋은 리플을 어김없이 달아주는 여자였다. 나는 회원정보를 클릭해 아이디로만 보던 빨간오리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본명이 김은련이라는 것과 부산에 살고 있다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보는 순간 은색비늘을 지닌 싱싱한 갈치 한 마리가 허공으로 솟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한문으로 그렇게 쓰는 것도 아닐 터인데 그런 이미지로 다가왔다.
나는 빨간오리를 찍었다. 이미지와 상징으로 만든 언어의 낚시 바늘을 드리우자 그 은빛갈치는 금세 낚시찌를 덥석 물었다. 온라인상이지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것이 온라인의 장점이자 병폐지만 싫지는 않았다. [횡설수설] 코너에 횡설수설하는 내 잡문을 실으면 빨간오리의 리플이 어김없이 달리고 그 리플에 나는 답글을 달았다. 그러다가 리플이 쪽지로 둔갑하고 쪽지가 좀 더 긴 메일로 발전한 것이다. 메일에 첨부파일로 가끔씩 빨간오리의 시와 수필이 묶여오는 경우도 있었고 사진이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시와 수필에는 내 무딘 비평의 날을 갈아서 나름대로 평을 해주고 사진에는 탤런트 사진을 퍼 온 게 아니냐고 농을 했다. 그렇게 메일이 오가면 허물이 없어지고 익명성이 엷어지게 마련이다. 첨부파일로 날아오는 시나 수필은 문학성에 있어서 쪽지나 리플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 최소한 나에게만은 그랬다. 하지만 날아오는 사진은 콧날이 오똑한 단발머리에 나이에 비해 꽤 괜찮은 몸매를 지닌 나보다 두 살이 적은 여자였다. 같은 시간대에 카페에서 조우되면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진한 농담도 하고 문학에 대한 얘기도 했다. 물론 대마도 여행도 메신저로 앙코르와트의 여행 얘기를 하다가 대마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했고 일본어를 좀 아느냐고 하자 빨간오리는 일어에 능통하다고 했다. 든든한 가이드가 생겼으니 대마도 여행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의한 건 나였다.
내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그런 여자가 생기면 소유욕으로 발전하는 게 보편적인 남자의 심리인가, 그렇다면 나도 남자다. 다소 음흉한 계획대로 일이 잘 되면 밀월여행이고 각자의 방에서 자고 오게 된다면 함께한 문학기행으로 둘만의 기억에 남을 일이다. 밑져도 본전은 된다. 그러잖아도 한번은 가고 싶었던 대마도였다. 이박 삼일, 항상 좌석이 있다지만 이즈하라로 가는 배표 두 장을 내 이름으로 예매해 두었다. 내가 대마도 여행을 제의했을 때 빨간오리는 일정을 좀 조정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고 사흘 후에 날아온 메일에 그날이 어떠냐는 제의가 왔다. 금요일 오후 배로 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면 일에 큰 지장이 없겠다는 것이다. 단둘이 하는 여행인데 혹 큰 사고를 칠 수가 있다고, 내가 늑대로 둔갑해서 빨간오리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일을 날렸다. 빨간오리 답신도 만만치가 않았다. 자신은 성적인 매력이 없는 여자가 아니라고, 여태까지 그런 생각 없이 메일을 주고받았냐고 오히려 질타의 메신저를 날렸다. 그리고 섹스는 가능할지 몰라도 빨간오리를 잡아먹을 수는 없다고, 유황오리도 아니고 불포화지방산을 지닌 오리가 아니라서 고기 맛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누가 먼저 잡아먹히는지 두고 보자고 했다. 아, 이 환장하도록 직설적이면서 유려한 문장. 보내오는 어느 수필보다도 감동적이고 가장 짜릿한 메일이었다. 대마도 여행은 국내 여행과 큰 차이가 없다. 비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권만 있으면 부산이라는 지역에서는 경비를 따져도 국내에 차를 끌고 다니는 여행보다 덜 피곤하고 경비도 적게 든다. 면세점을 잘 이용해 발렌타인 30년산 한 병을 사서 국내에 들어와 잘 팔면 거의 공짜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빨간오리는 알려주었다.
세 시에 출항하는 배니까 올 시간이 되었을 성싶은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여객선 부두 현관 앞에서 만나자고 분명히 장소까지 정했다. 물론 쪽지로 주고받은 약속이었다. 나는 청모자를 쓰고 갈 것이라 했고 빨간오리는 빨간 등산점퍼를 입고 올 것이라 했다. 접선약속은 그렇게 되어 있었다. 배표를 끊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썰렁하던 대합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도 하나 둘 보이고 택시나 승용차들도 서서히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대합실에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까지 빨간오리는 날아오지 않았다. 무료하게 기다리며 담배를 세 대나 피우고 난 뒤에 터미널 입구 멀리 빨간 점퍼가 나타났다. 그러나 실망이었다. 빨간 점퍼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사십대로 보이는 두 여자가 각자의 배낭을 메고 큰 가방을 함께 들고 오는 빨간 점퍼는 아무리 보아도 빨간오리일 수가 없었다. 그 여자들 중에서 하나가 빨간오리라면 불행도 그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녀들이 가까이 오자 나는 다시 실망해야했다. 그녀들 중 하나가 빨간오리 김은련이었던 게다. 제기랄. 오장육부가 뒤집어졌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빨간오리의 소개에 의하면 같은 동호회에서 수필을 쓰는 친구라고 했다. 마침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가는 바람에 대마도의 고모님 댁에 들를 일도 있고 해서 함께 나선 것이라 했다. 급하게 맘먹은 일이라 연락을 주지 못했다고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빨간거위 한 마리 모시고 나오셨군! 세 명이 함께해야 하는 여행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오지게도 커서 얼음덩이 하나가 쓰린 내장을 훑고 내려가는 듯했다. 넘치는 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빨간오리는 나에게 거리낌없이 달가워하고 친근감을 보였지만 대마도 여행은 밀월여행도 문학기행도 아니었다. 덤으로 따라온, 날개와 더불어 눈치마저 퇴화된 빨간거위 한 마리 때문에 망쳤다. 한 달 동안 혼자서 상상하고 꿈꾸었던 보랏빛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대마. 일테면, 나는 큰 말이 되어서 등짝에 짐을 싣고 다니는 짐꾼으로 변해버린 여행이었다. 짐은 빨간거위가 자기네 고모님 댁에 전해줄 김치보따리였다. 이틀간 고스란히 짐꾼과 사진사 노릇에 호텔비와 밥값 계산만 했다. 엔화가 떨어졌다지만 음식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인데 빨간거위는 식성이 좋았다. 회전초밥집에서 빨간거위 앞에 쌓인 빈 접시는 나와 빨간오리가 먹은 것보다 많이 쌓였다. 눈치가 둔한 빨간거위, 뒤뚱거리는 거위와 함께한 이박삼일은 오지게도 긴 여행이었다. 빨간거위는 이틀을 따라다니며 감시와 미필적 고의에 해당되는 훼방을 놓으며 히타카츠까지 따라왔다가 그곳에서 돌아오는 배를 타기 직전에 다 쉬어터진 김치보따리를 들고 이즈하라에 있는 자기네 고모네 집으로 갔다. 제기랄, 빨간오리를 잡아먹기는커녕, 깃털도 쓰다듬어보지 못했다. 빨간오리와 가진 오붓한 시간은 부산항에 내려서 부근의 해장국집에서 된장국뚝배기로 건배를 했던 시간뿐이었다. 여행은 밋밋했다. 주고받은 말들도 면전이라 그런지 쪽지나 메일처럼 화끈하지 못했다. 순전히 빨간거위 탓이겠지만 한마디로 오프라인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빨간오리를 보내고 허탈감을 걷어차며 걸어서 부산역을 향했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보니 예상을 초월한 경비가 지출되었다. 아까운 시간과 경비, 생각하니 솔직히 속이 좀 아렸다. 암만 생각해도 본전을 못 건진 것이네. 제기랄. 무궁화호에 오르면서 그런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나는 대마도 쪽으로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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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두루미는 대마도를 다녀오고 일주일쯤 지나서 나왔다. 식초를 담은 항아리가 아니라 글을 실은 책자로 출간되었다. 편집장이라는 작자는 그 책을 나에게 보내주지 않았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만 접한 것이다.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인사차 들른 P가 커피를 마시다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초두루미에 실린 홍두 네 작품이 괜찮더라. 바다로 떠난 시인 얘기 같던데……. 혹시 나를 소재로 한 거 아냐? 그렇다면 캐릭터에 대한 소재비 좀 받아야지, 원고료에서 뚝 잘라서 한 방 쏘아.
-지랄하구 있네. 문상 인사차 온 거야? 고약한 협상하러 온 거야?
-됐어. 주신대도 사양하겠어. 근데 소설은 재밌더라.
-그건 그렇고, 책이 벌써 나왔어? 야! 작가에게 책 한 권 보내주는 게 원고료도 없는 출판사의 예의가 아니가?
-책을 못 받았어?
-탑리시인 이제 죽었다. 두고 보라구.
탑리라는 말만 꺼내도 K시인의 얼굴과 오층석탑이 겹쳐져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탑리에 가끔 가는 편이다. 가는 이유는 울적함을 달래기 위한 명분이라고 하지만 분명치가 않고 목적지도 탑리로 꼭 정하고 떠나는 게 아니다. 그냥 울적해서 발길 내치는 곳으로, 핸들이 꺾이는 곳으로 떠났는데 도착을 하고 보면 탑리의 오층 석탑 앞이었다. 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탑을 한 바퀴 둘러보고 탑리시인의 약국에 들른다. 약국에 들어서면 조제실 앞쪽 중앙에 시인의 책상이 있고 모니터 옆에는 문학잡지 몇 권과 시집 몇 권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주객이 전도된 약국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가 많다. 하긴, 면소재지의 약국에 환자들이 줄을 선 것도 아니고 보조약사가 있는데 탑리시인이 꼭 책상을 지킬 이유야 없겠지만 그는 이층 다락방에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제실 안으로 들어가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고 그 계단 끝에 서너 평이 채 안 되는 다락방이 매달려 있다. 그곳이 그의 휴식공간이요, 서재요, 작업실이다. 그는 그곳에서 산고의 신음을 토해내며 시를 생산하는 모양이다. 그는 탑을 소재로 많은 시편들을 썼다. 탑은 본능적으로 상승욕구를 지닌다고 했으며 그 상승욕구를 인간의 성욕구로 연결하기도 하고, 석탑이 날아간다고 했으며, 때로는 탑이 오입도 하고, 장날이면 탑이 장터를 어슬렁거린다는 표현들은 도저히 탑을 곁에 두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시어들이다. 그 다락방에서 창을 열면 바로 앞에 우뚝 선 오층석탑이 고스란히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는 탑에 대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탑이 웅얼거리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고, 탑의 움직임을 그대로 글로 써서 시를 만드는 것이다. 탑에 관한 한 그의 시는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초두루미] 책을 보내주지 않는 행태에 대해서는 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다.
나는 P가 보는 앞에서 약국으로 전화를 넣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치열이 가지런하고 얼굴이 갸름한 보조약사였다. 탑리시인을 바꿔주는데 한참 걸리는 걸로 미루어 탑리시인은 다락방에서 탑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간통을 하고 있거나 탑과 은밀한 오입으로 잉태한 시를 출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홍두가 뭔 일이지비?
한참을 기다려 전화를 받은 탑리시인, 은근히 비꼬는 말투로 보아 내가 왜 느닷없이 전화를 했는지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다.
-다락방에서 또 탑과 간통한 거 알고 방해하려고 전화 드렸지비.
-간통은 아니고 관음하고 있었을 뿐이지비.
-초두루미! 책 나왔다는 소리를 저는 들었지비!
-물론 나왔지비. 근데 홍두가 책 나온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비?
-편집장 모가지 자르라고 전화를 했지비, 각설하고, 왜 책을 한 권 안 보내주는 겁니까? 내가 편집장한테 주소까지 날려주었는데.
농담을 그만두고 정색으로 말했다. 탑리시인은 '수록 작가를 그렇게 푸대접하는 편집장은 당장 모가지를 잘라야 되지비' 하면서 농담이 아쉬운 듯 그렇게 서두를 던져놓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책은 어제 보냈다고 했다. 오늘쯤 도착할 것이라고. 편집장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보냈다는 것이다. 창간호도 못 받았을 것 같아 창간호와 같이 보내느라 자신이 직접 보냈으며 또 편집장이 우리가 타협했던 대물원고료를 알 턱이 없으니 자신이 직접 보낼 수밖에 없노라 했다. 생각하니 원고청탁을 할 적에 농으로 원고료 대신에 비아그라를 달라고 했는데 탑리시인은 정말 비아그라를 원고료로 준다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아스피린 말이지비? 그렇담 눈물 나도록 고맙지비. 나는 눈 빠지도록 기다리지비.
P가 옆에서 듣고 있었지만 우리의 통화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P가 옆구리를 꾹꾹 찌르는 바람에 나는 P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고 P는 언제 찾아뵙겠노라고 형식적인 인사를 깍듯하게 했다.
-어제가 일요일인데 우편물을 어떻게 보냈지?
전화를 끊고 난 P의 말이었다. 나도 궁금증이 일었지만 금세 수긍을 했다. 탑리는 일요일이 없다. 무조건 일요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이 오일장과 겹치면 그 일요일은 약국과 병원은 물론이요 면사무소나 농협마저도 장에 나온 시골 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기초적인 민원업무는 보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제가 바로 탑리 장날이었던 것이다.
-장날이라 가능하겠지.
도회에서 자란 P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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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봉투에 담겨 온 것이 아니라 박카스 상자에 책 두 권이 담겨 우체국 택배로 온 것이다. 누가 보아도 책을 보내온 것이 아니라 약을 보내온 것처럼 보였다. 뜯어보니 초두루미 두 권과 책표지에 동산약국이라고 인쇄된 약 봉투 하나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나는 책보다 먼저 약봉투를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하늘색 마름모꼴의 비아그라 세 알이 둥지 속의 따끈한 새알처럼 보기 좋게 들어있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보니 입가에 실실 흐르는 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원고료를 받은 작가가 있을까 생각하며 초두루미를 대충 훑어보았다. 건강문예지인 만큼 책의 서두에는 건강 상식에 대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문예 분야는 책의 뒤쪽에 실려 있었다. 책을 대충 훑어보다가 탑리시인에게로 전화를 넣었다. 이번에는 탑리시인이 바로 받았다.
-소설 쓰는 눔에게 참으로 소설 같은 원고료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지비.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탑리시인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신작이라 아스피린 세 알을 넣었지비. 처녀작이 아니라면 두 알이야. 나 착하지비? 이뿌지비?
-참, 착하고 이뿌게 지랄하십니다. 근데 정품이 맞나 의심스럽네요.
-숨 쉬는 비아그라 몰라? 홍두 덕분에 성기능 장애 삼 급이 되어버린 이 작자가 처방전 끊어서 지은 거라구? 의심스러우면 당장 임상 실험해보고, 한 시간 후면 약효가 팍팍 나타날 터이니까.
-원고료로 숨 쉬는 비아그라를 받다. 이거 진짜 토픽인데. 이걸 시로 써야 되나 소설로 그려야 되나 모르겠구먼요.
-그건 작가의 마음이지비, 담에 또 청탁해도 되지비?
-다음 신작은 다섯 알로 인상할 겁니당.
책을 잘 받았다는, 아니 비아그라를 무사히 받았다는 보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토픽을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횡설수설] 코너에 얹을 잡문의 소재가 시원찮던 참인데, 있는 일 그대로 짤막한 잡문으로 만들어 카페의 [횡설수설] 코너에 싣는데 현장에서 급한 전화가 온 것이다. 설계가 변경되는 부분에 대해서 빨리 와서 현장답사를 하고 견적을 넣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급하게, 횡설수설 갈겨서 [횡설수설] 코너에 실어놓고 나에게 할당된 숟가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장으로 핸들을 꺾었다.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원고료, 혹은 숨 쉬는 비아그라-
이 괴팍한 인간 홍두가 몽고에 갈 적에는 늘 비아그라를 가지고 갑니.(서두가 이렇게 나가면 또 좋아하시는 분들 계시지~ 누군지 말 안 해도 압니.) 오해 마십시오. 가지고 가는 그 약은 제가 쓰는 물건이 아닙니. 홍두라는 아랫도리에 홍두깨를 지닌 현대판 카사노바는 그런 약에 의존하지는 않습니.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카사노바의 자존심이 약의 효력에 의존한다면 이 휘날리는 명성에 왕창 금이 가는 일입니.
몽고에서 자주 가는 한국식당의 사장 요청을 받고 사다주는 것입니.(그 양반 아무래도 전립선 비대로 추정) 그리고 약값 대신 그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웅담이나 차가버섯으로 바꿔오지욥. 일테면, 물물교환 시대가 이 21세기에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깁니.
한데, 일전에 탑리에서 약국을 하는 아무개 시인이 주간으로 있는 의료문예지에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 비아그라를 소재로 한 소설 한 편을 공짜로 달라는 것이었읍니. 이 인간 홍두 속은 따가웠지만 흔쾌히 승낙했습니. 대신 고료는 주어야합니. 현금이 아니어도 좋습니. 의료잡지니 만큼 비아그라나 건강약품도 괜찮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을 했습니.(이것도 물물교환으로 간주?) 이틀 전에 책이 나왔습니. 근데 홍두에게는 책을 보내주지 않았습니. 작가에게 왜 책을 보내주지 않느냐고 앙탈에다 지랄을 더해서 발광을 했더니 오늘 책이 왔습니. ㅋㅋㅋ 책 표지에 쬐그만 약 봉투가 붙어 있었습니. 약 봉지를 조심스레 열어보니 비아그라 세 개가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
작가님들! 이런 원고료 받아보신 분 계시면 손 들어보시압. 아마도 홍두가 처음일 겁니. 홍두는 몽고에 당분간 나가지 않음으로 비아그라의 주인을 찾고 있슴. 지금 그 약은 제 책상 깊숙이 들어있음. 아내에게 들키는 날에는 내 등짝이 안녕치 못할 것입니. 숨 쉬는 비아그라가 분명함(탑리 아무개 시인이 보증함). 혹시 우리 카페 회원님 중에서 이 약이 필요하시면 손을 드시압. 한 알씩 선사하겠습니. 필요하신 작가님들, 얼른 손 드시압. 선착순입니. 여류작가께서 필요하시다면 우선순위로 잡겠습니. 지금 기분은 카사노바로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만땅입니다.
-마음 두둑한 홍두가 리플을 기다리며 꾸우뻑-
현장에서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변경되는 부분의 설계도는 이미 나와 있었다.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두드려도 견적이 간단하게 나올 정도였다. 변경된 설계도를 한 부 복사해서 돌아올 적에 탑리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글을 실은 지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읽은 모양이다. 물론 탑리시인도 카페의 회원이다.
-홍두! 나 조졌지비.
-그게 뭔 소리지비.
-홍두가 약국 선전을 잘 해줘서 숨 쉬는 아스피린 불티나게 생겼지비. 원고를 준 사람마다 아스피린을 다 보내주게 생겼지비.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이마를 쳤다.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그가 쓴 시를 직접 싣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탑]이라는 닉네임으로 들어와 초고에 올려진 시에 비평과 지도를 겸한 글을 올려놓은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런 마당에 탑리의 아무개 시인이라고 했으니 비아그라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원고료로 아스피린 달라고 난리가 날 텐데 약값은 홍두가 책임져야 되지비?
-그런 작자가 나타나면 제가 대신 사역, 아니 육보시를 하겠다고 일러주시지비.
-아, 그거 참신한 발상! 홍두가 힘 딸리면 나에게로 미루어줄 것이지비?
-그럼 탑리시인이 아니라 탑리동서라고 불러도 되지비?
[횡설수설] 코너가 있는 카페는 익명성이 그리 깊지 못하다. 이제 정회원 이백 명을 상회하는 꽤나 회원 수가 많은 카페지만 누구는 누구를 알고 또 그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다. 회원은 전국에 산재해 있지만 거의가 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글쟁이들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시인 몇 명이 작당하여 만든 카페인데 이래저래 알려져서 신입회원들이 카페지기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서 정회원으로 등업되어 가끔씩 글을 싣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퍼가는 곳이다. 카페 회원들도 꽤나 열성적으로 들락거린다. 문학을 한다면 한번쯤은 둘러볼 만한 카페다. 가끔씩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고 몇몇이 만나 칼국수를 먹기도 하고 다른 카페에서는 볼 수 없이 진한 리플을 달아도 이해를 하지만 [초고 돌려보기] 코너에서는 초고가 올라오면 비평이 날카롭게 달리는 카페다.
카페의 시나 비평을 다루는 코너에 나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에는 서슬 퍼런 비평의 칼날이 단두대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 대해서 예리한 안목을 가지지 못한 나는, 그냥 [사랑방]에 들어가서 리플을 달거나 [횡설수설] 코너에 들어가서 비평을 받지 않을 잡문을 싣는 게 고작이다. 나는 솔직히 그 카페에서 내놓은 인간, 장르 밖의 인물로 낙인되어 있다. 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들어오면 횡설수설하고 사라지는 작자로 찍혔다. 몽고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게걸스럽게 풍자한 잡문을 자주 싣는 편이어서 얼굴을 모르는 회원들도 있지만 홍두가 어떤 인간인지를 대충 알고들 있다. 예컨대, [좌지우지하다]를 [자지거지하다]라고 써도 본래 그런 인간이라 인정하고 그냥 농담으로 리플을 달아주곤 한다. 정작, 빨간오리는 좌지우지를 자지거지하다라고 욕이 아닌 욕으로 쓰다가 태클의 리플이 달리고 그 리플에 또 더 진한 욕을 할 수도 있다고 태클을 걸면서 공방전을 벌이고 서로 간에 오해를 풀면서 가까워지고 결국 엮어진 인물인데 대마도 여행에서 애석하게도 좌지우지하지 못했다. 카페는 한참 주가가 올라 회원 수보다 일일 조회 수가 더 많은데 비아그라 어쩌고저쩌고하는 글을 실어놓았으니 조회 수가 급속도로 올라가고 갖가지 리플이 달리는 것은 말할 바도 없다. 카페의 성격상 이런 글을 얹어 놓으면 이번 달 주제는 이것과 비슷한 것으로 결정이 된다. 이와 유사한 시들을 찾아서 누군가 올릴 것이고 이 주제와 관련된 철학자의 말들이나 성의 역사부터 발전사를 거쳐 변태나 인간의 성 욕구까지 꽤나 수준 높고 논리적인 글들이 올라오게 마련이다.
횡설수설 코너에 장난기 어린 글로 작당을 쳐놓고 현장을 다녀와서 다시 견적을 뽑아 현장에 팩스로 보내고 카페에 들어가 보니 조회 수가 벌써 30회를 넘어서고 있었고 갖가지 리플이 올라오고 있었다.
[ㅋㅋㅋ.]
[과연 토픽감임돠.]
[저 얼굴 붉어졌어요.]
[제가 꼭 필요한 약이죠.]
[ㅎㅎㅎ.]
[사모님이나 즐겁게 해주세여.]
[저요. 제가 손을 가장 먼저 듭니다.]
[이 글은 서사시가 아니죠?]
[가장 좋은 원고료입니다.]
[잘 활용하세요.]
[부처님께 시주하시죠?]
[그냥 혼자 다 처잡수세요.]
[그럼 복상사 주지가 되죠. 극락왕생바랍니당.]
뭐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리플이 달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다. 내가 횡설수설 코너에 그런 글들을 싣는 목적은 단지 너무 시에 대한 비평이 난무하는 카페에 청량제 구실을 하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누구든 이야기가 허리 아래로 내려가면 솔깃해지는 법, 내가 싣는 글들은 그 카페에서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나는 리플 아래 다른 리플을 달았다. 손을 드신 분 오프라인 주소를 알려주세요! 라고, 리플을 달고 보니, 저요 제가 가장 먼저 손을 든다는 그 리플은 단 이가 빨간오리였다. 빨간오리? 그 화려한 싱글이 왜 이 약이 필요하단 말인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대마도 여행을 하면서 빨간오리의 신상을 파악한 바에 의하면 오 년 전에 이혼을 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중학생을 상대로 일본어 개인과외를 해서 생활하고 있으며 수필을 쓰는 여자인데 비아그라가 필요하다?
모니터 앞에 턱을 고이고 생각에 빠졌다. 빨간오리에게 그 약이 왜 필요할까? 그냥 농으로 달아놓은 리플일까? 아님, 내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서 그렇게 손을 든다고 한 것일까? 대마도를 다녀오고 한동안 메신저도 메일도 없었던 그녀였다. 나 또한 그동안 한가하지 않아 아침에 잠시 카페를 둘러보고 통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빨간오리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때 메신저 창이 떴다.
[빨간오리님이 채팅 수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간오리와 카페에서 조우되기는 참 오랜만이다. 나는 왈칵 반가움이 솟구쳤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지체할 여유도 없이 확인을 클릭했다.
-안뇽! 오랜만~
바로 빨간오리의 인사가 날아들었다.
-미투!
-대마도에서 미안! 혹시 님께서 삐침?
-대마도 여행? 완전히 [@&%$#*&] 임돠.
빨간오리의 타이핑은 빨랐으나 나는 독수리 타법으로 모니터와 자판을 번갈아 보며 간신히 답신을 날리고 있었다.
-빨간거위 때문에?
-알면서……. 근데 그대가 손을 가장 먼저 들었는데 정말 그 약이 필요한 거?
-당근!
-화려한 싱글이 어떤 연유로? 궁금하이~
-K시인이 보낸 거니까 숨 쉬는 정품이라는 이유!
-K시인을 아남?
-알쥐! 내 시에 비평 리플을 얼마나 달아주는데…….
-혹시, 탑리시인과 내가 삼각관계?
-떽! 웃기는 소리! 숨 쉬는 약, 후딱 보낼 것.
-싱글이 왜 필요하지?
-꼭 말을 해야 아남? 님은 분명 형광등!
-???????
-대마도에서 빨간거위 때문에 불발 되었잖어? 담에 만나면 그대에게 약효를 실험하려구.
-넝담 말고…….
-넝담이 아님! 보내기 싫으면 님께서 책상서랍 깊숙이 보관하고 있다가 담에 만나는 날 그 숨 쉬는 약효, 이 빨간오리에게 선사하시던가^*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머릿속이 불현듯 하얗게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농담이라도 전율이 전신을 감전시켰다. 빨간오리! 어쩌면 그녀가 더 절실했던 것일까? 그녀를 언제쯤 다시 만나자고 할까? 또 빨간거위를 데리고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보다도 농담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에 진위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뭔가에 홀리고 있다. 커서는 껌벅거리고 있었지만 무슨 말로 자판을 두드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커서는 계속 껌벅이며 무슨 말을 하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숨이 가빠지며 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자판 옆에 놓아둔, 아직 읽지 않은 초두루미 표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모니터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 이홍사


[당선소감]
데뷔작은 결코 대표작이 아니다
대구시 중구 계산2가 71번지 매일신문사. 나는 이 주소를 눈 감고도 줄줄 외우고 있다. 벌써 열 번도 넘게 매일신춘문예를 응모한 탓이다. 투고 횟수는 열손가락이 모자라지만 한 번도 주목을 받지 못했고, 지난해 ‘바다로 떠난 시인’으로 겨우 최종심에 올랐다.
오늘 당선 통보를 전화로 받으면서 누군가 아는 후배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정말 뜻밖이다.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는 마감이 촉박했던 관계로 나름대로 깊이있는 퇴고와 숙성과정을 거치지 못한 출품작이어서 당선통보를 받고 보니 약간의 혼란과 현기증이 일었다.
소설을 주물럭거린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원고뭉치를 싸들고 자비로 출간한 작품집과 출판사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다시피해서 낸 소설집이 세 권이다. 지역 문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교류가 많았지만, 미등단 작가라는 오명은 언제나 따라다니며 내 가슴 한 구석을 찔렀다. 이제는 그 오명을 벗는다.
더군다나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소설’의 신인상 통보까지 받은데다가 신춘문예가 아니라 ‘신춘고시’라고 불리는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앞으로 한국 소설가의 한사람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옹골찬 다짐을 한다. ‘데뷔작은 결코 대표작이 아니다’ 라는 구호를 외치며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과 50년이 넘도록 한국문단의 지평을 넓혀온 매일신문사에 머리를 조아린다.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

이홍사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2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네 작품은 나름대로 출중한 성취를 빚어내고 있어서 두 선자로 하여금 각자의 독후감을 한참씩이나 교환(交歡)하도록 만들었다.
'성냥개비 탑'(류용선)은 일인칭 소설로, 소위 티켓 다방을 꾸려가는 '엄마'와 그 매춘업을 소형 승용차로 실어나르는 아들인 '나'의 갈등기를 그리고 있다. 엄마를 '사장'으로 호칭할 수밖에 없는 비속한 세계에 대한 풍자로 손색이 없지만, 거친 문장도 다듬을 여지가 많은데다가 문신을 세 개나 지닌 엄마의 다채로운 애정편력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단편소설로서의 서사를 함부로 낭비하고 있다.
'통장정리'(강홍일)는 방수업을 하던 아버지가 방광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시집을 한권 남기려고 애쓴 여러 착잡한 행적을 좇고 있다. 유품정리로서 고인의 저금통장마다에 숨어 있는 잔액을 기어이 찾아내는 대목들에는 생생한 사실감이 어룽거려서 진경에 값한다.
그러나 연결어미 '~으니'로 문장을 부러뜨리고마는 나쁜 버릇이 간단없이 돌출해서 여간 껄끄럽지 않다. 환절기라는 말 대신에 한자의 뛰어난 조어(造語)능력에 기댄 '간절기'(서지희)는 피디와 단역 탤런트 사이의 애틋한 통정(通情) 및 동거생활 전말기이다.
'방, 여자, 남자'라는 다중시점을 동원함으로써 가장 통속적인 소재를 상당한 경지의 풍속소설로 승화시킨 역량은 야무지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여자쪽의 결혼 실패기 같은 '과거'를 집어넣은 것은 군더더기이고, 곳곳에 작정하고 쓴 선정적인 장면과 대화는 포르노물을 방불케 하는데, 그것의 요긴한 쓰임새를 별개로 치더라도 그것 자체로서의 어떤 개성이 없다는 결격사유는 엄연하다.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리홍사)는 오늘날의 글쓰기 행태가 너무나 사사로운 담론 주고받기에 빠지고 말았다는 통렬한 비판이자 신랄한 조롱이다. 사실상 문학행위는 근원적으로 사적 행위에 불과하며, '논어'같은 경전의 공적행위와는 유별한데, 이제는 컴퓨터 화면상에 떠도는 모든 글이 문학이라는 미명하에 잡담화·골계화· 재담화를 채근함으로써 글의 위용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글짓기 행위에의 비판적 성찰은 많을수록 좋고, 광의의 메타픽션인 이 작품의 작의는 우뚝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쉬임없는 정진을 당부한다.

오생근(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김원우(소설가·계명대 교수)


소리막골

정서윤




골 초입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나무들이 잎을 버린 산등성이는 마치 용이 꿈틀대듯 골짜기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앞서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다. 계곡의 야윈 물소리는 얼음 속으로 가늘게 속삭이며 골짜기 밖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골 안쪽으로 올라갔다.
능선이 구불구불 걸어가다 멈춘 것 같아 잡고 가던 길을 잠시 놓고 고개를 들었다. 골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언제부터 전해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그곳은 소리막골이라고 앞서가는 이가 말했다. 제법 널찍한 터를 잡고 나직하게 엎드려 있는 초가집 한 채가 외로워 보인다. 마당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충직하게 버티고 선 채 나그네를 맞았다. 누군가가 거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집은 비어있었다. 소리꾼 한 사람이 살고 있다고 일행이 귀띔을 한다. 예부터 소리가 머물던 곳이었을까? 소리막골에 소리꾼이 살고 있다는 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신비한 전설 한 토막이 상상의 나래를 편다. 꼭 한번 찾아오리라 마음을 다지며 재촉하는 일행을 따라 수레 길을 찾아 나섰다.
신라의 신문왕이 월성에서 문무대왕의 혼을 모셔놓은 감은사까지 수레를 타고 갔다 전해지는 길. 옛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답사 차 가는 길이었다. 겹겹의 세월은 길을 지우며 흘러갔던 걸까. 수레 길이 거기 어디쯤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일천오백여 년의 세월이 길을 지켜내지 못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만 분분할 뿐 왕의 옛길은 어디에도 남아있질 않았다. 세월이 지켜내지 못한 것이 어디 길뿐이랴. 천년의 왕조가 펼친 그 찬란했던 영화도 간데없어,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길 없는 길이 무언으로 전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앞서가는 산길 중간에는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길을 막는다. 빈 가지에 걸려있던 엷은 햇살이 우수수 떨어지니, 뒤질세라 또 한 무리의 바람 소리는 나무 사이로 달려 나가 다시 길을 묻고 있었다.
소리막골과의 해후는 며칠이 지난 저녁 무렵에 이루어졌다. 그곳에 도착하자 산골의 겨울 해는 급히 산을 넘었고, 노을도 바쁜 듯이 따라가 버렸다. 그새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오더니 산을 감싸 안고 봉우리들을 표 나지 않게 삼켰다.
나는 어둠과 어울려 휘적휘적 초가집 마당으로 들었다. 방안은 촛불이나 호롱불인지 희미한 불빛이 창호지를 바른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림자 두엇이 문에 어른거린다. “계십니까?” 하려는 순간, 방에서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기척을 내려던 내 소리는 싱거운 듯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예고 없이 찾아간 객이 방해가 될까봐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맘을 정했다. 본의 아니게 남의 소리를 몰래 듣게 된 것이 꺼림칙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기에 울도 담도 없는 뒷마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지폈는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솔 내가 스며있다. 마침 굴뚝을 감싸고 있는 펑퍼짐한 밑자리가 훈훈했다. 그 곁에 앉아 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깊어가는 밤의 정적 때문일까. 방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층 더 신비스런 감성으로 전해온다. 폭포에 물이 떨어져 흘러넘치듯, 소리는 방안을 휘젓고는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자의 소리는 먼 산의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같다가 다시 한차례 설움에 차 애절했다. 이어 남자의 소리.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터지는 비음의 날카로움이다. 깊은 강 두꺼운 얼음이 봄바람에 쩌 정 쩡! 갈라지는 소리가 아마도 저러하지 싶었다. 쉰 소리를 맑게 걸러 낸다고 할까. 득음은 맑은 소리를 맑게 내는 것이 아니라 쉰 소리를 맑게 내는 것이라 들었다. 득음의 경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오르막이 득음이라 하였던가. 이 밤중에 누군가를 사로잡는 소리가 바로 득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동은 그런 것이 아닐까. 기쁨이나 슬픔도 아니면서 가슴을 흥건히 적셔내고, 막혔던 무언가를 확 뚫어내는 유장한 소리 말이다.
우리 땅에 뿌리내려 자생하고 있는 질경이나 제비꽃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져 온 우리 소리 민요와 농요. 한 많은 무녀들이 울음을 음악으로 만들었다면, 그는 민초들이 살아온 고달픈 삶을 구슬프게 소리로 풀어내고 있었다. 불빛 희미한 문을 통해 흘러나온 소리는 허공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으로 들어와서 파장을 일으켰다. 나를 세상에 데려오기 전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소리는 아니었을까. 근원을 만난 것처럼 익숙한 곡조에 젖어들었다.
두레로 한 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무논에 엎드려 모를 심던 사람들이 노동의 고달픔을 달래던 모심기소리, 시끌벅적한 시골 장날 구름떼처럼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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