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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1 19:22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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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나의 플라모델                       - 김 휘




1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언성을 높여 다시 말했다.

“아저씨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됩네다. 나가시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웃는 것도 화난 것도 아닌, 플라 모델을 보던 멍한 시선을 내게 주었다. 나는 훈김을 쏘인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볼은 오목하게 패였고 눈은 퀭했다. 정신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 표정이 풀어진 탓일까. 그렇게 보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끈끈하게 잡아당기는 구석이 있었다. 남자가 쇼윈도 유리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선 조금 전부터 내 시선은 흔들렸다.

처음부터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유리에 달라붙은 나방을 보듯 남자의 몰골에 절로 시선이 갔을 뿐이었다. 초가을 날씨에 두툼한 방한복이라니. 방한복 군데군데 터진 틈으로 비죽 나온 누런 솜과 손에 그러쥔 연녹색 소주병은 더 가관이었다. 쇼윈도를 밝힌 조명을 좇아 파닥이는, 통유리 밖의 나방이 연상될 정도였다. 이를테면 누에고치 같은 가는 몸통에 연두색 날개가 달린 나방이나 누런 똥 색 날개가 있는 나방 말이다. 박자가 맞으려는지 쇼윈도 유리에 붙은 남자의 얼굴도 딱 누런 똥 색이었다.

쇼윈도에는 항공모함, 장갑차, 전투기 따위의 플라 모델들이 진열되어 있다. 남자는 그중에 어떤 것을 보았을까. 얼핏 전투기가 있는 곳에 시선이 가 있는 것 같긴 했다. 남자 뒤로는 긴소매 티셔츠나 얇은 재킷 따위를 입은 행인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또 왔네.”

남자를 보자 계산대에 앉은 사모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들도 눈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손님 옆에 서서 제품설명 중이던 창용이 이를 엇물었다. 내게 턱짓을 했지만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나는 멍했다. 남자가 구석 쪽에 있는 할인가 품목진열대 앞에 가 멈춰 섰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부근에 서 있던 손님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갔다. 사모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진열장에 물건이 없어졌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모님은 나와 창용에게 쓴 소리를 했다. 사람들에 가리면 감시카메라가 있어도 소용없다며 잘 지켜봐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 일이 있어선지 사모님은 화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저런 놈이 자꾸 들락거리니 가게 물건이 한두 개씩 없어지지.”

창용은 슬쩍 사모님의 표정을 살피며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플라 모델의 제품의 진열상태를 확인하던 나는 창용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람 뭐이가?”

“아, 저 나발쟁이. 처음엔 유리문 앞에 코 처박고 몇 분 동안 서 있다 가더니 이젠 아예 가게로 들어와 한참을 저러다 간다. 냄새가 지랄 같아서 난 가까이 가기도 싫어. 야, 종안이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창용이가 내 등을 확 떠밀었다. 두세 걸음 떠밀린 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냄새가 고약해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들어온 지 보름밖에 안 된 초짜인 게 죄라면 죄였다.

코를 잡아 쥔 손님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가달라는 말 고저 안 들립네까?”

꿈쩍도 하지 않는 남자를 향해 나는 한 번 더 세게 말했다. 착각이었을까. 순간 내게 말을 걸 것 같은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일어섰다 사그라졌다. 남자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나는 대단한 임무라도 수행한 듯해 어깨를 으쓱했다.

가게 안은 다시 평온해졌다.

내가 일하는 플라 드림은 삼 층짜리 건물 일 층에 있다. 가장 번화한 삼거리 대로변 정 중앙에 있는 건물이다. 이 층과 삼 층에는 핸드폰, 컴퓨터에서부터 최신식 가전제품을 파는 전자랜드가, 아래 일 층에는 나이키, 퓨마 같은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대형매장이 있다. 그 같은 층에 플라 모델을 파는 플라 드림이 있다. 플라 모델 상자 안에는 실제 모습과 똑같은 축소 모형을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 조각부품들이 들어 있다. 조립하면 캐릭터 인형이나 로봇이 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집과 마을로 탄생하기도 한다. 완성된 것들 앞에 서면 마치 내가 거인이라도 된 기분이 든다.

플라 드림에서 인기품목을 꼽는다면 단연 전쟁에 동원되었던 병기들이다. 꼭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런 품목에 관심 있는 남자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전투기, 장갑차 같은 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면 순간 강해지는 묘한 기분이 든다. 지나가던 남자들이 쇼윈도에 진열된 플라 모델들을 슥 보기만 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도 다 그런 까닭일터다.

통유리 밖에서 머뭇대다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플라 모델 초보자도 있고, 단지 구경할 요량인 치도 있지만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가 다수이다. 플라 모델 마니아는 여느 마니아들이 그렇듯 가격 따위를 고민하지 않는다. 입고된 모델 정보를 이메일로 뿌리자마자 금세 동나는 건 그런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놓칠세라 경쟁이라도 하듯 서둘러 가게에 온다. 우리 반 필록이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새 모델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플라 드림에는 필록이 같이 주머니 두둑한 아이들 손님이 많다. 나는 일하면서 내 또래의 아이들이 가격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모델을 사들고 나가는 걸 매일 보고는 했다.

아이들은 등하교 때마다 쇼윈도를 기웃댔다. 우리 반만 해도 플라 모델에 미친놈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한 놈이 새로 산 모델을 자랑하면 녀석들은 부러워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녀석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던 것도 내가 플라 드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나를 탈북자라고 놀려대기만 하던 녀석들이었는데 플라 드림에서 일하는 걸 알고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녀석들이 입고나 모델 정보를 얻으려고 말을 걸어왔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창용에게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한 억양으로 떠듬대는 나와 달리 창용의 설명은 유연하다. 귀에 쏙쏙 박힐 정도여서 학교 아이들이건 매장 손님들이건 창용에게 들러붙는다. 오늘도 문 닫을 시간이 다 되도록 나는 낮에 비렁뱅이 내쫓은 일 말고는 손님을 제대로 응대해보지 못했다. 어눌한 말씨에 북한 억양까지 튀어나오면 사람들은 고개 돌려 나를 한 번 더 봤다. 그때마다 나는 내 입에서 악취가 나서 그런 것처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정말이지 북한 억양을 확 지워버릴 수는 없을까. 라디오나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따라해 보기도 했다.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의 입 모양을 흉내 내 보았고 흔히 유행어를 만든다는 연예인들이 오락프로에서 하는 말을 중얼거려도 보았다. 생각만큼 억양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플라 드림에서 일하고 있다. 고향 빵집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자리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플라 드림 사모님한테 소개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절친한 벗이었다는 인연으로 사모님은 고향 빵집 할아버지를 평소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고향 빵집 할아버지가 부탁하는 거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탈북자에다 말까지 어눌해서 어디 써먹겠느냐고 내 앞에서 노골적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하지만, 나를 쓰겠다고 밀어붙이는 사모님의 목소리가 더 컸다. 사장님은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사장님의 못마땅해 하는 시선 때문에 첫 출근 때부터 주눅이 들긴 했다. 그래도 그런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북한 억양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고, 손님들이 지갑을 열도록, 기왕이면 비싼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요령을 배워나가면 될 것이다.

“종안이 녀석 일은 잘하나?”

어제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가 사모님에게 물었다. 사모님이 성실해요, 하고 대답했다.

“너 수영 형 말도 잘 듣고 있지?”

사모님 옆에 선 나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고 녀석, 하고 웃었다. 그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자 내 안에 온기가 천천히 퍼졌다.

할아버지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실 그 도움은 수영 형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를 단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떠맡기엔 수영 형의 처지는 썩 좋지 않았다. 원하는 회사마다 미끄러졌다. 좋아 지내던 누나와 헤어진 뒤로는 얼굴에 표정이 아예 사라졌다. 그런 형에게 나는 뻣뻣하게 굴었다. 아무리 되는 일이 없기로 사사건건 퍼부어대는 형의 잔소리는 듣기 싫었다. 형은 툭하면“너 그런 식으로 굴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어”라는 소리를 했다. 제멋대로 군다며 가르치려 들었다. 언젠가 형과 나는 쌓인 감정이 폭발해 씩씩대며 길에서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지켜보았는지 다가와 “이 녀석 형한테 그러면 못써”하며 끼어들었다. 나는 형에게 눈을 흘기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수영 형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었다.

“나 이거랑 이거.”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엄마 손을 잡아끌며 들어온 꼬마가 진열대 중앙을 가리켰다.

“하나만 골라.”

손지갑을 든 아이 엄마는 새된 소리로 말했다. 꼬마가 가리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두 개를 합해 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창고 안에서 핸드폰 문자 찍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사모님은 계산대에서 수화기를 든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두 개 다 비싼 거이 아니니까 오마님 두 개 사주시오.”

아이 엄마는 나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북한 억양에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보아온 터여서 나는 무조건 미소로 대응했다. 플라 모델은 아이의 두뇌발달에 좋다고도 덧붙였다. 아이 엄마의 경직된 얼굴이 풀어졌다. 내 표정이 어쩌면 비굴하고 불쌍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성공이었다. 아이 엄마는 계산대로 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두 가지 모두 싸달라고 말했다. 사모님이 영수증을 뽑으며 웃는 낯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모자에게 허리 꺾어 인사했다. 손님을 혼자 상대해 물건을 판 건 처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바닥을 청소하거나 진열대를 정리하고 쇼윈도에 전시용 플라 모델의 진열 위치를 가끔씩 바꿔주는 게 고작이었다. 하루 마무리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사모님이 현금 서랍을 잠그며 계산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문 닫을 준비하자, 하고 한마디 하자 창용이가 창고 문을 닫으며 나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야, 문 걸어 잠그고 어서 셔터부터 내려버려!.”

녀석은 늘 내게 명령조다. 일하는 시간은 같지만 자기가 상사쯤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함부로 대했다. 속이 뒤틀려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할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뜻밖에 그 남자와 함께 서 있었다. 며칠 뒤 학교 수업을 파하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고향 빵집 앞에서 남자는 할아버지가 내미는 빵을 건네받고 있었다. 여전히 한 손엔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자는 늘 소주병을 들고 다니면서 병째 나발을 분다고 동네에선 나발 아저씨 혹은 나발쟁이로 통했다. 나발 아저씨는 언제부터 저런 모습으로 이 동네에 흘러들었을까. 걸러질 뿐 스며들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추운 일인가. 나도 모르게 나는 나발 아저씨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붙들렸다.

나발 아저씨는 방향을 틀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 건너 공원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뒷모습을 우두커니 시선으로 좇았다.



2


“나 블랙 나이트 에프십사 땡겼다.”

첫 교시가 끝난 뒤 화장실 창문 가에 선 필록이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좋겠다. 조립 다했냐? 씨팔 나도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빡세.”

줄줄이 서서 담배를 돌려 피우던 녀석들 중 하나가 툴툴댔다. 플라 드림에 이틀에 한번 꼴로 오는 녀석이었다. 와선 플라 모델 상자를 만지작대며 군침만 삼키다 갔다. 사모님이 계산대에 버티고 있을 때는 겨우 삼천 원짜리 플라 모델을 집어들고 지갑을 열었다. 주머니 사정이 달랑한 그런 녀석에게 블랙 나이트 에프십사는 엄두도 못 낼 고가의 모델이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창용이가 거울을 보며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가격은 세지만 벌써 딱 세 개밖에 안 남았다 쨔샤. 일본에서 소량 들여온 거라 입고안내 메일 뿌리니까 이틀 만에 거진 다 나갔거든. 필록이가 열여덟 번째로 사갔지. 빨리 안 오면 그거 구경도 못하니까 알아서들 해. 아 그리고 이번 리스트에서 타미야제 미쓰비시 에이식스엠투제로 말이야. 그건 앞으로는 입고계획이 없는 모델이라 이번 기회 놓치면 구하기 어려울 거다. 우리 대머리 사장이 그러더라. 야, 종안아 너도 들었지, 그지? ”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창용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다. 담배를 피우던 녀석들 중 다른 하나가 창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와, 그 진주만 공격에서 이름 떨쳤던 그 전투기? 모델 사진 보니까 영화에서 본거랑 똑같더라. 짱 나게 멋있겠다.”

“물론이지. 이번에 안 사면 후회할걸. 너희한테만 알려주는 거다.”

창용은 대단한 정보를 살짝 알려준다는 듯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어떤 녀석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긴 창용이가 흘려주는 플라 모델 입고정보는 주머니 두둑한 마니아가 아니면 생각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창용이가 은밀한 목소리로 정보를 흘린 날은 효과는 직방이었다.

이틀 전만 해도 창용에게서 정보를 들은 아이들이 하교하자마자 가게에 나타났다. 상자를 집어든 녀석에게 창용은 영수증을 뽑으며 말했다.

“너 진짜 운 좋은 거야. 이거 하나 남은 거거든.”

녀석의 얼굴에 하마터면 못 살 뻔했다는 안도의 미소가 스쳤다. 창용은 녀석이 나가자 빈자리에 같은 모델을 채워 넣으며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창용의 거짓말은 퍽 자연스럽다. 그건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수완이었다. 아이들의 구매 욕구에 불을 지르는 묘한 화술, 신모델을 안 사면 친구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 유도. 나는 창용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술에 꽂으며 창용이가 말했다.

“야, 필록. 너 지난주에 사간 더글라스 에프삼오 스카이레이 조립 다 끝났냐? 조립 다했으면 그거 애들 좀 구경시켜 주라.”

“알았어. 그러지 뭐. 너희 놀랄 거다. 환상이야 환상. 안 그래도 내일 우리 플라 모델 동호회 모임이 있거든. 야, 너희도 얼마 전에 조립한 경주 카 갖고 나와.”

필록은 앞에 서 있는 녀석들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오, 그렇구나.”

창용은 아이들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곧게 세워 보이며 필록을 두둔했다. 필록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여유롭게 웃었다. 값비싼 플라 모델만 사가는 필록은 길 건너 주유소 사장 아들이다. 창용의 말마따나 브이아이피 고객이었다. 고객관리가 별거냐 비싼 고객을 우쭐하게 해주는 게 고객관리지, 하고 언젠가 창용이가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마냥 웃고 있는 필록을 보며 나는 속으로 ‘그렇지 고객관리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 부부는 창용을 신뢰했다. 오늘만 해도 학교 대청소 때문에 지각한 건 마찬가지인데 사장님은 나에게만 잔소리를 쏘아댔다. 나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정작 투덜대야 할 나도 참고 있는데 사장 부부가 보지 않는 틈틈이 창용이가 툴툴거리고 있었다. 상자를 정리하다가도 창고 문틈 쪽을 향해 비웃는 시선을 겨누기까지 했다. 정리하던 상자에 붙은 박스 테이프를 손끝으로 얇게 찢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팔,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장사가 잘되는 건데. 회사 같은 데선 능력별 건수별로 인센티븐가 뭔가 준다는데, 난 뭐냐고. 내가 고등학생이라고 그냥 막 넘어가고 있어.”

창용이가 투덜대는 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사실 플라 드림의 매출을 확 올릴 수 있었던 건 내가 봐도 창용이가 요리조리 수완을 발휘한 덕이었다. 교내 플라 모델 동호회를 주도해서 마니아층을 다졌고, 그 애들을 중심으로 고객층도 늘렸다. 구경할 요량으로 가게에 들어온 손님도 놓치지 않고 지갑을 열게 했다. 그런 창용의 수완에 나는 여러 번 입을 떡 벌리며 부러워했다.

나는 창용의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문을 잡아당겼다. 창고 문틈으로 가게 안을 힐끔거렸다. 사모님의 고압적인 말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누구를 찾으시죠? … 성함을 말씀하셔야죠 … 네? …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거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모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창고에서 뛰어나갔다. 잔뜩 굳은 표정을 한 사모님이 소리쳤다.

“얼른 가서 아저씨한테 전화 받으시라고 해라.”

나는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습관처럼 나는 부동산 소개소 출입문 앞에 다다랐다. 가게에 없다 싶으면 플라 드림 옆 건물 일 층에 있는 미래부동산에 가보면 되었다. 사장님은 동년배인 미래부동산 이 씨와 바둑을 두며 어울렸으므로 다른 데 있나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다. 파란색 셀로판지가 가로로 띄엄띄엄 붙은 사이로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벽에는 동네를 축약해놓은 지도가, 그 밑으로 주택, 오피스텔, 아파트, 상가 별 매물가가 인쇄된 종이들이 줄지어 붙어있었다. 세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갈색 가죽소파에 깊숙이 상체를 파묻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뿌연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대화가 흘러나왔고, 재개발 어쩌고 하는 말이 여러 번 들렸다.

“공원 후문 쪽 야산 아래 그 일대 말인가?”

“그렇다니까. 지금 한창 추진 중인데 뭐 쉽지는 않은 모양이더라고. 보상금문제도 잡음이 많고 게다가 딱 절묘한 위치에 오래전부터 버려진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게 골치야.”

“소유주가 없나? 없으면…어, 종안이 왜?”

나는 문을 반쯤 열어 고개만 들이밀었다. 대화 중간에 끼어든 것을 어색해하며 사장님에게 전화 왔다는 말을 전했다. 사장님은 하던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고는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송수화기를 받아든 사장님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사모님이 전화기 앞에 팔짱을 끼고 선 채 사장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장님은 귀밑까지 붉어져서는 수화기에 입술을 대고 겨우 네 네, 하며 힘겨운 통화를 했다. 사장 부부 사이에 서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하던 일이 있는 척하며 얼른 창고로 들어갔다. 상자를 정리하던 창용이 나를 보고는 사장 새끼 딱 걸린 모양이군, 하며 키득거렸다. 재미있다는 듯 플라 모델 상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을 만들어 보였다. 입에서는 폭발음을 흉내 낸 위잉--- 꽝, 하는 소리가 웃음소리와 섞여 나왔다.


“위잉---.”

공원 위로 모형비행기가 허공을 갈랐다. 아이들이 공중에 시선을 던지며 와와, 소리를 질렀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 무리에 섞여들었다. 크기만 작을 뿐 실제의 모습과 똑같은 비행기가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는 게 퍽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아지 목줄을 쥔 운동복 차림의 어떤 아줌마는 정말 시원하게 나네, 했고, 지팡이를 쥔 어떤 노인은 중절모를 벗어들고 조그만 게 제법 나네, 하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하나같이 눈요깃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갖고 싶어 미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공터의 다른 한쪽에도 질주하는 무선 경주 카를 보려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시선과 환호는 하늘을 향했다.

필록은 두 손안에 리모컨을 쥐고 허공에 비행체를 움직였다. 비행체는 넓게 곡선을 그리며 높이 올랐다가 내려오는 식으로 수직선회를 했다. 선회성능은 곡예를 선보이듯 매끄러웠다. 연속해서 삼 회 선회를 하며 원을 그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필록의 표정은 더글라스 에프삼오 스카이레이만큼이나 붕붕 떠 있었다. 나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따라 쳐든 고개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잠깐이지만 플라 모델 동호회에 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동호회 아이들처럼 고가의 플라 모델을 사 모으며 나도 마니아라고 과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공중을 가르는 무선모형비행기에 멍하니 시선을 걸쳐나 볼 뿐이었다.

비행기를 따라가던 내 시선이 순간 멈추었다. 눈에 나발 아저씨가 들어왔다. 멀찍이 벤치에 앉아 소주병을 입에 꽂은 채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고 먼 무언가를 향한 듯 망연한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공중을 가르던 모형비행기가 휘청 날개를 뒤집었다. 돌발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입에선 어, 어, 하는 단절음이 터져 나왔다. 모형 비행기는 가파른 선을 그리며 급강하하더니 나발 아저씨의 발밑으로 내려앉았다. 불시착이었다. 나발아저씨는 상체를 숙여 무선모형비행기를 집어들었다.

“이리 주세요.”

필록은 나발 아저씨에게 뛰어가 손을 내밀었다. 필록을 따라 간 아이들 어깨너머 나는 목을 빼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나발 아저씨는 못 들은 척 계속 비행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에이씨,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그렇게 함부로 만져요. 빨리 주세요.”

나발 아저씨의 손에서 낚아채듯 비행기를 뺏고서 필록은 비행기를 이리저리 보며 중얼댔다.

“에이 씨팔, 바퀴부분이 부러졌잖아.”

“어디 봐. 야 이거 바퀴는 좀 심하네. 접착제로 붙여도 보기 흉하겠다.”

창용이는 필록이가 든 비행기 바퀴를 만졌다. 필록이는 나발 아저씨를 건너다보며 투덜댔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나발 아저씨는 뒤돌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이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나발 아저씨의 뒤를 밟았다. 들키지 않을 만큼 떨어져서 따라갔다. 나발 아저씨는 공원 후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후문을 지나자 야산 아래 나무가 우거진 길이 나왔다. 대로변이나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오십 미터쯤 전방에 집 한 채가 보였다. 기와지붕의 한옥이었다. 지붕은 기왓장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담장은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 담의 안과 밖으로 어린아이 키만 한 잡초들이 웃자라 있었다. 버려져 방치된 지 오래된 흔적이었다.

부동산 소개소에서 버려진 집 운운하던 말들이 눈앞에 먼지 날리듯 떠올랐다. 주위를 살피던 나발 아저씨의 뒷모습이 무너진 담장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학교를 파하고 가게로 향하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예의 빵 하나를 내게 주었다.

“감사합네다.”

빵 한입을 베어 물었다. 보드라운 빵의 속살이 입 안에서 녹는 순간 할아버지에게서 빵을 건네받던 나발 아저씨가 생각났다. 나는 주저하다 슬쩍 말을 꺼냈다.

“혹시 가끔 이 앞을 지나던 거렁뱅이 아저씨 아십네까? 일전에 빵도 주시던데….”

“뭐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양반도 너와 같은 처지다.”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기분이 탁 꺾이고 말았다. 초라한 모습으로 거릴 배회하는 나발 아저씨가 나와 같은 탈북자라니. 처음 남한에 와 밤거리를 배회하던 중 지하도에서 본 광경이 기억났다. 지하도 입구나 통로 벽에 부착된 액자형 광고판 밑에 신문지나 종이 박스를 덮고 드러누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고급아파트나 첨단통신 단말기 따위의 광고판들이 환한 빛을 발하며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사라진 지 오래된 미래였다. 비질 한 번에 치워질 나방 시체 같은 그들의 몸뚱어리들은 푸석푸석해 보였다. 환한 불빛을 향해 날개를 파닥이다 추락한 사람들. 나는 광고판 아래 드러누운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벼랑 끝에 몰려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이 노숙자로 변태하는 것이 이곳 생리라고. “옛다. 마침 잘 됐다.”

“네?”

“그거 다 먹고 공원 후문에 그 집 알지? 폐가 말이다. 거기 좀 다녀와. 네 녀석 달음박질이면 십 분이면 갔다 올 수 있을 게다.”

할아버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거긴 왜요? 지금 저더러 거길 가라 이 말씀입네까?”

“그 양반 어제오늘 안보이던데 굶고 있을 게야. 전에 나한테 거기 기거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나는 옥수수 빵이 담긴 비닐봉지를 집어들었다. 할아버지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발 아저씨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날 달리게 했다.

버려진 집은 낮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두리번거리며 담 안으로 들어섰다. 안마당은 넓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여기저기 깨진 항아리 조각과 기왓장이 널려 있었다. 안마당 한가운데 서서 집의 정면을 바라보자 오싹해졌다. 마루로 올라서는데 나무 문짝이 부서진 채 먼지 쌓인 바닥 여기저기에 보였다. 천장 곳곳엔 거미줄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개량한옥인지 복층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층 세 번째 방은 다락방과 이어진다고 했다.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좁고 높았다. 계단을 기다시피 올랐다가 내려가야 다락방에 닿게 되는 구조였다. 계단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나는 마지막 층계참에서 희미한 불빛을 확인하고 평평한 나무 바닥에 뛰어내렸다. 대낮인데도 창문이 없어 어둑했다. 책상과 선반 위에만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둘둘 말린 담요가 움직였다. 뒤이어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데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나발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이 절로 코로 갔다. 먼지 내와 곰팡내에 사람의 체취까지 섞인 악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손을 코에서 떼고 나발 아저씨에게 다가가 빵 봉지를 건넸다.

나발 아저씨는 허겁지겁 빵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아저씨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다락방 안을 둘러보았다. 탁자 위에 세워진 작은 직사각 탁상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흑백사진 한 장이 유리덮개 안에 끼워져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컵에 꽂힌 촛불을 들어 사진 가까이 대었다. 오래된 흑백사진인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리표면에 닿은 불그레한 촛불 빛에 사진이 군데군데 하얗게 보였다. 하지만 날렵하게 보이는 비행기와 그 앞에 군복 입은 한 남자가 군모를 가슴에 벗어든 채 서 있는 걸 알아볼 수는 있었다. 자세히 보니 청년이었는데 치아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 아저씹네까?”

나발 아저씨는 대답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입 안에 빵을 우겨넣기만 할 뿐이었다.

“아저씨 뒤에 있는 건 미그전투기 아닙네까?”


“…….” 꾸역꾸역 삼키는 빵과 함께 내 말까지 삼켜버렸는지 나발 아저씨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 안 가득 우물거리기만 했다. 나는 나발 아저씨의 얼굴을 응시하다 무안해졌다. 무슨 말을 건네도 너는 지껄여라 나는 관심 없다는 식으로 아저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말 걸기를 포기한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툴툴거리며 안마당을 지나다가 하릴없이 발길질을 했다. 발끝이 딱딱한 것에 걸리자 몸 중심이 휘청하면서 넘어질 뻔했다. 무성한 잡초 때문에 땅바닥에 비죽 나온 사금파리를 보지 못한 것이다. 놀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오랫동안 숨 쉬지 않고 잠수를 하고 난 뒤만큼이나 바깥공기는 달았다. 시원하고 단 공기 때문이었을까. 머릿속까지 확 환기가 되는 기분이었다.

순간 확인하고 싶은 것이 반짝 떠올랐다.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내리꽂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이마에 댄 채 달려야 했다.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쇼윈도를 살폈다. 전시용 모형들 중에 미그전투기가 장갑차 뒤로 비스듬히 동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빨간 세일 딱지가 붙은 그것은 조금 전 다락방에서 본 그 전투기가 틀림없었다. 바닥에 부착된 스티커에는 정확히 ‘미그19전투기’라는 모델명이 찍혀 있었다. 낯선 곳을 지나다 조금 열린 집 대문을 발견하고서 문틈을 기웃대듯 나는 모형 미그19전투기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려 환한 빛 속에서 집 안의 구석구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쇼윈도에 얼굴을 들이대던 나발 아저씨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모형일 뿐 날지 못하는 그것을 보며 나발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3


수업이 끝나자 교문 밖으로 아이들이 무리지어 쏟아졌다. 필록이와 앞서 걷던 창용이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나발쟁이 또 보네.”

골목 모퉁이에 나발 아저씨가 서 있었다.

“공원에서 본 그 비렁뱅이잖아.”

“그래. 오래전에 탈북한 사람이라더라. 잊을 만하면 가게에 나타나거든, 우리 사장 여사가 아주 질색한다니깐.”

필록은 아이들 사이에 서 있던 나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야, 종안이 넌 저 나발쟁이랑 대화가 좀 통하겠구나? 하하.”

창용은 필록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니까 사모님이 하도 질색해서 전에는 내가 나가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꿈쩍도 안 하는데, 종안이 녀석이 뭐라고 하니까 말을 듣더라고. 역시 같은 북한 사람이라 통하는 게 있나봐.”

같이 걷던 아이들이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등에 느끼며 나는 혼자 가게로 갔다.

나는 창고에서 플라 모델 상자를 정리했다. 창고 문에서 왼쪽으로는 재고품목들이 쌓여 있다. 쌓인 상자들 중 유독 미그19기 상자에 시선이 갔다. 정리할 때마다 보는 상자였다. 그런데 왠지 그것을 보자 평소와는 달리 숨쉬기가 빨라졌다. 나는 창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미그19기 상자를 바라보았다. 까짓 꺼 하나쯤 …. 손님이 뜸한 시각이었다. 열린 창고 문틈으로 가게 안을 살폈다. 사모님은 전화통화 중이었고, 창용이는 가게로 아직 오지 않았다. 조도가 낮은 전구 아래 상자 더미의 그림자가 바닥에 넓게 누워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밟으며 소리 내지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


버려진 집 앞에 이르자 내 그림자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둠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낮에 한번 와 본 뒤로 밤에 오기는 처음이었다. 잡초를 밟으며 안마당을 지나 마루 한복판 쯤 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움칫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침을 힘겹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버려진 집에 들락거리는, 배고픈 고양이일 뿐이라고 가슴을 자꾸만 쓸었다. 먼지 날리고 곰팡내 나는 곳이지만 문갑, 책장, 탁자 따위의 물건들이 있었다. 고양이는 그런 텅 빈 가구 어디쯤 웅크리고 있다가 인기척에 경계의 신호를 보낸 것뿐이다.

긴장을 털어내며 나발 아저씨가 있는 다락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왼쪽으로 열 걸음쯤 되는 곳에 계단이 있었다. 걸을 때마다 나무계단에서 삐익, 소리가 났다.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불안한 소리였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를수록 낮에 왔을 때 본 적이 있는 이 층 방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문득 한기를 느꼈다.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 같은 방 안에는 벽마다 무언가를 걸어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뭉쳐진 먼지 덩어리와 부서진 살림 집기 따위들이 굴러다녔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은 음산한 기운과 뿌연 먼지뿐이었다. 낮에도 그랬는데 귀속을 파고드는 삐익, 소리에 정말 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깨가 절로 움츠러졌다.

“유령이 나온다고?”

얼마 전 필록이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놀라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 유령 나온다는 소문 파다한 걸.”

옆에 있던 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별일이네. 우리 아버지 얘기로는 공원 뒤쪽 그 집이 있는 일대가 재개발될지 모른다는데, 웬 난데없이 유령 소문이 나도냐. 야, 창용이 너 들어가 봤니?”

창용이는 화장실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려 담배연기를 후, 하고 뱉다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필록이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그 집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 들어가 본 사람이 있는지 다시 손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뜨끔했다. 필록이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 집에 접근하지 않길 바랐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내가 퍼뜨린 건 그런 바람 때문이었다. 유령 소문은 효과가 있었는지 그 근철 얼씬거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사실 폐가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은 어떻게 보면 아주 거짓말도 아니었다. 유령 같은 사람이 살긴 사니까.

마지막 층계참에 이르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락방의 평평한 나무 바닥에 뛰어내렸다. 나발 아저씨가 나무의자에 앉아 시든 사과를 베어 먹고 있었다. 내가 촛불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반기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발 아저씨는 사과를 씹던 입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린 플라 모델을 힐끔거렸다. 나는 얼른 손에 든 걸 나발 아저씨 눈앞에 내밀며 말했다. “미그 19기라요.”

나발 아저씨는 말없이 미그 19기를 두 손에 받아들었다. 나는 아저씨의 표정을 살피면서 탁자 위에 탁상사진액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사진 속에 이거 미그19기 맞디요?”

“…….”

“사진 속에 이 사람 아저씨 맞디요? 지금 모습이랑 너무 달라 처음엔 못 알아봤습네다.”

“…….”

나발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그19기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기울였다하면서 살펴보기만 했다.

“아저씨 미그 19기 조종사 맞디요?”

“…….”

“고렇게 암말 안 한다고 내가 못 알아볼 줄 아십네까? 이야, 실제로 이 전투기를 몰았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뜁네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발 아저씨는 나를 슬그머니 건너다보았다. 가게에서 나가달라고 말했을 때 내게 주었던 멍한 눈빛이 문득 생각났다. 지금 나를 보는 나발 아저씨의 눈빛은 그때와 달랐다. 이내 시선을 거둔 아저씨는 한 손에 미그19기를 잡고 날아가는 모습을 만들어 보였다. 잠시 뒤 아저씨는 입술을 떼었다.

“미그19기는 초음속 전투기야, 나는 소리부터가 틀리고든. 이게 을마나 대단한가하믄 별명까지 있다 아이네. 베트남전에서 미제전투기를 하도 마이 격추시켜스리 미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무덤대령이라는 불렸던거고든.”

기복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다락방의 적막 속에서 들어서일까. 그 목소리에 나는 미그19기가 오래전 전투에서 활약했던 장면을 마치 본 것처럼 눈앞에 그릴 수 있었다. 나발 아저씨의 말 하나 호흡 하나가 정교한 조립부품처럼 내 머릿속에서 신속하게 조립되었다. 나는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발 아저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는 십 년 전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그때 비행기를 몰고 왔을 때만 해도 대단했오. 남한 신문기자들이 내 사진을 찍어대고 질문을 퍼부어댔오.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대접을 받았었고든. 같은 핏줄의 자유의 나라에 안긴 소감이 어떠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나는 무조건 꿈만 같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고든.”

나발 아저씨의 눈빛은 촛불의 빛보다 더 가늘게 일렁였다. 나는 여전히 꿈만 같은지, 행복한지를 물었다. 곧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발 아저씨는 대답 없이 입에 소주병을 꽂고 꿀꺽꿀꺽 소주를 삼켰다. 대화는 끊어졌다. 한숨소리와 목구멍으로 소주가 넘어가는 소리가 기묘한 정적을 다락방 안에 퍼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나발 아저씨는 미그19기의 몸통을 거머쥔 손을 바닥에 늘어뜨렸다.

“지금 뭐하시는 겁네까?”

나발 아저씨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는 늘어뜨린 손을 바닥 위로 그으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그19기는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 채 나발 아저씨 손에 천장 높이로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이륙? 그랬다. 이륙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팔뚝만 한 미그19기 모형은 조금 전 다락방 나무 바닥을 박차고 이륙했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이융, 하는 엔진 소리는 힘찼다. 신문지가 덕지덕지 발린 벽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은 하늘이 되었다. 칠이 벗겨진 밤색 탁자와 나무 바닥과 누덕누덕한 매트리스는 강과 산이 되었다. 미그19기는 궤도를 공전하듯 방 안을 날았다. 나발 아저씨의 다리는 전투기의 추진력이 되었다. 다리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선 먼지가 풀썩풀썩 피어올랐다. 다락방 가운데 쭈그리고 앉은 나는 먼지를 마셔 연방 잔기침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빙빙 도는 미그19기를 보고 한참 웃으며 손뼉을 쳤다. 나도 빙빙 돌고 있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때 천장 가까이 날던 미그19기는 점점 탁자 위까지 내려왔다. 저공비행 중이었다. 플라스틱 전투기 날개 밑으로 미사일이 한없이 투하되고 있었다. 내가 가져온 코카콜라 캔 위에도 떨어졌고, 때로 얼룩진 매트리스 위에도 떨어졌다. 반복된 공전은 어쩐지 날리는 먼지 속에서 간절한 기원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발 아저씨도 현기증이 나는지 숨을 헐떡이며 매트리스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미그19기를 타고 멀리 날아본 것 같다, 하고 토막 난 말을 가뿐 날숨에 실어 내뱉었다. 먼지가 날려서 환기하고 싶었지만 다락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4


플라 드림 창고 안은 초가을 저녁인데도 더웠다. 긴장한 탓이었다. 처음도 아닌데 문구용 칼을 든 손이 떨렸다. 쌓인 상자들 중간쯤 한 상자의 봉인스티커를 막 벗겨냈다.

“야, 종안이 너 제법이다. 북한에서 놀던 가닥이냐?”

뒤통수에 꽂히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실을 한번 가면 십 분이 걸리는 창용이가 일 분도 되지 않아 창고 문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너 제법 간도 크다.”

“…….”

“어떻게 할까. 모든 걸 사장님한테 말해버릴까. 사모님이 알면 아주 실망할 텐데 말야. 안 그래?”

창용의 말에 나는 움찔했다.

“…….”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 있지. 네가 지금까지 훔친 것보다 더 근사하고 비싼 모델도 갖게 해줄 수 있어.”

창용은 눈을 번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그19기 외에도 플라 모델 여러 개를 빼냈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 미그19기를 빼낸 일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자 나는 대범해졌고 요령도 생겼다. 삼일 뒤 두 번째로 헬리콥터를 빼냈다. 그런 뒤로는 삼사일 간격으로 틈을 엿보았다가 장갑차나 항공모함 따위를 빼냈다. 그저께엔 잠수함도 손에 넣었다. 나를 믿어준 사모님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되, 하며 손을 거두려다 가도 플라 모델을 갖고 싶은 걸 어쩔 수 없었다. 고가로 소량 매입해 들여온 플라 모델은 빤하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지만 저가품목들은 비교적 빼내기 쉬웠다. 방법은 간단했다. 잘 팔리지 않는 것 위주로, 상자는 그대로 둔 채 속 내용물만 표나지 않게 빼내는 것이다. 빼낸 플라 모델은 속 비닐 포장째 쓰레기봉투에 담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장소에 둔다. 그런 다음 퇴근할 때 집에 가져가 조립을 했다. 이 창고에 재고품으로 쌓여 있는 것 중에는 속에 다른 것들로 채워진 플라 모델 상자들이 섞여 있다. 그런 방식으로 슬쩍한 모델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무슨 말이네? 더 근사하고 비싼 거이?”

“이런 거지 좁밥 쥐새끼 같은 놈. 쥐새끼처럼 남들 찾지도 않는 싸구려 모델들만 창고 구석에서 살살 속 파먹고 말야. 꿈을 좀 크고 높게 가져 봐라. 쨔샤.”

“그러니끼니 내래 이제 어드러케 하면 된다는 기야. 네가 원하는 거이 뭐이가?”

“차차 알게 될 거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불이 켜져 있다. 수영 형이 들어와 있었다. 주방 벽에 붙은 작은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형은 불콰해진 얼굴로 내게 밥은 먹고 다니냐, 하며 명랑한 표정을 지었다. 밤늦게 어딜 쏘다니다 왔느냐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억지스런 미소는 금방이라도 금이 가 부서질 듯 위태했다. 수영 형의 그 모습에 나는 명치 부근이 꽉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식탁 맞은 편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한밤중의 주방에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벽시계의 초침소리만 있는 듯했다.

며칠 전이었다. 수영 형은 출근하려고 운동화를 신다말고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배가 아픈지 식탁 위에 야채트럭 시동키와 지갑을 던져놓고 화장실에 급히 들어갔다. 나는 형의 반지갑을 열었다. 몇 장의 지폐가 끼워져 있는 칸 위로 알록달록 스티커커플사진이 꽂혀있었다. 혜원누나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용돈이 떨어져 만 원짜리 몇 장 빼내려던 생각이 싹 달아났다. 형은 헤어진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그 사진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갑을 원래대로 두고 개수대 앞에 서서 밥그릇을 씻는 척했다. 지갑 속의 사진을 보기 전엔 새벽까지 몸을 혹사하며 일하는 형을 지독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지금의 형은 지독하기는커녕 움켜쥐면 금방이라도 몸뚱어리 전체가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내가 수영 형과 동거를 하게 된 건 양말 두 켤레 훔친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깟 걸로 경찰 아저씨의 손에 뒷덜미를 잡힌 건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지갑이나 좀 더 쓸 만한 물건을 슬쩍하던 거에 비하면 시시한 거였다. 물론 처음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댔던 건 아니었다.

나는 하나원을 수료하고 쉼터에서 생활했다.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쉼터를 운영하는 아저씨한테 가진 돈을 뜯겼고 툭 하면 휘둘러대는 주먹질에 시달렸다. 내가 그런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말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물으면 쉼터 아저씨는 내가 되먹지 못하고 불량해서 버릇을 고쳐주는 거라고 말했다. 물었던 사람은 그뿐 쉼터 아저씨의 폭행을 묵인해버렸다. 견디다 못해 뛰쳐나왔지만 낯선 이곳 어디에도 갈 곳은 없었다. 피씨 방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피씨 방에서 손님의 시계가 없어진 일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피씨 방에서 열 시간 넘게 게임에 열중하던 손님은 빨간 눈을 들이대며 언성을 높였다. 다짜고짜 시계가 없어졌다며 나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손님들도 주인아저씨도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일한 대가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겨났다. 가는 곳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얻어먹거나 훔치는 일은 아침에 눈떠 배가 고프면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시시한 양말 두 켤레에 내 뒷덜미를 움켜잡은 경사 아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수영 형에게 나를 보냈다.

“이 녀석 자네가 데리고 있어보지 않겠나.”

수영 형은 경사 아저씨 옆에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던 나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거지새끼를 눈앞에 보듯 코를 막으며 웃기도 했다. 기름기로 눌어붙은 더벅머리에 시커먼 얼굴이었고 옷도 거지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 고향은 어디네?”

고향을 묻는 말로 수영 형은 나를 데리고 있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자신도 나처럼 나 홀로 탈북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어른스런 말투로 말했다. 경사 아저씨는 수영 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게 말했다.

“지난해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졸업한 형이니까 너도 형의 반만이라도 닮도록 노력하면 여기서 잘 살 수 있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트럭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힘든 시기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일 것이고, 건실하다는 사람도 허우적대는 현실에서 그런 형을 백 퍼센트 닮아봤자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던 중인데 형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잘 지내보자.”

한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형은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에 간섭을 했다.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머릿속에서부터 밥 먹는 습관까지 철저히 이곳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결혼하기로 했다던 혜원 누나와 헤어진 뒤로 간섭은 더 했다. 짜증이 났다. 그래도 오갈 데 없는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충고까지 해준 사람은 수영 형이 처음이었다. 나는 형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초점 잃은 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무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장 부부에게 창용이가 무슨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쫓기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 나이 아직 열여섯이라는 생각과 이미 열여섯이라는 느낌이 뒤섞여서 막연할 뿐이었다. 수영 형한테 얹혀살면서 손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용돈을 벌어 쓸 수 있는데다, 플라 모델을 항상 볼 수 있는 플라 드림만큼 최상의 일자리는 없었다. 창용은 사장 부부가 부를 때마다 깜짝 놀라는 내 얼굴을 곁눈질하며 웃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골목 모퉁이에서 창용이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며 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녀석은 이제야 내게 원하는 걸 말하려는 심산인가.’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창용은 공원의 공중화장실 옆 벤치로 나를 끌고 갔다.

“거기 앉아.”

나는 머뭇거리며 벤치에 앉았다. 공중화장실 뒤쪽에서 필록이를 비롯해 다섯 명의 녀석들이 건들거리며 걸어 나왔다. 플라 드림에 자주 오는 마니아들이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필록이가 말했다.

“어서 와라, 종안이.”

나는 다섯 명의 녀석들을 차례로 쳐다보다가 필록이를 응시했다.

“내가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널 데려오라고 부탁했지.”

“나한테 무슨 말?”

“너 슬쩍하는 솜씨가 좋다며?”

“……?”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창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쥐새끼처럼 여러 번 슬쩍했을텐데 조립한 거 구경 좀 하자. 새꺄. 우리 모임에 한번 갖고 나와 봐. 우리 모임은 사실 뭐 그런 너절한 모델은 별로 취급하진 않지만 이제 너도 모임에 끼워줄까 생각해.”

“그래, 그거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네?”

“또 있어. 아주 중요한. 너의 협조가 필요한 멋진 계획에 대해서.”

“뭐이가?”

“에이 짜식, 종안이 인마 얼굴 풀어. 이제부터 넌 우리 모임 멤버가 된 거야. 창용이가 네 얘기 많이 하더라.”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창용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플라 모델 동호회 일주년 모임을 크게 할 생각이다. 새로 회원가입도 받고, 기존회원은 각자 최근에 조립한 근사한 모델을 선보이고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도 하고 그럴 생각이거든. 그래서 창용이랑 이야기했는데. 창용이가 아주 멋진 정보를 주었어. 내일모레 플라 드림에 새로 입고되는 것들이 아주 빵빵한 거라고 말야.”

창용은 벤치 등받이에 걸터앉았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내가 목록을 대충 봤는데 이야, 정말 대단한 것들이야. 여기 봐봐. 우리 마니아 기존회원들이 들으면 눈이 확 돌아갈 것들이더라고.”

필록이가 내 옆에 붙어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씨, 나 엄마한테 신용카드 압수당해서 살 수가 없잖아. 게다가 상당히 고가라 마니아회원들이 모두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이번 일은 스릴 있고 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번 일이라니?”

“이 자식 알면서 능청떨기는. 털자는 얘기야 인마. 너도 당연히 우리 계획에 동참해야 하고.”

“뭐이! 내래 아이 하겠오.”

“무슨 소리. 네가 빠지면 안 되지. 너처럼 솜씨 좋은 녀석이 동참해줘야지 우리 계획이 성사되는 거라고. 만약 계속 거부하면 네가 지금까지 창고에서 훔친 사실 다 불어버린다. 어떻게 할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디데이는 내일모레야. 입고날짜가 사모님이 아니라 사장새끼가 있는 날에 맞춰진 건 우리에겐 굉장한 기회라고.”

창용은 눈을 번득이며 더 없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장 부부는 번갈아 저녁 이후 가게에 남아 뒷마무리를 했다. 사모님이 남는 날은 하도 꼼꼼하게 문단속이며 물건정리를 하게 해서 한눈팔 사이가 없지만 사장님이 남는 날은 매사가 헐거웠다.

“입고목록 빼내다가 사장새끼 수첩을 슬쩍 들쳤는데 말야, 수첩 모퉁이에 갈겨쓴 메모가 있더라. 사모님 없을 때 간드러진 목소리로 전화받으면서 뭔가 메모하더니만 그게 그날 저녁 요거 만나는 시간이랑 장소더라고.”

창용은 실눈을 떠가며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필록이가 킥킥거리며 내게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럴 필요 없다니까. 넌 그냥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 일도 없어. 너도 이 목록에서 네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데 뭘 망설이냐.”

“내가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필록이가 내 눈 앞에 종이를 들이댔다. 창용은 눈짓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내가 사장새끼 몰래 복사 뜨느라고 십년감수 했잖냐. 이번 것들 짱으로 좋아. 자 봐.”

사장님이 갖고 있던 걸 난 보지도 못했는데 창용은 언제 빼내서 복사까지 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필록이가 내 눈앞에 들이댄 종이를 손에 쥐어들고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탐나는 것들이었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그19기가 끼어 있다니. 게다가 무선조종으로 하늘을 나는 모델이었다. 쇼윈도 진열대에 이십 프로 세일딱지가 붙은 날지 못하는 싸구려 미그19기와 달랐다. 필록은 내 손에서 종이를 홱 낚아챘다.

“인마. 이번에 제대로 뽀다구 나는 걸로 가질 수 있다니까.”

필록의 말이 끝나자 창용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종안이 네가 정말 우리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이번 일을 함께하느냐 마냐에 달렸어.”

나는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필록이의 말을 떠올렸다.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데 뭘 망설이냐’

마뜩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걸으면서 거리 여기저기에 시선을 대어보았다. 아저씨는 어디서 배회하고 있을까. 만나면 날 수 있는 미그19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리모컨을 아저씨 손에 쥐어 줄 테니 실컷 날려보라고 말해줄 생각이다.


이틀 뒤 손님이 뜸한 시간을 틈타 고향 빵집 할아버지에게 갔다.

“어서 오너라, 얘야. 빵 하나 주련?”

할아버지가 주는 빵은 옥수수 빵이었다. 할아버지가 개발한 것으로 다른 빵집에서는 낼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있었다. 이 동네에서 고향 빵집의 옥수수 빵은 인기품목이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어딘가에 숨겨둔 고향의 냄새를 옥수수 빵에 솔솔 뿌려 놓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는 길 건너 파리바게트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고급스런 빵집보다 손님이 많을 리가 없었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맛은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아내와 아들 둘을 북에 두고 왔다고 했다.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할아버지는 우울해했다. 언젠가 빵집 안에 비치된 TV 앞에 앉아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 우시는 기야요, 하고 물으면 늙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법이라며 웃곤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아직 연락도 없고 생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옥수수 빵을 만드는 할머니가 귀띔해 준 말이었다. 내가 빵집에 들를 때마다 반겨주는 이유는 내가 북에서 왔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북한 억양이 튀어나올까 봐 조바심치지 않는다.

“아닙네다, 빵 먹으로 온 거이 아니고요. 혹시 나발 아저씨 오늘 보셨습네까?”

“에휴, 그 양반 술 좀 작작 마셔야 할 것인데. 오늘 오전에 보긴 봤다. 말도 마라. 술이 잔뜩 취해설랑 구걸한답시고 동네 애 엄마한테 다가가서 놀라게 했지 뭐냐. 대낮에 길거리에서 큰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다 한마디 하더라.”

나는 한숨이 나왔다. 탈북해서 부랑자로 전락한 나발 아저씨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 TV뉴스에서 탈북자가 강간을 했네, 살인을 했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나발 아저씨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내 경우도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언젠가는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를 위험인물인 것만 같았다. 따가운 시선은 가시가 되어 몸 어딘가에 지금도 박혀있는지 뭉근히 아려왔다. 나발 아저씨를 두고 안 좋은 소리가 나돈다는 얘길 들으니 몸 여기저기가 더 쑤시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북도 남도 아닌 나만의 요새 속에 숨어들어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게 최고다.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정찰기를 띄워 요새를 지키는 상상 말이다.

아랍테러단체들이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인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문득 그들처럼 복면을 한 내가 인질들을 나의 요새에 끌고 와 무언가를 요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남한을 상대로 한 인질극에서 나는 탈북자들을 차별대우하지 말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수영형 일만 하더라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탁탁 막혀온다. 탈북자라고 여기저기서 외면당하니까 형은 괜히 나한테 화풀이하느라 잔소리를 해댔다. 석 달 전만 해도 혜원누나와 찍은 스티커커플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행복해했었던 형이었다. 수영형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안 혜원누나 부모가 헤어질 것을 강요하기 전까지 말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 대문을 열려는데 안에서 톤이 높은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큼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겠죠? 안 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겁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밖에서 나는 형의 목소리가 힘겹게 꺼져가는 것을 듣고 말았다. 형은 중년여자로부터 다짐받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근래 형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무튼 범죄자나 이방인 대하는 듯한 시선만 아니라면 좋을 것 같다. 북한에도 요구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어이없는 건 거긴 민간인 인질극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이미 둑 무너지듯 탈북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인질 협상이 긴장을 줄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닌 거다. 북도 싫고, 그렇다고 남쪽에도 정붙이지 못한다면 선택은 어디일까. 하긴 나처럼 요새라도 없으면 숨 쉴 수 있는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요새는 없는 것이 없는 다락방이다. 항공모함, 탱크, 잠수함에서 전투기 그리고 왕년 미그19기 조종사도 있다. 다락방에서 나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탱크와 전투기가 촛불의 일렁이는 빛에 흔들려 실제의 크기로 커지는 느낌 말이다. 웅장한 기계음을 발하며 움직여 줄 것 같은 플라 모델들. 눈을 감으면 나발 아저씨가 올라탈 수 있을 만큼 그것들은 커졌다. 어쩌면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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