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님, 서점에서 가슴 설레는군요.
그 마음 깊이 이해합니다.
저는 서점에서 서가를 쳐다볼때면 가슴 뿌듯한 부자가 된듯 하더이다.
비록 내 책은 아니고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저 책들을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던데.....
'이때부터 인간은 공간을 걸어간 날들의 수로써 측량했다.
거리란 얼마간의 시간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아끼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비축해두지 않았다. '
읽고서 위에서 처럼 좋은 글 인용해 주시오면....
좋은 책을 읽게 된 님께 축하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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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를 쓴 사내
문신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마다
빨간 모자를 쓴 사내, 제 발 밑에 구름 떠 있는 줄 모르고
휘이익- 휘파람을 불었다 옆구리에 걸어놓은 물동이에서
비눗방울 몇 개 비명처럼 날아오르고
그래도 믿는 건
하늘 어디쯤 매달린 동아줄 한 가득
그는
먼지 앉은 유리창을 힘주어 닦는다
언제나 아래로만 내려가는 삶
더러는 윤기 나는 생활을 꿈꾸기도 하면서 그 사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닦는다
세상의 얼룩은 찌들어만 가는데
삶은 왜 이렇게 가벼워지기만 하는 걸까
닦고 또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 얼굴이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간신히 매달려 있는 낯선 사내 울 듯 말 듯
그 사내 서둘러 마른걸레로 훔쳐낸다
누가 그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을까
가끔씩 허리를 묶은 동아줄을 확인하면서···· 제 삶을 확인하면서
그 사내
비눗방울 같은 휘파람을 분다
또 한번 줄을 풀고 내려가면
거기에도 흐린 얼굴 하나 떠 있을 거야
흔들리면서 그 사내 바람이 된다
걸레질을 멈추고
잠깐 생각의 끈을 놓았을 뿐인데
빨간 모자를 쓴 사내
어느덧 구름 위에 떠서···· 휘파람처럼 메아리 없이 떠서
그의 삶처럼 습기 많은 먹구름을 닦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