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비둘기가
나는 1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보러 가는데, 그곳은 차로 20여 분 가야 하는 중형마트다. 마트 앞마당이 곧 주차장이어서 차를 대기도 쉽고 또 별로 붐비지도 않고 비교적 싼 가격에 신선 채소가 많이 있는 곳이다.
얼마 전 그 마트에 들르니 출입문 가까운 곳에 석 대의 주차공간이 비어 있었다. 차를 주차선 안에 대려고 하는데 그곳에 비둘기 세 마리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차가 가까이 가도 날아갈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멈칫거리면서 겨우 그들을 피해 한쪽 주차선 안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세 비둘기 중 한 마리는 곧 날아가 버렸지만, 다른 두 마리는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장난스럽게 비둘기에게 말을 걸었다. “차가 오면 위험한데 왜 날아가지도 않니?”
중얼거리면서 보니 한 비둘기가 외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서 있었다. 걷지 못하는 그 비둘기는 힘을 받을 수 있다면 날고 싶어하는 듯 날개를 조금씩 움찔거렸다. 하지만 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나는 놀라서 ‘어떡하나, 어떡하나’를 연발했다. 그때, 조금 전에 날아간 그 비둘기인지 아니면 다른 비둘기인지는 모르지만, 한 비둘기가 다시 날아와 다친 비둘기 주위에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비둘기 두 마리는 성치 못한 비둘기 곁에서 서로 힘을 보태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사태를 파악한 그 아저씨도 나와 같이 한참을 서서 걱정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갈 길을 가고 말았다. 나 역시 어쩔 방도를 알지 못해서 걱정스런 얼굴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 출입문 옆쪽의 화장품 코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아가씨가 이 일을 익히 알고 있는 듯, 내가 들어가자 그 비둘기의 다친 사연을 말해주었다. 전깃줄에 걸려서 한쪽 다리가 잘렸다는 것, 아이들이 살려내서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는 것, 수의사가 치료비도 받지 않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는 것 등이다. 그 다친 비둘기는 자주 마트 주차장으로 날아오는데 그녀와 마트 내의 다른 직원들이 곡류 따위의 모이를 조금씩 준다는 것이다. 그녀와 나는 한마음으로 ‘너무 안타깝다’를 연발했다.
서둘러 장을 보고 나오니, 그 비둘기는 날아가고 다른 차가 그 자리에 주차해 있었다. ‘겨우 날아갔나 보다.’ 나는 안심하면서 식료품을 차에 실었다. 차 시동을 켜면서 옆 좌석에 놓여 있던 뻥튀기 과자를 힐끗 보았다. ‘비둘기는 이런 것도 잘 먹을 텐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걸 그 아가씨에게 건넬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나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차를 돌려 다시 그 아가씨에게로 갈까 생각했지만 차는 이미 신천대로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내일 그쪽 방면으로 나간다면 마트에 들렀다 가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 일 때문에 나가지는 못했다. 가끔씩 그 비둘기가 생각났지만 어떤 날은 미세먼지가 아주 심해서, 또 어떤 날은 내 행동 반경이 집 근처여서 결국 1주일 후에나 그곳에 가는 일이 가능해졌다.
나는 작정하고 집안에 있는 강냉이와 건빵 등을 챙겨서 그 마트에 갔다. 이번에는 꼭 장을 봐야 하는 건 아니었고 다만 그쪽 방면으로 가는 길이었다. 주차 후에 곧장 그 아가씨 매장으로 갔다. 비둘기가 잘 있나를 묻고 나서 ‘이것도 모이로 주면 어떻겠느냐’ 하고 뻥튀기 과자류를 내밀었다. 그 아가씨는 나의 관심을 의아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난처한 듯이 ‘비둘기가 오기는 오는데 이쪽으로 날아오면 자기네들이 알아서 모이를 주고 있다’면서 내 모이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꼭 주고 싶으면 놔두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비둘기가 오면 꼭 좀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내 집에 손님이 왔다. 그분은 이틀 전 동성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맞은 편 도로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버스에 치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다른 비둘기도 여럿이 같이 인도에 있어서 자연스레 눈길을 건너편 쪽에 두고 있던 때였다고 했다. 나는 흠칫 놀랐다. 다리가 한쪽 없는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들과 달리 아스팔트와 인도 사이의 경계선 턱을 뛰어 오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평면인 아스팔트 쪽으로 몸을 조금 움직였나 보았다. 하지만 정차했던 버스가 출발하고 나자, 현장의 그 비둘기는 몸통과 머리가 따로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걱정하던 비둘기가 거기까지 날아간 그 비둘기임을 알아챘다. 내가 그 비둘기를 만난 일에 대해 그녀에게 얘기하자, 그녀는 전깃줄에 발이 감기는 비둘기는 흔히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비둘기가 바로 그 비둘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북구에서 중구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기도 하지만 비둘기는 얼마든지 공중을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내 집에 온 손님을 통해 듣게 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종합하면 그 비둘기는 수요일 아침 8시 40분경에 버스에 치여 죽고 말았다. 나는 목요일 낮 한 시경에 그 마트에 들러 뻥튀기 모이를 매장 아가씨에게 부탁했다. 그 아가씨가 ‘오늘은 아직 못 봤는데’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금요일 오전에 내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서 비보를 들은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 가엾은 것이 한쪽 발로 도움닫기를 할 수 없어서 날갯죽지만 계속 움찔거렸을 뿐, 날아가려고 애쓰는 중이었을 텐데……. 버스 기사는 대수롭지 않게 바람을 일으키면서 달려와 도로 쪽에 있는 그 비둘기를 덮친 것인가 보았다.
나는 『동물들도 말한다(They Say)』라는 최재천 선생의 책을 안 읽었지만 그 말을 확신한다. 친구 비둘기가 그 진땀 흘리는 비둘기 가까이에서 보초를 서던 광경을 보면, 말도 못하는 것들끼리의 교감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싶다. 날아갔다 돌아온 그 비둘기는 연락병이었을 것이다. 친구의 아픈 상태를 파악하고 동료들에게 ‘아직 괜찮다’ 등을 수시로 보고해 주는 역할 말이다.
나의 게으름 때문에 그 비둘기에게 작은 모이라도 건네지 못했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생각만으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 나는 늘 이렇게 한 발 늦다.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다가 말만 번지르르하다. 버스 기사를 잠시 원망했다. 뒷얘기지만 버스가 정류장에 섰을 때, 앞쪽에서 손짓하며 뛰어오는 어느 장애인 할아버지를 그 버스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떠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는 그 할아버지를 태우려고 버스가 기다렸다면 어쩌면 비둘기도 살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누가 장례를 치러 주었을까? 저녁 어둠 속에서 전깃불 켜기가 민망했다.
ㅡ naive Z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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