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걍 7
⸺ 전 괜찮아요
김익두
당신이 그리우면,
저처럼 허름한 벗과 주막에 우두머니 앉아,
푸른 전나무 위에
내리는 눈송일,
걍,
우두머어니
바라보면
돼요.
그 늘푸른 빛깔의 희망과
그 순백의
절망들을,
걍,
우두머어니,
함께,
바라보면
돼요.
⸺시집 『사랑혀유, 걍』 2020.08
***
사회적 거리
류인서
허공의 육체성을 공유하는 어린 구름과
실시간 공중을 배웅하는 나비의 순간이 만난다
빈칸 많은 내 이력서의 가벼움과
종소리에 쫓겨 밀쳐둔 수학답안지 여백들이 사적으로 만난다
지우기와 그리기를 반복하는 물그림판 화폭처럼
불 없는 24시 편의점처럼
얼룩에서 출발하는 관계들이 있었다
닦는다가 아닌 닫는다는 말을 집어들 때
오늘이 오늘의 방식으로 오답노트를 고친다
남은 숲은 사라진 숲,
망원경 너머 보이지 않는 우주는 우주 저쪽에서
지거나 피는 일로 분주하다
거리두기 좋은 이 거리에서 오늘은
혀로 소리를 듣는 뱀처럼 온몸으로 골똘하다가
난시의 왼쪽 창을 열었다가 또 닫았다가
⸺월간 《현대시》 202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