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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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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작품

이재영 돌샘

나의 첫 직장은 농촌지도소로 발령지가 고향이다. 농과대학을 나왔어도 농화학 전공이라 농사지식과 경험은 농민보다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무척 어리석어 꾀도, 요령도 없어 엄청 고생을 했다. 첫 작품은 시험제배이니 한적한 곳에 시험재배를 했어야 하리라. 그런데도 가을채소밭을 사람들이 빈번히 왕래하는 한길 옆에 시작한 것부터 잘 못이었다.
대구 중앙종묘사에서 그 당시 최우수신품종 결구배추인 중앙교배1호를 샀다. 기술도 없으면서 품종만 믿고 시작했으니 얼마나 무지한 선택인가? 길 건너 옆 밭은 일재 때 농업기수(현 농촌지도공무원)를 지낸 나의 동창생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밭이다. 그분은 경험이 풍부한 분으로 배추씨앗을 서울 흥농종묘사에서 신품종 부람3호를 구입하여 씨앗을 한 곳에 10포기씩 심어 묘가 잘 났다. 그러나 나는 비온 뒤 한 구덩이에 씨앗 세알을 흩어 심었다. 그러나 대부분 오다가다 한 포기만 나고 두 세포기가 난 곳은 극히 드물었다. 비오는 날 모종을 하니 겨우 빈자리가 메워졌다.
그러나 연약하여 병충해가 심하고 활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친구네 배추는 여러 포기가 경쟁하듯 잘 자랐다. 속이 찰 무렵 튼튼한 한 포기만 남기고 나물이 귀한 때 팔았다. 씨앗 값을 제하고도 수익이 상당히 생겼다. 그 분은 경윤과 기술로 농사를 지었다. 지도인 나는 씨도 못 새워 쩔쩔매니 이게 무슨 망신인가? 친구네 밭 채소는 보란 듯이 잘 자라 속이 차려고 한다. 친구의 아버지는 신이 나서 매일 밭에 나와 행인들에게 우리 밭을 가리키며 저것이 농촌지도소 아무개 밭이라 선전했다. 그리고는 그와 대조적인 자기 밭을 가리키며 자랑을 일삼았다. 그러지 않아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처지인데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너무도 야속했다.
그분은 우리 집안 문객으로 나의 아버지와도 친한 분이라 나의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퇴근하니 아버지가 나를 불러 앉히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평생을 농사지어도 너 같이 농사지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농촌지도자라 하면서 채소농사하나도 못 지으면서 무슨 지도를 하겠다는 거냐? 네 말 듣고 농사짓다가는 농가가 폐농하겠다.” 하시며 눈에 눈물이 쑥 빠지도록 질책하시더니, 내일 당장 사표 쓰고 나에게 배워라 하신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아직은 시일이 남았다. 아버지께 ‘죄송합니다. 추수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도 우리배추가 저모양이라면 미련 없이 사표를 쓰겠습니다.’ 했더니 아버지의 노여움이 누그러지셨다. 나는 이튼 날부터 퇴근하고 돌아오면 책을 보며 채소밭에 사활을 걸었다. 마르기 전에 밭을 매어 토양을 부드럽게 하고, 벌래가 나기 전에 농약을 처서 병충해를 예방했다. 비료도 삼요소와 규산질 비료까지 기비로 주었더니. 활착한 묘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이 찰 때 까지는 남은 시일이 촉박하다. 궁하면 통한다 하더니, 극한상황에서 사람은 깨닫는 것 같다. 식물생리시간에 배운 요소엽면시비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바로 이 것이다’ 했지만 엽면시비는 농도가 0.3%를 정확히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젠 사활을 걸고 해보는 수밖에... ... 비료의 양은 정확히 계산하였지만 천칭이 없어 가정용저울로 비료를 대충 달아 일정한 물에 녹여 농도를 맞추었다. 안심할 수 없어서 그 물을 분무기로 채소 몇 포기에 시험 살포했다. 농도가 진하면 하얗게 마르나 이상이 없다. 일요일마다 이렇게 하여 이슬이 마른 후 채소밭에 요소엽면시비를 실시했다. 엽면시비는 잎 뒷면에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나 전신에 실시했다.
그 때부터 비가 내린 것 같이 하루가 다르게 배추가 우후죽순처럼 쑥쑥 자라 속이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위가 오기 전에 속이 다 찰는지 조마조마 했다. 천우신조인가 그해는 추위가 늦게 왔다. 한 달이 지나니 속이 꽉 차서 올라서도 부서지지 않았다. 군내에서도 최상품 결구배추가 되었다. 보기 좋고 맛도 최상이었다. 최고시세를 주겠다며 사자는 상인들이 쇄도했다.
친구네 배추는 우리배추보다 두 배로 포기를 크게 안았지만 추수할 때도 속이 반도 차지 않아서 친구의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그래도 그분은 날마다 밭에 나와 속이차지 않는 배추가 안타까운 듯 바라보면서 행인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로 우리배추를 찬양했다. “이 밭은 농촌지도 공무원이 가꾼 배추입니다. 초창기에는 군내에서도 가장 꼴등이 던 것이 이잰 일등배추가 되었습니다.” 하고 기술혁신에 감탄한다며 그분은 나를 극찬 하였다고 한다.
나는 무명인에서 유명인으로 알려졌지만 친구의 아버지가 측은하게 보여 기쁘지 않았다. 그때 극한상황을 맞아 고생은 했으나 그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쳤다. 아버지와 주민들로부터 칭찬과 신임을 두터이 받아 지도사업에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때 나의 고생이 내 인생의 최대 보람되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처음에는 야속하였으나 나의 성공은 바로 그분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감사하여 몇 번이나 찾아뵈옵고 위로를 해 드렸다. 그분은 그 때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배추농사를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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