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멋지다고, 얼마 전 장하빈 선생님의 말씀도 그러했지만, 깊이 있는 제목이라 호감도가 높았습니다.
운문이라 하면 운율이나 정형시 같은 짜인 느낌을 주는데
산문이라는 말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거나 의도하지 않게 헝클어져도 괜찮은
그런 여유와 풍성을 주는 제목이라 하십니다.
“산문”에다가 “-的”을 붙이는 시인의 감성도 시어를 다루는 품격을 보게 합니다.
1연에서 사물은 낡았고 사람은 늙었지만, 우리 삶의 시간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긍정의 힘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2연의 “횡단보도” 등의 일상이 1연과 조금 건너뛰어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 연 자체에서는 “반 쯤 걸린 선반위의 그릇 같다는” 고백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 인간으로 사는 일의 고단함, 나아가 실존적인 삶의 모습을 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3연과 4연은 붙였으면 좋겠다는 말씀(교수님,서강님),
“끝말잇기 같은 아슬아슬한 며칠을”에서 아슬아슬한 며칠을/데리고 종일 걷“기에는 좀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말씀.
어법에 걸린다는 말씀, 그래서 ”며칠“ 대신에 ‘저녁’이라 고치면 막연한 느낌이 줄고 구체적이 되지 않겠나(서강님) 하는 조언.
5연에서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는 사추기, 깊이 있는 해석을 끌어내셔서 공감 폭발.
6연, “죽음 뒤에는 또 삶이 있다고”라는 말은 맞긴 하지만
사색 속에서 끌어낸 앞 연의 의미와는 달리
쉽게 하는 말로, 말의 자동차에 적당히 올라탄 느낌이라는 말씀,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비유나 상징으로써 은근하게 일러주면 좋겠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시간의 긴 그림자가/마중 나와 주었다”는 따뜻한 해석이 하이디님의 삶의 열매 같아서, 독자들도 푸근해졌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