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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건너는 세상 / 이향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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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건너는 세상

/ 이향아


잘난 남자들이 남자를 벗어던지고 시시한 여자가 되려고 한다
여자보다 작은 계집애가 되려고 한다
계집애가 되어 입술연지 붉게 칠하면 그 몸으로 편히 살 수 있다고
여자가 되면 세상물정 몰라도 쉽다고 누가 가르치나보다
제 집에선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르면서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건지려던 옛날의 영웅
태평하게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나 내던 한심한 선비
그들은 오래 전에 죽고 없다
먼 바다 파도와 싸워 태산 같은 물고기를 잡아
앙상한 뼈만 싣고 돌아온 남자
그 우렁찬 남자도 요즘 소설에는 없다
가늘고 길게 비겁해도 좋아, 오래 살아남으려고 한다
살아남는 일 중요하지 아암, 죽지는 말아야지
세상이 갈수록 잘난 남자들의 기를 죽여서
나는 내 잘난 아들에게, 내 아들의 잘난 아들과 그 아들의 잘난 아들에게
키 큰 쑥대밭길 숨어 걷는 법이나 가르치란 말인가
내 아들이 건너야 할 걱정스러운 세상
내 아들의 청춘이 걱정스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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