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아무도 읽지 않을 건데 시를 쓰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에 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시를 쓰기엔 역부족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지고 있다
가을 깊어지자 연약한 것들로 채워진 내면 세계가 몸 밖으로 드러난다
부끄러워 지다가 화가 나다가 절망이 누수처럼 스며 나온다
수도사업소에서 나온 사람은 계량기를 곁눈질로 보더니 이건 누수전문가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와 비 전문가로 나뉘는 세상에서 홀로 전문이 없다
남들 다 전문이 되고 난 즈음에 뒤늦게 전문을 찾는데는 천성이 게으른 탓이다
들었다 놓았다 다시 흘겨보는 종이 위에 깜장색 펜이 병자처럼 널부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