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 송편
정해영
추석 전날 송편을 만들었다 깨와 설탕, 땅콩과 팥을 버무려 속을 넣었다
반죽을 작은 종지처럼 매끈히 돌려 파서 속을 소복이 채워 오무리고 손가락 마디로 흰 건반을 꾸욱 눌러, 둥근 달과 반달을 만들었다
솔잎 위에 쪄낸 송편이 터져서 흘러내린 속이 옆을 더럽힐 때가 있었다
어릴 적 *스프링 언어 교정 학원 원장님이 ‘여러분의 노트는 언 말과 찢어진 말을 싸는 보자기’ 라시던 말이 떠올라 터진 송편은 찢어진 말처럼 말하기 전에 지저분해 졌다
한 입 베어 물면 말랑한 겉이 터져, 속이 천천히 마중 나오는 달 송편의 맛이 아니라 터진 송편은 뜻이 새어버린 말과 같아 맛이 없었다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어 얼거나 찢어진 말을 노트에 적어 수없이 입모양을 연습 했던 시절, 송편 반죽의 가장자리를 오무렸다 폈다를 쥐가 나도록 반복하는 동안 매끈한 둥근 달이 손 안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천천히 밀려 왔다 가곤 하였다
*정용준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서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