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에는 고추도 빻아주고 미숫가루도 갈아서 파는 고추집이 있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단골이 되었으니 올해로 14년이 되었다.
아줌마는 뽀오얀 피부가 고왔으며 늘 화장을 하고 있었고, 가게도 늘 깨끗이 정돈 되어있고 청결하였다.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추를 빻는 동안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하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이웃에 사는 새댁이 어디서 고추가루를 사 먹느냐고 물어서 그 집을 소개해 준적도 있다.
김치를 담가 아이들에게 나눠주다보니, 우리는 고추가루를 식구수에 비해 많이 먹는 편이다.
햇고추로 김치를 담그기 위해 고추 5근을 빻아 왔다. 배추 포기수에 맞는 고추가루양을 가늠하기 위해 고추가루를 저울에 얹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고추가루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는 부족한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아줌마를 의심 하기엔 인상이 너무 좋아 고의는 아니겠지 고추를 빻으려면 꼭지를 떼내야 하니 저울을 조금 모자라게 줘야 하는 모양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아줌마를 변명해 주며 그 가게를 계속 이용 하였다.
나는 아줌마가 멋대로 저울을 속여서 서로 곤란한 일이 생길까봐 우리집에 음식을 계량할수 있는 저울이 있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 한적도 있었다.
나는 고추가루를 들고 아줌마를 찾아 갔다. 아줌마는 더러 그런일을 겪어 봤는지 당황하지도 않고 말했다. 손님들이 양이 많을때는 아무 말이 없지만 부족 할때만 이야기를 한다고... 돈으로 내 줄까요? 고추가루로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현금으로 따지면 5000원 정도 밖에 안되니 아줌마가 하기에 따라서는 나는 없었던 일로 할수도 있었지만, 십수년 동안 다른 가게를 한번도 이용한적이 없는 나에게, 내가 고추가루를 들고가서 양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하면 아줌마가 너무 무안해서 몸둘바를 몰라하면 어떡하나 마음쓰며 찾아 간 나에게 아줌마가 한 행동은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아무래도 다음 부터는 다른 가게를 이용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