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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를 사랑한 남자/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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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화요일의 날은 찹니다.
우린 1주일 후에 전화로 만나게 되겠지요?
조르바가 calling을 시도하는 마지막 넷째주가 곧 오고 있습니다.
아래 목록에 올린 시도 그렇지만,
쉽게 읽히는 글들, 단문(單文)에 호감이 갑니다.
어떠신지요?
모두가 움츠러들고 코로나19만 창궐하고 있으니...



갈매기를 사랑한 남자/류시화


한 남자가 바닷가에 살았다. 그는 갈매기를 사랑해 날마다 갈매기들을 보러 해안으로 나갔다. 그가 나타나면 갈매기들이 춤을 추며 그에게로 날아왔다. 그의 앞과 뒤에서, 그리고 머리 위에서 그를 따르는 갈매기 무리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게 그는 매일 아침 갈매기들과 더불어 놀았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갈매기들과 사이좋게 노닌다고 들었다. 내일 바닷가에 나가면 한 마리만 잡아오거라. 나도 한번 갈매기와 놀아 보고 싶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남자는 갈매기를 한 마리 잡을 생각을 품고 바닷가로 갔다. 그러자 어찌된 일인지 갈매기들이 공중에서만 맴돌 뿐 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 <열자>에 나오는 우화이다. 열자는 이 이야기 끝에 '궁극의 말은 무언이고, 궁극의 행위는 행함이 없다.'라고 적었다. 진정한 말과 행위에는 에고가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다.

남자는 순수한 기쁨으로 갈매기들과 놀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목적과 의도가 생겨나자 갈매기들이 알아차리고 다가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노닐고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던 새들이었다. 그의 순수성이 새들을 끌어당겼었다. 갈매기들은 남자의 아버지가 한 말을 알지 못했지만 의도를 품자 남자의 파동이 달라졌다. 갈매기들이 그 파동을 느끼고 그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세상 만물은 언어가 아니라 파동으로 교감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순수한 기쁨으로 할 때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다가온다. 사실 그것들이 다가온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단지 나의 의도와 에고가 그것들을 가로막은 것이다.

네팔 카트만두의 티베트 사원에서 열린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지도 강사인 티베트 승려가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입니다."
명상 수행에 관한 최고의 명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명상을 하지만, 그 추구가 오히려 명상의 순수한 기쁨을 방해하고 우리를 명상의 목적지인 '지금 이 순간'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내 작업실 마당에 있는 풀꽃들을 그렸었다. 연필로 그리고, 수채화 물감으로 약간의 색을 넣기도 했다. 새로 돋아난 풀도 그리고 마른 줄기도 그렸다. 계절마다 피어나고 스러지는 그것들을 그리면서 내 마음 안에서도 그것들이 피어나고 스러졌다. 그림 실력은 부족하지만 순수한 기쁨이었다.

그 그림들을 본 출판사 발행인이 그것들과 짧은 산문을 엮어 책을 출간하자고 제의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잘 그려야 한다는 의도와 책에 실어야 한다는 목적이 그림을 방해했다. 봉투 겉면이나 읽고 있던 책의 여백 등 아무 종이에나 그리던 것도 좋은 스케치북이 눈앞에 놓이면서 연필선이 인위적으로 흘렀다. 결국 그림 그리는 기쁨이 사라져 포기했다. 목적이 개입할수록 '놀이'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의도를 가진 사람, 의도를 가진 책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멀리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한 사람의 생은 시간 속에서 어떤 순수한 기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보여 주는 솔직한 기록이다. '더 많은 기쁨'은 '더 많은 현존'과 동의어다. 상처를 한 번에 치료하는 묘약은 없다. 작고 순수한 기쁨들로 금간 곳을 하나씩 채워 나가는 길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때 우리가 온전히 순수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사랑하면 새들이 날아온다.

[출처] 갈매기를 사랑한 남자|작성자 J A M O N G
https://blog.naver.com/choegeonhee/2213308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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