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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장을 열면(1월 3일 영남일보 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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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문화산책>의 필진으로 2개월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원고 6매 분량으로 매주 목요일에 나오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문장력 기르기 공부도 되어서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찬장을 열면

어릴 적, 학교에 다녀오면 부엌에 들어가 찬장부터 열어보았다. 딱히 배고프지 않아도 뭔가를 기대하며 찬장 속을 살펴보는 게 즐거웠다. 간식으로 튀겨놓은 누룽지나 찐고구마, 아버지를 위해 따로 놓인 반찬 속에 깃든 어머니의 알뜰하고 정성어린 마음을 엿보며 현모양처를 꿈꾸기도 했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찬장도 지역과 기능마다 특색이 있다.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경기도 찬장, 소박한 산골 맛이 나는 강원도 찬장, 나무 연장으로 다듬어져 거칠고도 비례미가 뛰어난 제주도 찬장, 뒤주 겸 찬장으로 만들어진 뒤주찬장 등이 그것이다. 부엌이나 대청마루에 놓이던 우리의 옛 찬장은 이제 골동품 가게나 소장가의 집에서 볼 수 있는 귀한 것이 되었다. 소장 가치가 있는 고풍스러운 찬장도 아름답지만, 연대가 오래되지 않아도 가족을 위한 주부의 손길로 닳고 아궁이 불에 한쪽 귀퉁이가 그을린 서민적인 찬장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지금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부엌을 차지한 시대라서 뒤로 물러나게 된 찬장이지만, 그 나름대로 또 다른 쓰임새가 있다. 차인들의 찻그릇이 담기기도 하고, 민속품 중에서도 찬장을 즐겨 모았던 나의 경우엔 그릇장뿐만 아니라 책장이나 옷장으로까지 활용된다. 어린 시절에 찬장 문을 열던 것같은 설렘은 없지만, 또 한 해가 열렸다.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삼초라 할 정도로 게으르고 실천력이 약한 나, 그래도 새해 첫날엔 눈을 반짝이며 한 해의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꿈이나 목표를 향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일, 그것은 곧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한 해를 큼직한 찬장이라 여긴다면 하루, 일주일, 한 달이라는 그릇 속에 무엇을 담아 보관할 것인가? 누가 열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찬장을 위해 나는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계획에 대한 실천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실천을 위한 꾸준한 노력과 인내는 계획한 일에 빛나는 열매를 맺게 해주는 필수 자양분이다.

2013년을 열어가는 여성 대통령에게도 어머니의 마음 같은 천심과 공약 실천의 정치를 기대하며, 나만이 아닌 누군가의 꿈을 위해서도 서로 힘이 되어 훗날 뒤돌아본 이 한 해가 모두에게 맛깔스러운 추억으로 가득한 찬장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박경화<소리꽃하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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