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까치집에서 물동이 진 여인이 병치되면서
그것이 한국의 여인상에 가깝다는 연상을 하게 합니다.
전 시인이 몇 년 전에 써서 극찬을 받은 바 있는 <보랏빛 근심>에 못지 않게
이 시도 하나의 그림처럼 그 이미지가 다가옵니다.
무명 치마 저고리 혹은 시골 아낙이 물동이 이고 가는 모습은
박수근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머리 꼭대기에 인 물동이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과
붉게 튼 여인의 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그것 역시 병치되면서 이 시를 살아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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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처럼/ 품어 키울 새끼 많았던 당신/ 물동이 이고 올 때만/ 울었던 것을/
울지 않은 척/울 수 있었던 것을"
이 연 역시 슬픔은 삼킬 때 더욱 실감이 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무가 흔들린다/ 당신의 속울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끝연도 모두 좋다고 입을 모았습니다만(코너리님 찬탄)
교수님의 화룡점정 같은 주문이 우리를 숙연케 했습니다.
이 연 자체는 완벽하게, 리얼리티가 있는 말이지만
"詩的이라는 것은 이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야~~~~!!!
<길고 수척한 팔다리가 걸어오고 있다> 등과 같이 이미지를 살리면 좋겠다는 말씀.
그것이 "詩的 그늘"을 거느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멋진 시를 더욱 멋있게 하는 그런 시적 분위기를
이 시를 통해 흡입하고파서, 우리는 서강님의 수려한 퇴고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놓칠 수 없는 교수님의 명언을 귀담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