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행복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어머님과 남편을 따라 잘 안 가던 교회에 갔더니 크리스마스라고 찹쌀떡을 4개씩 주었다. 우리집은 도합 12개.
집에 오자마자 나는 구름바다님 병문안 가는데 마음이 급해 점심준비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뭐가 귀찮거나 힘들면 물빛 핑계를 잘 대는데 우리집에서는 물빛이 대단한 단체인 줄 알고 감히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짜파게티를 삶았는데 바빠서 안 먹는다고 했던 내가 뛰어들어 더 많이 먹고 나왔다.
보리밥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찹쌀떡 4개는 복사집 아저씨께 드렸다.
외상이 오천원 있었는데 세상에나 나는 매일 그집 앞을 지나며 아저씨와 눈인사를 하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복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났던 것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아저씨는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아마 안 받았을지도 모른다. 찹쌀떡 덕분에 빚쟁이를 모면했다.
영천 류사랑 병원에 계시는 구름바다님.
침대 한 켠에 가지런히 놓인 물빛 동인지와 이오타님의 시집, 여전히 시에 침몰해 계셨다. 살이 조금 빠지고 피부는 나보다 더 매끈하고 맑았다.
룸메이트는 20대의 청년인데 아들처럼 구름바다님의 심부름도 하고 때로는 산책도 함께 한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늘 진지하신 구름바다님과 이오타님, 보리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 분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심오한 이야기에 끼이지도 못하고 호기심 많은 나는 병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멀리 보이는 산을 감상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오타님께서 들깨국수를 사주셨다.
언젠가 산행 후에 처음 먹어보았던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한번 더 먹고 싶었던 국수여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크리스마스, 머리맡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없었지만 두 남성분의 국수 선물로 그 어느 해보다 행복감이 길고 긴 크리스마스였다.